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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구치소 담벼락에 기대어 예수가 겨울비에 젖어 운다.


몇 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적는다.


1. 포르노는 강간의 이론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강간은 포르노와 닮았다.


민노씨는 그의 블로그에서 <유객>이 제기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다.  

그리고 흔히 착각하는 것처럼 '음란물' 혹은 '포르노'가 청소년의 성의식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상식적인 가설'은 그다지 신뢰성이 높은 가설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오히려 '약한 가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오히려 포르노를 통한 성교육(까지를 주장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으나…상징적인 의미에서는)를 개인적으로 오히려 찬성하는 편이라서요.

포르노를 통한 표현된 왜곡된 성의 형상화가 아이들에게 왜곡된 성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낸다기 보다 우리사회의 노골적인 이율배반과 기만적 성의식이 제대로 된 성교육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 민노씨, "'청소년 보호논리'의 허구성: 레진 사건의 의미와 전망2 : (부제)포르노의 교육적 가치" 

그러나 내가 보기에 <유객>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다소 빗나가지 않았나 싶다.  물론 포르노가 강간의 이론이기 때문에 금지한다는 지배층의 논리는 매우 자주 저열하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음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유로 꼭 부정되어야 하는지 궁금해한 질문에 답할 때, 포르노가 음란한 것이 아니라 포르노보다 더 음란한 사회가 문제라는 취지로 글을 맺는 건 시원스런 답은 아닌 듯 하다.


문제는 관습이다. 사람들이 싫다는 데 어떻게 하지요? 포르노의 절차와 생성에 관해 묻기 전에 포르노의 현상에 관한 것이다. 포르노가 성범죄 유발과 별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었다 하더라도 정치적, 심리적으로 일반 대중이 포르노 때문에 상처받는다면 관습을 우선해야 할지, 자유와 정의를 우선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쉽지 않다. 오늘 포르노 보고 자위하는 아들이 내일 강간범이 되지 않지만, 아들이 보는 포르노가 혐오스러운 90%의 엄마들에게 관습을 신경쓰지 말라며 넘어갈 수는 없다. 모든 관습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반관습이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포르노가 강간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르노에서 강간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서 강간에서 포르노를 보지 말란 법도 없다.



2. 포르노그래피를 성교육에 허하라?

그리고 알다시피 미디어와 폭력성에 관련된 논쟁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일방향으로 미디어가 폭력을 조장한다는 순진한 생각은 이미 지나갔다지만, 오늘날처럼 미디어를 규정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특히 개인이 미디어가 되는 상황에서, 미디어를 구독하고 시청하는 청소년의 표현의 자유란 매우 자주 자본주의적인 생산물의 복제이지 않나?


포르노그래피가 대상으로 있고, 누군가 그것을 주체적으로 보고, 그 후 판단하고 정리하여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공식은 순진하다.



나는 포르노나 미디어의 폭력이 나쁜 것이니까 보지 말라는 식의 규제를 너무 싫어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미 포르노그래피 바깥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포르노그래피적인 것들을 소비하면서 지탱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라면, 이미 누구나 포르노그래피의 시청자이며 생산자이고 마초적이다. 이것이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모든 논의의 전제일 것이다.


하여, 모든 포르노그래피의 진정성은 마땅히 의심되어야 한다. 망다방의 지적처럼 우리는 쉽지 않을지라도 모든 포르노를 <성찰>하며 검열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의 지적처럼, 나 또한 여고생을 벗겨놓은 그림으로 예술 전시회를 여는 것, 과장된 성행위가 그냥 컬트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색채와 이미지일 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와 예술의 이름이면 다냐? 자유를 팔아 욕망만을 소비하고 배설하는 사람들은 자유를 억압하며 관습만을 쫓는 사람보다 가끔 더 역겹다. 그것을 판단하기 위해 포르노 금지법을 만들자는 얘기가 아니다. 혁명과 자유의 이름으로 진정성을 등쳐먹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꼴통 페미, 유사 페미니스트가 혐오스럽다는 주장하기 전에, 대놓고 마초라면서 아방가르드하게 포르노를 고민한다는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진정성도 의심해야 한다. 애들이 말 좀 잘 들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될 것을, 보호해주겠다고 말하는 기성세대가 우습다. 그러나 동시에 그냥 자기가 마초라고 하면 될 것을, 다 사람마다 고민의 지점이 있는 거라며 나름대로 포르노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 또한 의심의 대상이다. 모든 포르노가 일반 성행위 묘사와 <다를> 뿐인가? 많은 포르노는 침 흘리는 남성들을 위한 것이며, 돈을 많이 벌게 해준다. 남성들을 위해 돈벌이용으로 만든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교육에 쓰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모든 포르노그래피가 저항 내지는 실천으로 읽힐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포르노그래피적 자본주의에 대한 폭로일 수 있지만, 어떤 것은 그저 자본주의적 포르노그래피 생산물일 수 있다. 전자와 후자를 구별하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소위 "예술"이라는 레이블을 달고 미술전시장이나 시네마테크나 문학시장에 깔리는 생산물들은 대체로 전자와 같은 비평을 통해 구원받는다. 그리고 작가들 역시 전자와 같은 구원비평을 위한 아포리즘을 슬쩍 흘린다. 이건 자본주의 비판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한 돌진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공생관계에 가깝다.

- 망다방, "포르노그래피와 저항

포르노로 성역할에 대한 인식에 도전하고 남성지배에 의문을 제기한 작품이 있으면 공유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보통의 포르노는 표현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소비할 뿐. 대놓고 자본주의와 마초성을 소비하는 포르노그래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에 관습적으로 열광하면서 동시에 수치스러워 하는 이중성을 보이는 것이다.


당신의 포르노 볼 권리를 존중한다. 근데, 포르노를 성교육에? 글쎄다.




덧. 이 글은 레진블로그사태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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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서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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