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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fr.gaia92)

너에겐 사진이 아이들과의 중요한 소통 수단인 거 같아. 

여기에 대해서 생각이 닿는 것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니?


A.

애들 사진 찍으면서 느낀 건요

나중에 함께 사진 보면 진짜 너무너무 재밌다는 거에요.


즐거운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죠.

1/4000초에 담긴 망가진 표정도 즐겁고(사진의 순간포착),

F22에 담긴 피사체의 쨍함도 즐겁고(눈과 렌즈의 차이),

그 때 미쳐 발견하지 못한 정황을 알 수 있으니까 좋기도 하지만(사진의 사실 전달),


그래도 제일 좋은 건 그 현장에 사진사인 제가 없었던 것처럼 가정한 상태에서

그 당시의 이야기가 계속계속 뿔어난다는 거에요.


미현이 얼굴을 찍으면 미현이는 적어도 사진의 프레임에서는 사진사 이준섭이 이미 짤려나갔기 때문에

프레임 안에 있는 미현이 얼굴 얘기만 한다 이거죠. 그게 고맙고, 즐거워요.


그딴 게 왜 고마우냐?


에.. 한정식 선생님의 <사진예술개론>에 의하면,

...시인이나 화가는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 있어도 연인의 아름다움을 언제고 떠올려 다시 한번 음미해가면서 한 구절의 시, 한 폭의 초상화를 만들 수 있지만, 연인이 앞에 있지 않는 한, 한 장의 사진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사진의 특성이요, 사진가의 숙명이다.

즉, 사진가는 지나가면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을 찍는다는 것인데 - 저는 사실 순간 따위 지나가도 상관 없고요. 오히려 사진가가 소중한 순간을 담는다는 것보다는 사진이 사진가를 제외한 피사체나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을 시인과 화가로 만들어서 그 옛날 일을 계속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즐겁고 좋아요.


사실 셔터를 누르면 적어도 셔터막이 열리고 닫히는 그 찰나에 빛은 나에게로 오지 않고 필름으로 가는 거지요. 디카의 경우에는 셔터를 누르면 경통 젖히면서 빛은 센서로 가잖아요. 그니까 내가 찍은 사진에 나온 이미지는 사실 나는 한번도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일들이지요. 매번 셔터를 누를 때마다 나는 직접 눈으로 생생하게 현실을 관찰할 기회를 스스로 박탈시키고 참여를 포기하는 대신 사진을 얻는 셈인데..  그니까 사진을 많이 찍을수록 사람들은 나를 기억 못하게 되고 <그 때 나랑 같이 놀았냐 너?>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것인데...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사진가는 스스로 현실을 이렇구 저렇구 해석하는 위치에서 스스로 권위를 박탈시킨다는 것. 그래서  찍힌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서 그 역사를 평가하고 그림으로 그리고 시를 쓰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 저에게는 매력입니다.

 

 

특히 교사인 저는 단지 교사이기 때문에 출발부터 파워게임에서 애들보다 우위에 있는데 이 우위를 자발적으로 버리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바로 사진 때문에 셔터를 누른만큼 제 권위를 소멸시켜서 아이들과 대등하게 된 측면이 있어요. 사진을 찍지 않고 애들 옆에서 어색하게 찝쩍거리면서 섞여보려고 했다면 많은 부작용이 있었을 거에요. 함부로 개입하고 참여하고 수정하고 교정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는 데 사진기가 도움을 주었어요. 사진기는 제가 아이를 제 맨 눈으로 그렇게 하듯이 함부로 해석하지 못하도록 한 번 걸러냅니다.

 

 

그.러.나.

 

제가 찍은 수많은 불법적인 도촬 사진은 이딴 변명으로 보호될 수 없다..는... 게 문제지만..

이부분은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그냥 넘어가줄 거기 때문에...(그..글치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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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