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예수가 겨울비에 젖어 운다.

루저의 난에 대해

text / 2009/11/17 09:23
북부에서 온 사람이 남부에서 이웃과 의좋게 지내려면 북부적인 감정의 표현을 억제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정신상태가 빚어낸 결과의 하나로서 불행히도 인종적인 감정이 나타나게 되었다. 1880 년부터 1900 년 사이에 있었던 흑인의 대우는 1840 년부터 1880 년 사이에 볼 수 있었던 대우보다 악화된 것이었다.
- 앙드레 모로아, <미국사>, 기린원, 415쪽.

같은 말도 때를 가려가면서 해야 한다. 2009년에 전라도 사람들은 너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과, 1980년 5월에 광주 사람들은 너무 편협하다고 말하는 건 때에 따라 그저 교양이 없는 소리일 수도 있고, 맞아죽을 발언일 수도 있는 것이다. 1840년에 흑인 편이었던 사람이, 1900년에 남북전쟁에 패배해서 자신의 문화를 모두 빼앗겼다고 굴욕감에 치를 떨고 있는 남부 사람들에게 똑같은 얘기를 한다면 살아남지 못할 수도 있다. 말의 폭력성은 그 발언자가 아니라 맥락이 정한다. 



그렇다면 <미수다>에서 나온 저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말의 폭력성은 어디서 나왔나? 그것은 그 프로그램의 시청율이 정한다. 시청율이 높은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많이 보고, 파급력이 높으며, 따라서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정적/부정적 결과를 다른 프로그램보다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드러낸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은 왜 시청율이 높냐? 미녀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왜 사람들은 그 시덥지 않은 "데이트 할 때 누가 밥을 사야 되나요?" 따위의 주제를 심층적으로 청취하기 위해서 텔레비전 앞에 앉는가? 그건 자기도 미녀라고 착각하거나, 미녀처럼 될 수 있다고 착각하거나, 미녀는 아니지만 미녀가 이야기하는 거라도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싶어서 아닌가? 진짜 미녀들은 이미 텔레비전에 나가고 있거나 다른 데서 돈을 벌고 있으며, 그러한 미적 기준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다. 미녀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미녀들의 세계에서 보기에는 미적 기준에 부적합한 패배자들이거나, 피라미드 설명회에 낚여 온 물고기들이라는 모순된 상황이 시작된다. 

그래서 의문인 것은 루저(Loser=패배자)는 재수없는 타인이 강제하는 것이냐는 것. 적어도 게임의 규칙을 내재화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패배' 따위는 있을 수 없을 거 아니냐는 말이다. 

"검둥이들은 모두 루저야."

1886년 흑인의 권력이 신장되는 분위기에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설립된 KKK단의 비밀 모임에 침입한 흑인 B씨가 그들이 테이블에서 나눈 이야기 중 "흑인들은 루저야"라는 말을 듣고 분개했다면, 그건 누구 책임일까? 첫째는 백인들의 사교모임이 멋지다고 생각해서 거기 찾아간 그 흑인의 정신분열이 문제이고, 두번째는 KKK가 비밀스럽게 사교모임으로 남고 싶었다면 유지되었어야 할 보안이 유지되지 못한 게 문제일 뿐이다. 모임의 분위기에 맞춰서 술 한 잔 먹고 마음에 있는 말을 내뱉은 "미스터 스미스"씨 개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이승환 블로거 말마따나 걔가 흑인들의 정치 진출을 막기 위해 위법행위를 하거나 더러운 정치 선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그냥 둘 일이며, 스미스씨와 홍대녀는 그냥 철이 덜 들었을 뿐이다. 

오늘도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의 문화' 아래, 수많은 루저들은 쭉쭉빵빵을 쭉쭉빵빵으로 호형호제할 수 있게 해달라고 텔레비전 앞에 앉으면서, 루저를 루저라고 부르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단다. 오늘도 흑인 B씨는 백인들이 사는 화장품을 구입하면서 "검둥이는 루저야라고 말해주지 말아주세요. 나는 그냥 백인이 더 좋아라고 말해주세요"라고 스미스씨에게 부탁한다. 미적 기준을 정하는 권리를 사회다수가 미인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에게 일임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발언을 계속 감시하는 이런 행위가 도대체 마스터베이션과 뭐가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자 이제 누가 머저리냐? B씨냐, 스미스씨냐?

(2009년 11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Posted by 서울비

최근에 받은 트랙백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268)
text (337)
image (445)
D.Bonhoeffer (160)
Ocarina (37)
info (289)
dumpe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