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시로 가즈키, <레볼루션 No.3>를 읽고
"프랑스에서는 격렬한 시위대 앞에서 경찰도 잠시 시를 읽을 줄 안다더라."
홍세화씨에게 이 비슷한 말을 듣고
우리가 시 한편을 읽을 줄 안다면 시위를 해도 신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레벌루션 No.3>에 나오는 좀비들은 한 술 더 떠서 - 그들의 전투에 앞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군, <지구전에 대하여>란 전술서를 남긴 모택동은, 그 어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두들 침을 꿀꺽 삼키고 태세를 갖춘 것을 확인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찐만두 엄청 좋지!"
모두들 일제히 그 자리에서 깡충거리면서 "찐만두 엄청 좋지!"하고 신나게 외쳤다.
그리고 주먹으로 하늘을 치면서 "찐만두 엄청 좋지!"하고 찐만두 콜을 연호했다.
멀리서 보고 있던 아이들이 다들 울음을 터뜨리고,
부모들은 1초라도 빨리 그 자리를 떠나려고 아이들의 팔을 억지로 잡아당겼다.
재작년에는 손자가 말한 '피탕(중국요리의 일종) 질색'이었고 작년에는 제갈공명의 '등심 먹고 싶다'였다.
(68쪽).
이 못생기고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는 좀비 녀석들은 사회정의나 혁명 따위를 위해서 싸우는 건 아니다. 다만 재미가 없으니까 재밌으려고 그런다.
하긴, 요즘 세상에는 재미 하나까지 내 마음대로 못하고 재미를 소비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1차, 2차, 3차 노래방... 우리 맨날 똑같이 소비만 하고 놀잖아. 그러나 <레벌루션 No.3>의 좀비대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노래방이다.
따라서 이 책은 노래방 따위의 대류에 휩싸이고 싶지 않은 이 시대 모든 마이너리티를 위한 책이다.
재미를 소비하면 뭐가 나쁘냐고 물으면서, 동시에 너네가 만들어 놓은 재미는 싫다고 말하는 발칙한 책이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핵심구절에 따르면(내 맘대로 골랐다),
좀비들의 전투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승리 따위를 바라지 마라. 너는 마이너리티다. 너의 패배는 정해져있다. 그러나 패배가 불편한 건 아니다.
"... 네다섯 가지 정도는 핸디캡이 더 있어야지.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서 아무 불편 없이 컸어. 그래서 어렸을 때는 왜 차별을 받는지 몰랐지.
화가 나니까 걸리는 놈들은 모조리 두들겨 패주기로 했어.
그런데 말이야, 요즘 들어서 알겠더라구.
아무리 싸움에서 이겨본들 결국은 나의 패배라는 것을. 알겠니? 승부는 언제나 다수측이 이기게끔 돼 있으니까."
(111-112쪽).
둘째, 행복을 판매하는 자에게 속지 말라. 그런 행복은 패배이다.
어떤 책에 이런 말이 씌어 있었다.
'행복이란 욕망이 정지하고 고통이 소멸된 패배의 상태를 의미한다.'
내 눈 앞에는 그 패배의 상태가 보란 듯이 펼쳐져 있었다.
(85쪽).
셋째, 소울(soul)이 강한 사람은 아름다우나 삶이 고단할 수 있다.
"클리포드 브라운은 스물다섯 살에 죽었지. 소울(Soul)이 너무 강했던 거야.
소울이 강한 인간은 신의 레이더에 걸리기 쉽거든. 신은 그런 인간을 곁에 두고 싶어하니까 말이야."
(107쪽)
"땅으로 구르는 남자의 목을 본 마을 사람들, 놀라서 비명을 질렀지.
남자가 리듬을 바꿔가면서 눈꺼풀을 감았다 떴다 눈으로 춤을 췄던 거야. 하지만 그 춤은 오래 가지 못했지.
그리고 남자는 두 눈으로 피눈물을 흘리면서 죽어갔어.
남자의 육체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지만, 남자의 춤은 마을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그 후에도 오래오래 이어져 내려갔대."
(305쪽)
넷째, 비생산적인 문제에 관여한다. 생산을 강요하는 시대에 쓸 데 없는 문제에 관여함으로써 이야기를 사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면서 산다.
"가령, 우리들이 자란 시대에 베트남 전쟁이나 학생 운동처럼 알기 쉬운 일이 있었다면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냥 우울하게 있었다면 굳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냥 우울하게 미소만 지어도 상대방이 제멋대로 이야기를
만들어줄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자면 여러 가지 일에 관여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185쪽).
다섯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가 너무나 쓰게 느껴지거나 majority의 삶의 환상이 자신을 덮쳐올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헤헤헤. 알만하군. 순신은, 늘 다수 측이 이기게 돼 있어,라고 말했다.그 말대로 아까 우리에게 굴복한 놈들은 머지않아 사회의 한가운데서 우리들을 굴복시키고
승리를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몇 번이나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되리라.
하지만 그게 싫으면 계속 달리면 된다. 간단하다. 놈들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달리기 시합처럼 계속 달리면 된다.
(141쪽).
이 좀비들,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예수나 간디가 이 좀비들과 비슷하다면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