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아이들도 좋은 교실을 만들까?
아이들은 아직 도덕적으로 덜 성장했기 때문에 성인은 그에게 도덕을 "알게 할" 책임이 있다. 예를 들어 살인은 매우 나쁜 것이고, 심지어 성인조차 그 사실을 알면서도 도덕적 판단이 흐려진 상태에서 살인을 자행하는 마당에 청소년에게는 즉각적으로 살인에 대한 모든 상상을 차단할 것과 그 행동이 비도덕적이라는 것을 전면적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중학생 때 물건 훔치고 몇 대 맞는 것이 나중에 절도죄로 철창 가는 것보다 낫다.
.... 정말?
나는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물론 유아는 바지에 똥을 싸는가 하면 송곳으로 친구를 찌르는 등 매우 충동적이기 때문에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인은 유아기를 벗어나서 본인의 생리적 욕구을 통제하고 관습적인 도덕율을 잘 지키게 된 이후에 오히려 청소년이나 유아가 저지르지 않는 오류와 기만을 저지르고는 한다. 하이데거의 지성이 "히틀러만이 독일의 현실"이라고 말하고, 이명박은 농민들을 보고 쟤네들 "떼쓰는 건 잠시뿐"이라며 콧대를 높히는 것이다.
"담배 피지 말라"는 얘기를 히틀러도 했다는 걸 아는지? 의사가 간접흡연의 폐해를 밝혀놓으면, "담배 피지 말라"는 이야기는 이제 엄마가 사용할 수도 있고, 선생님이 사용할 수도 있고, 친구가 사용할 수도 있고, 적이 사용할 수도 있고, 애인이 말할 수도 있고, 히틀러가 말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의 의도와 욕구와 정치적 마인드를 감추고 "담배는 몸에 나빠, 그래서 말하는 거야"라며 담배를 뺏는다.
민주주의의 진화에 관한 다수의 문헌은, 다소 단정적으로, 민주적 질서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부유하고 교육받은 중산계급뿐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부르주아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라는 단호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는 배링턴 무어의 주장에 가장 확고히 표현되어 있는 관점이다(배링턴 무어,《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
울프 선드호슨, "농민과 민주주의 - 산마리노 공화국의 교훈", <녹색평론> 제 98호.
그래서 내 생각에, 민주주의는 대중에게, 개미의 사회는 개미에게, 아이들의 학교는 똑똑한 성인들이 아니라 멍청한 아이들에게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불편한 진실이지만 절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대중과 개미와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민주주의의 소유권을 넘겨야 한다.
신기학교에서는 주의력결핍증이 있는 아이에게 정중히 요청하여 그가 전체회의에 참가하게 하는 데 수십분이 걸리지만 그 설득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또한 다 필요 없다면서 엄마가 있는 집에 가고 싶다는 아이의 뺨을 때리지 않고, "그럼 선생님이 함께 밤새 걸어서 너와 엄마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주겠다"고 문을 나서려는 어른들이 있었다.
정말이지 도덕적 명제를 편리하게 사용하면서 동시에 우리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피교육자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뿐이다.
아이를 이해하려면 아빠도 팬티를 내리고 엉덩이에 흙을 잔뜩 묻혀야 하고, 어쩌면 어떤 청소년과 맞담배 한 대 피워준 후 울어주는 것이 빠따 100대 때려서 담배 맛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나을 수도 있지 않나?
그러나 학교를 다시 떠올리면, 입안이 텁텁하고 부끄럽고 짜증이 나서 쉽게 가는 길을 택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너는 너무 이상적이야"라는 친구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이 글은 스프링노트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