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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나는 지금 직장이 재미 없어지면 그만 두겠다. 훨씬 재미 있다면, 지금 받는 보수의 1/2밖에 받지 못하더라도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 일로 부모님을 포함한 일가 친척으로부터 덜떨어진 미숙아 취급을 받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내가 돈에 그리 관심이 없다는 걸 알아주지 않아 괘씸한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는 한 번도 배를 곯은 적이 없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라는 비난에 답할 도리도 없었지요. 맞아요. 제가 정말 제 말대로 행동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원치 않는 가난을 가까스로 벗어난 사람들에게 자발적인 가난을 택할 수 있다는 말은 희대의 개소리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자발적 가난>이라는 책은 데카르트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합니다. 

의지란 본질적으로 가능하다 여겨지는 것만을 욕망하게 마련이며, 만약 외부의 물질을 우리가 힘이 닿지 않는 바깥의 것으로 간주한다면, 자신의 잘못으로 그것을 빼앗긴 것이 아닌 다음에야 중국이나 멕시코의 영토를 소유하지 않고서도 우리 스스로 자책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 선천적으로 타고난 결핍에 대해 뉘우칠 필요가 없다. 
- 데카르트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더 가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가지고 말고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 더 소유하는 것은 내 능력 밖에 있다고 깊이 인정한다면 우리는 결핍한 것 때문에 더 이상 패배감에 빠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아직도 데카르트의 상상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절대적이고 정치적인 가난 분쟁이 진행 중이지요. 그러나 데카르트의 전망은 기만적으로 악용되지만 않는다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부자의 허리를 꺾는 것도 중요하지만 콩 하나를 나눠 먹어도 완전 신나게 먹는 그런 마을에 살고 싶습니다. 마음의 넉넉함 없이 외양만 유기농으로 바꾸고 허름한 집에서 누더기를 걸친다 하여 삶이 행복하고 내적 풍요가 깃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난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 낭비하는 것보다, 때로는 멋진 척 하면서 허접한 빈곤을 낭비하는 게 더 꼴 사나울 수 있습니다. 언제라도 낭비를 구속할 수 있고, 자유롭게 가난해질 수 있는 사람은 오늘 피자헛에서 거지와 콜라를 마셔도 매우 흐뭇한 저녁식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늘도 세상의 60%의 사람들은 하루에 2천원도 벌지 못하고, 매일 보잉747 승객 분량의 아이들이 먹을 게 없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죽음으로 추락하며, 마우스 클릭으로 엄지 손가락이 80만원 이상을 벌 때, 하루 14시간 축구공을 바느질하는 새끼 손가락은 만원도 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잉여가 아니라, 주식 상승을 통한 이윤배분게임이 아니라, 지금 적게 가진 것으로 더욱 자유롭게 먹고 나누면 참 좋지 않을까요? 

오늘도 보름달은 지구의 곳곳을 고루고루 비추이는데. 나는 참 부끄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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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