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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예수가 겨울비에 젖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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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미션>에서 로드리고는 자기의 약혼녀와 바람 난 동생을 죽인 후에 그 죄를 씻기 위해 무기를 잔뜩 짊어지고 폭포를 오른다. 사람들은 가브리엘이 부는 오보에를 좋아하지만, 나는 칼을 들고 싸운 후 죽도록 후회하고, 죽고 싶어서 밥을 굶고, 살려달라고 폭포를 오르고, 다시 누구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죄인의 멍에를 지고 총을 들고야 마는 로드리고에게 더욱 공감한다. 동시에 로드리고와 같은 성정의 사람들에게 꼭 구원 받기 위해서 폭포를 오를 필요까지는 없다고,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라고 쉽게 쉽게 말해버리는 착한 사람들을 별로 믿지 않는다. 가브리엘은 아무나 되나? 로드리고를 편드는 게 아니다. 명이 끊어지도록 숨이 찬 그 마지막에 자신의 짐을 육신에서 끊어 떨구어 낸 뒤에 울어버리게 만든 그 진정성과 생명의 긴장을 지지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노예로 하여 습관적으로 사고 팔며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30년 동안 연습해 온 노예상이다.




2. 400킬로미터를 달렸다. 친구가 진주에서 나를 처음 보았을 때 "야 이 미친놈아" 그랬다. 언덕과 산을 어떻게 넘어 왔니? 글쎄. 사실 첫 날 신기학교에서 기다릴 사람들을 생각하며 어딘가 도착할 집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 힘이 되었더랬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따뜻한 목적지가 보장되어 있어서 더욱 가기에 편한 건 아니었다. 그냥... 하루에 150km를 달려야 한다면, 일단 10km를 달리면 나머지 140km를 달리게 되어 있다. 길에서 잘 수는 없잖아. 거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 다들 그렇게 살지 않나? 옆으로 나를 배려하기는 커녕 죽일 듯이 압박하며 스쳐 지나가는 덤프트럭처럼 -  태어나면 매일 외롭고 추운 곤란이 있음에도 계속 가야 하는 거지. 진주에 꼭 뭐가 있어서 가는 건 아니야. 그냥 오르막을 감사히 오르고, 내리막을 만끽하고, 내가 길에서 증발하지 않는 유기체라는 걸 느끼면서, 진주 가서 친구가 보여주는 야경 한 번으로 400 킬로미터의 노력에 대한 보상은 충분했다. 로드리고처럼 대죄를 씻을만한 경험이 아니라도 좋고, 그럴 마음도 없었고, 가는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냥 달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산 길에서 건전지가 다 되어 장님처럼 앞에 길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길이 있음을 믿고 달려야 할 때, 나는 누가 보고 싶고, 누구에게 미안해서 죽을 것 같았고, 누구에겐 너무 고마워서 울고 싶었고, 누구를 다 용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고, 배가 너무 고파서 시원한 배를 껍질 채로 한 입만 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나약함을 체험하고 세상 모든 게 감사한 그 순간이 여행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전국의 국도 위에는 몇 분마다 차에 치인 동물의 시체가 인사 하더라. 철골 구조 안의 우등 칸에 앉아 있으면 덜컹 소리도 나지 않고 비명도 들리지 않을 주검들. 나는 시체처럼 몸에 뜻을 크게 두지 않고 하찮게 살 줄 알고, 하찮지 않은 감사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 신기학교에서 3일을 보냈다. 너무 행복했다. 아이가 잠들어 있을 때 이마를 쓰다듬으면 코가 찡하다. 발이 시려운 아이를 업고 걷는 새벽길의 공기를 잊을 수 없고, 모든 시간에 모든 화두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서 나를 겪고 말하고 대해 준 아이들의 삶의 자세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특히 나는 아이들에게 무언가 <허락>을 구해서 허락 받았을 때 날아갈 것처럼 기쁘다. 권위가 아니라, 애정과 걱정으로 허락해 주는 말들. <000아, 나는 ...하게 생각하는데, 내가 ...해도 될까?>라고 물었을 때, 잠깐 고민 후 <응>이라고 대답해주었을 때의 그 용납된 뿌듯함. 아이들은 <미션>의 과라니족처럼 내 짐의 끈을 많이도 끊어주었다.







4. 오늘도, 가자에서는 아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그걸 망원경으로 원격으로 관찰하며 <타인의 고통>을 동감하는 대신 단지 소비하고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열 받아서 반대 방향으로 총을 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와중에 아이들은 소리 없이 울다가 울다가 계속 누군가의 팔에 들려 옮기울 뿐이다. <아이들이 울지 않는 세상>, 아이들은 지켜줄 수 있는 세상... 아이들이 밟히지 않는 세상은 오지 않는 걸까? 오늘도 어떤 아이는 죽고, 어떤 아이는 신나게 놀고 있다는 것은, 모든 아이는 선하고, 모든 어른들은 악하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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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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