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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재님의 글에 대해 트랙백을 걸어 글을 쓴 것은 비판이라기보다는 강의 후 질문에 가까운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고압적인 그의 답변글에 놀랐습니다. 그의 말대로 제 글이 좀 개념 없이 쓰여지기는 했지요(웃음). 우재님 요약하신 것 맞습니다. 과학정치권력화 싫구요, 그렇다고 정치무대에 과학자들이 목소리를 내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구요, 그럼에도 직업 과학자가 꼭 정치계로 진출하는 걸 팍팍 밀어줘야 하는 당위에 대해서 우재님 글을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할테면 해라. 근데 아니꼽다.
이 말이 잘 이해가 안되신다면 섭섭합니다. 이 말은 우리 목사님이 기독당 만들어서 대한민국 하나님한테 바치겠다고 말하는 거 싫구요, 그렇다고 목사님이 정치활동 하겠다는데 뭐 말릴 권리는 없구요. 혹여(실상은 반대지만) 이 땅의 정치인들이 던져주는 당근을 순진하게 믿기만 하고 정파에 상관 없이 교회가 줄어가는 사태가 일어나서 아무도 기독교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도 목사님들이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교회의 부흥(?)을 도모하겠다고 한다면 야유하겠다는 말입니다.
<과학>과 <종교>를 병치하는 것에 불쾌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계속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현재 대중의 양상이 종교를 배제하는 버릇처럼 과학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과학에서 저널리즘을 봅니다. <과학 그 자체>에 대한 환상은 이제 벗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저는 아직 어려서 잘 모르지만, 과학자들도 여기저기 사회참여하면 좋죠. 문학, 정치, 음악으로까지 과학적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것은 굉장히 즐겁고 유익한 관찰을 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황우석식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를 앞세워서 과학정책을 수정하겠다는 발상은 현상황에서 급한 자구책이지 래디컬 사이언스의 외양은 아닌 것 같은데요. 음악가와, 과학자와, 소설가와, 목사가 서로 황우석식의 말을 주고받으면서 자기 영역을 선전선동하는 국회나 지금처럼 인문계끼리 떠드나 그냥 제가 보기에는 정당 수가 몇 개 더 늘거나 의제가 더 많아졌을 뿐 아름다운 미래로 보이지는 않거든요. 어떻게든 수완 좋은 과학자 출신 정치가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과학자가 각 정당에 많아지면 과학자들의 복지는 더 나아질지 모르지만, 더 좋은 과학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황우석의 <힘>을 아쉬워하며 시작하는 그 어떤 사이언스도 인간적이거나 래디컬할 수는 없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어차피 우리의 희망이던 황교주님은 본의 아닌 실수로 돌아가신 셈이니 그에게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러니 우리 모두 과학자들의 청치참여를 독려하고 그들의 혁명을 지지하도록 하자. 우리 모두 정치과학자의 탄생을 독려하고 또다른 황교주가 나타나면 그를 국회로 보내도록 하자. 어차피 과학의 현장에서 과학자들이 내지르는 소리는 모두가 묵살해버리니, 이제 우리 연구는 젬병이지만 정치엔 꽤나 소질 있는 이공계 박사급 인력들을 착출해 그들을 국회로 등원시키도록 하자.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과학기술을 이 땅에 뿌리내리고 과학자가 과학자답게 살 수 있는 독립적인 유일한 활로인 듯 하다.
- 김우재, "정치과학자를 꿈꾸며:나는 가끔 황우석이 그립다" 中
굳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면 이 땅엔 과학의 전통이 제대로 흐른 적이 없다. 과학은 경제부강책으로 수입되었고, 과학이 탄생했던 역사와 그 문화는 온전히 수입된 바 없다. 따라서 과학자들이 철학자나 문인들과 같은 대우를 받던 유럽의 문화가 우리에겐 없다. 나는 그것을 바라는 것이다. 과학이 기형적으로 수입된 국가에서 진짜 과학은 우리가 보는 이런 것이 아님을 주장하고 있는 것 뿐이다.
