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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나이

image / 2007/10/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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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이가 말했다.
“선생님, 이 시에서 그늘이 뭘까요?”

 

 

*
정호승의 시에는 슬픔이 기쁨이 되고, 늦은 눈이 봄이 되고, 술 마시는 예수가 구원하고, 미친년이 그리워진다.

나는 이런 이중성이 좋다. 모순을 말끔히 해결해버리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안고 보듬으면서 끝끝내 살아보고

또 살아내고야 마는 그의 펜이 좋다.

 

 

*
그림자와 그늘은 참 다른 느낌이다.
그러나 같다.

 

 

*
아버지는 나무다.
아버지는 그림자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스스로 그림자이면서 그림자를 그늘이라고 말하며 그늘에 앉는다.
찬란한 열매 대신 그늘에 앉아 어두운 그림자가 참 시원하고 쉴만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무를 이해하는 일은 찬란한 열매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이해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고,
또 그림자가 부도덕과 무능이 아니라 쉴만한 그늘임을 깨닫는 일이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도전정신으로 승자가 되어 사는 일이 아니라
묵묵히 타인을 지켜보는 애정으로 남의 그늘이 되어주면서 사는 일이다.


*
아이들이 보는 문제집 ‘쉬어가기 코너’에 <승자와 패자>라는 글이 있었다.
“승자는 뛰어가며 생각하고, 패자는 뛰어가기 전에 계산 한다”


그러나 이따구로 세상을 양분하는 논리는 실제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정합적이지도 않고 어처구니 없게 허술하다.

나는 뛰며 계산하는 샐러리맨의 펀드로 태어난 게 아니고, 자나 깨나 조심스러웠던 내 어머니 젖을 먹고 자랐다.

모든 어머니는 소시민이고, 모든 아버지는 패자를 자처하더라.



*
나도 아버지를 닮고 싶다.

나도 내 못난 그림자를 피곤해하지 않고
내 햇살이 아니라 내 그림자로 남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
shade 와 shadow의 어원은 같다.
이 둘의 공통점은 빛을 가린다screen from light 는 점이다.

빛이 되기를 요구하는 (심지어 성경에서조차 너희는 빛이 되어라) 세상에서
빛을 가리우고 어둠에 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
신플라톤학파는 사물을 일원적으로 파악하면서 어둠은 빛의 결핍에 다름 아니라고 했다더라.

그러나 이 시에서 보이는 그늘이란 어떤 영광이나 빛이 결핍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

나무가 빛을 직사광으로 받지 못해서 생기는 반대편의 그림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무 그 자신의 실존을 가리키는 말이다.


나무는 결핍으로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그림자를 제외한 것보다 그림자 자체가 나무의 형상을 닮아있고 나무답다.

나무는 새들이 날아와 쉬는 그늘이 자기의 실존이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지게를 내려놓고 아들을 보며 그가 나의 실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쯤 되면, <아버지의 나이>는 매우 심오한 철학 아니냐


*
나무는 그림자이다. 나무의 그림자가 아니라.
나무가 그림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나무가 뭐란 말이냐.

아버지의 그늘됨이 아니라, 아버지는 나를 위한 그늘 자체이다.


아버지가 나를 위한 그늘이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우리는 타인을 위한 햇살이 아니라 참 못나고 밉살스런 짐이고 그림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타인을 위한 그늘이 되지 못한다면,
그림자이면서 그늘 같은 그 무엇이 아니라면 도대체 왜 사는 것일까.



Posted by 서울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