# 친구의 비밀을 지키는 건 중요할까?
최근에 든 생각이다. 여고에 있으면서 가장 지치는 문제 중 하나가 아이들이 관계를 단짝친구 중심으로, 비밀을 공유하는 군소단위로 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소문을 유통하는 이런 구조는 그 단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안락하지만, 때로 가장 폭력적이고 사람 사귀는 데 있어서 나쁜 버릇만 키우는 듯 하여 나는 극단적으로 이것을 떠나거나 버리라고 충고하는 편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예를 들어 “비밀을 지켜주세요”라는 요청에 대해, 물론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에 앞서 이런 질문을 유통하는 우리의 교실/학교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왕따가 되기 쉽거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근데 신뢰할 수 있어서 비밀을 말하는 것인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비밀을 만드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게 내 요지. 우리는 어떤 사실이 특별히 비밀이어서 조심히 꺼내는 게 아니라, 비밀로 부치고 나서야 한정된 정보를 공유하는 소규모 친구관계를 특별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측면이 있다.
나는 친구도, 애인도 그렇게 사귀고 싶지는 않다. 특별히 공유하는 바가 있어서 그 사람이 내 친구이자 애인이 되는 것이라면 이미 사람을 존재로 사귀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한 소설이나 담론의 소비자로 사귀는 것일 뿐. 이런 식으로 사람 사귀는 버릇이 든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해도 내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으로 등장시킨 조연들에게는 신뢰를 주고, 내 소설에서 나의 적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혐의를 둔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날로 방대해지고 어느 순간 사실 대조가 어그러지는 경우 맞게 되는 파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진실됨이 나쁜 가치라는 게 아니다. 자꾸 ‘진실’을 ‘거짓’과 나누는 솔로몬을 자처하면서 살지 말라는 거지.
## 상담사의 비밀주의,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 애플의 비밀주의
모든 상담사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피상담자의 상처와 관계된다. 커밍아웃할 의사가 없는 동성애자, 가난한 상황을 혼자 감당하기도 버거운 사회적 배려 대상자 등이 해당하고 넓게 보면 피상담자가 요청한 모든 정보는 따로 부탁하지 않았어도 동의 없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올해 [PDF]왕따의 추억 사건을 통해 느낀 건, 내가 담임하는 아이들을 면담하면서 상담자가 끝까지 비밀만을 유지할 때에는 결국 이 모든 상충하는 이야기를 담아서 비밀문서에 보관하는 아카이브 역할 이상을 교사가 하지 못한 채 한 해가 가버릴 확률이 농후하다는 것. 교사는 들어주기가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정말 듣기만 하고 아이들은 배설만 하고, 이 개별적 A-B, A-C, A-D의 상담은 수많은 집대성만을 남길 뿐 시간은 흘러간다.
물론 섣불리 개입하는 것은 더욱 좋지 않지만, 상담의 중심이 학생 너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너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교사 나는 무엇을 너를 위해서 하겠으니 너는 이렇게 노력해달라는 행위에 관한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약속을 만들고 지키기는 더 스트레스가 따르고 몸과 맘이 피폐해질 정도로 괴로운 과정이었고 가슴앓이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그런데 좀 물러서서 다시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 이 모든 것이 비밀에 대한 고착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 비밀을 말하는가? 비밀을 말하게 되는 경우 대부분이, 그것이 듣는 사람이 알아야 하며 듣는 사람의 생활과 관련이 있거나 듣는 사람이 당사자로 해결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서가 아닌가? 우리는 대단히 자애로운 상담가가 되어서 너의 비밀을 내가 금으로 만든 금고에 죽을 때까지 지켜줄게라고 말하며 보관하지만, 사실 경제적으로 이런 행위는 꽤나 고급인 어떤 정보를 접근할 수 없는 스위스 은행 같은 곳에 보관하고서 만족스러워 하는 습관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런 식으로 이제 누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와 같은 정보가 아니라 단지 누가 이런 말을 했대 저런 말을 들었대 등등의 사소한 일기장 한줄한줄이 금고에 쌓이기 시작하고 서로 다른 금고에 서로 상충하는 비밀들을 보관하면서 광장에 나와서는 서로서로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
어떻게 보면 애플의 비밀주의처럼, 이렇게 보관하는 금고들은 사소한 정보가 또 때로 서로 상충하는 내용들이 쌓이고 포화되기 시작하면서 .. 마치 어느 순간에 한꺼번에 폭발하기 위해서 거기에 보관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이다. 언제나 그것을 나누고 좀 더 쿨해지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숨기게 되면서 수많은 루머는 오히려 양산되는 것. 그냥 다음 제품이 이렇게 생겼다고 하면 호불호로 분명하게 나뉘게 될 반응들이, 그것을 비밀에 부침으로써 신제품에 대한 수많은 예상 루머와 함께 호불호가 아니라 수많은 괴물같은 변형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나 이익을 보게 된다.
## 완득이 쌤의 질문
이외수가 그랬다며? “내가 말하는 순간 이미 그것으 비밀이 아니다.”
이 말을 정말 믿는다. 정말 비밀이라면 말하지 말라. 말하는 순간 비밀이 아닌 것처럼 살 준비를 하라. 비밀을 누설한 사람을 족칠 각오보다는, 비밀이 아니어도 괜찮을 ‘나’를 준비하라는 것.
영화 <완득이>에서 사랑하는 장면 중 하나는, 담임교사가 햇반 운운하면서 사배자 아이를 그냥 대놓고 사배자로 대하는 것이다. 이미 사배자가, 동성애가, 다른 종교를 가진 것이, 피부가 다른 것이, 전라도 출신인 것이, 대놓고 아무렇지 않아서 햇반 남는 거 있으면 하나 던져보라고 말한 뒤에라야, “너 엄마 한 번 만나볼래?”라는 중요한 질문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배자를 오픈하는 정책을 위에서 아래로 강제하는 건 폭력이겠고, 중요한 건 이 모든 부족함과 모자람과 소수자되는 일을 구별하여, 따로, 비밀리에 처리하려고 하는 에너지를 모자라도 괜찮고 소수자여도 괜찮은 학급으로, 학교로, 나라로 만드는 데 투자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지.
“저 사실 장애가 있어요.”
“그래? 좀 불편하겠네? 근데 우리 점심 뭐 먹으러 갈까?”
말말말. 쉬쉬쉬~
나는 제발 그런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살고 싶다.
(201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