- 김우재, "황우석과 본회퍼"
그래도 과학의 정치화에 관해 <진짜 과학>이 들어온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과학자에 힘을 실어주고 보다 정치적으로 깊은 풍토에서 과학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동기엔 좀 공감이 갑니다. 많은 주제와 마찬가지로 주목받지 못한 모든 것은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정치할 수 있고, 또한 부지런히 정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짜 과학>이 도대체 뭔지만 짚고 넘어가 주면 더욱 감사합니다. 유럽의 과학자들이 직업 정치인과 긴밀하게 연결된 식의 과학? 가령 한국이 그러한 <진짜 과학>을 가졌다고 하여 무엇이 달라졌을까 회의가 드는 이 비과학도를 좀 설득해 주시렵니까? 근대 이전부터 종교의 이름으로 국가의 근본을 세우고 종교의 이름을 걸고 아웅다웅 하면서 좌우를 막론하여 정치, 종교적으로 진흙탕 속에서 싸워온 것이나 과학의 이름으로 유구한 역사를 통해 정치한 유럽에서 세계 대전이 발발한 것이나 일반인이 보기에는 비슷해보인다고 하면 오해인가요? 그토록 오래 걸려서 종교나 심지어 과학도 사실은 억압의 수단이고 정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이미 정치적인 과학'은 없다고 주장하시는 저의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정치적이지는 않은 과학의 예를 하나만 들어주세요. 결벽을 유난 떨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좋거나 혹은 나쁜 의미에서 어떤 기술은 이미 책임과 물리적 파급력에 있어서 그 자체가 정치입니다. 나의 인식은 이 사실관계로부터 시작합니다.
따라서 적어도 래디컬한 과학의 확장에서 황우석을 인용한 것은 실수가 아닌가 합니다. 황우석 외에는 생각이 안나셨다지만, 그는 과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정치적이지는 않았던 과학'이 선재하고 황우석이 그것을 정치화하여 이용했으며, 비록 황우석이 잘못했지만 과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자체는 앞으로 더욱 장려할만하다는 주장이신가요? 나는 오히려 황우석이 다루는 기술 자체가 국민의 욕심을 자극할만큼 큰 떡밥이 걸린 기술이었기 때문에 그 정치성이 문제를 촉발했다고 봅니다. 대중은 정치성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듯, 기술도 선택합니다. 아니 사실 우리 엄마 아빠조차 일기예보를 하는 수퍼컴퓨터의 과학이나 매일 조선일보에서 가공되는 저널리즘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입맛에 맞는 기술을 고르면 그것을 잘 저널리즘적으로 가공해줄 과학자 대변인을 선택하는 것은 다음의 일입니다. 과학에 전문적인 과학자만이 과학정책에 대해서 <진짜 과학>을 말할 수 있다는 환상은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기예보는 맨날 틀리고,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얘기를 떠들고 있고, 이미 과학자들이 하는 소리나 전문 정치가인 국회의원들의 레슬링이나 비슷한 지경이니깐요. 과학적 저널리즘 개념이 비웃음을 산다면, 저널리즘을 배제한 과학이라니 웃음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 과학적 부흥을 위해서 또다른 저널리즘을 왜 후원해야 하는지요? 과학혐오라고 하시지 말고, 답변 주시기 바랍니다.
요는 정치적이지 않은 과학을 하는 과학자는 없다는 것. 과학자나 과학을 대변하는 정치권력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라, 좋은 정치성을 지닌 과학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생각. 황우석은 과학자가 아니라 거짓말쟁이라는 것. 황우석이 한 것은 과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정치를 과학적으로 교묘하게 한 것일 뿐이라는 것. 그런 황우석이 성공할 뻔 했다는 점에서 과학자의 정계 진출은 잘 모르겠지만, 과학은 이미 좌로나 우로나 정치권력화를 완료했다는 것. 과학이라면 먹어주는 세상에서 그 떡밥을 인문계 정치가가 못 먹게 뺏어서 과학자가 자기 밥을 다시 찾아 먹는 게 래디컬 사이언스의 핵심해결과제가 될 수 있는지? 래디컬하다면, 황우석을 과학자가 아니라 신뢰할 수 없는 인간으로서 퇴출 대상이라고 말하고, 과학자가 아닌 그러한 정치가의 부활을 주장에 반대하며, 인간적인 기술은 선동이 아니라 인간 대중에게 저절로 지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지? 인문계의 더러운 욕심이 황우석이라는 특급 열차표를 끊는 순간에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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