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학교 - 목화 따기
image / 2008/12/19 13:45
대개의 식물 따위가 인간의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고 마음껏 믿는 창조과학자들처럼 멍청해지기는 싫지만, 생전 처음 목화를 본 날 나는 얘가 자신을 위해서 따뜻한 것이 아니라 남을 덥히기 위해 태어난 게 틀림 없다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다.
"이렇게 뿌리를 뽑아야 솜이 썩지 않고 부풀어 올라 터지거든."
일체의 수분을 거부한 뒤에야 더욱 부풀어 올라 따뜻해질 수 있었던 하얀 얼굴들 -
죽어서도 따뜻한 목화를 보며 연탄과 판잣집 아가가 떠올랐다.
나는 나를 목마르게 해서 남을 덥힌 적이 있었나,
나는 내 뿌리를 모두 거두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나,
또 한 번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나누면서 껴안고 예쁘게 사는 신기학교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참으로 부끄럽다.
용서 구할 것도 많고, 값을 은혜도 많으나
과도하게 촉촉한 나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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