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노트 2-1. 피사체와 사진가의 거리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중요한 건 피사체와 감정을 나누는 일

라이언 맥긴리는 친구가 놀러 와서 마약 하고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자동카메라로 열심히 찍어주다가 어느 날 눈 떠 보니 세계적 사진가가 되어 있었죠. 유머와 긍정,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사진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 © Ryan Mcginley

라이언 맥긴리 프로젝트 "청춘, 우리는 괜찮아(The Kids Are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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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라이언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세계적 사진가가 되기 위해 꼭 바바라 런던의 [사진학 강의] 초반에 나오는 카메라의 구조, 조리개의 생김새, 노출을 결정하는 원리를 먼저 공부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정식 교과서들은 원리를 설명해줄 수는 있어도, 시선을 연습하게 도와주지는 않으니까요.

기술적인 지식보다는 피사체와 감정을 주고받는 방법에 대해 조금씩 깨쳐가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늘 골몰한다. 라이언 맥긴리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피사체와 감정을 주고받는 일’이죠.

두 장의 프랑켄슈타인 사진

그런데 이 교감이라는 것은 사진가가 찍고자 하는 사물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사진가가 어떤 거리 두기를 통해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가는 결과물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진의 본질로 남아있습니다.

여기 프랑켄슈타인을 찍은 사진이 있는데, 한 장은 가까이에서 찍은 것이고 한 장은 멀리서 줌으로 당겨 찍은 것입니다. 무서우니까요. 제가 이 두 장을 섞을게요. 자 이제 두 사진은 같은 사진인가요?

프랑켄슈타인 1

프랑켄슈타인 2

종이 사진으로서는 같을 수 있겠으나, 만약 사진 찍는 거리 두기 행위를 사진에 포함한다면 두 사진은 분명히 다른 사진입니다. 한 장은 바로 앞에서 나를 향해서 표정 짓는 괴물이며, 한 장은 무서워서 몰래 멀리서 찍었으므로 나를 향한 표정과 공포가 아니지요.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찍는 것, 그것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다.”
– 드니 로슈, <사진찍기, 질 들라보와의 대화>. 1978.

즉,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을 찍을 때, 사실은 필름이나 센서에 좋아하는 사람 얼굴 자국을 남기는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사진 찍는 행위 자체가 좋아하는 행위의 여러 행동 중 하나일 뿐이라는 거죠. 젠장, 프랑켄슈타인 사진은 똑같잖아. 어쩌라는 거냐고요?

저는 이게 일종의 신비주의 같다고 생각해요. 저 둘 중의 한 장에는 다른 한 장의 사진보다 뭔가 ‘공포’가 더 있을 것만 같다는 믿음. 혹시 여러분은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진을 찍으시나요? 사진이 종이나 JPG 파일이 아니라, 어떤 행위라는 믿음. 이런 믿음에서 시작하면 사진가의 거리 두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모든 사진 중에 사람이 찍거나 만들지 않은 사진은 없으므로, 내 사진에는 빛이 담기지만 사실은 그것 말고도 결국 사진 찍는 내 존재가 담긴다는 믿음이 있다면, 내가 ‘어디에서’ 사진을 찍을 것인가는 굉장히 중요해집니다.

이 얘기를 좀 극단적으로 밀면, 장-프랑수아 쉐브리에처럼 “나는 단지 사진의 중재를 통해서만 사람들을 만난다”고 선언하는 것도 가능해지죠. 오직 바로 앞에서 찍은 저 첫 번째 프랑켄슈타인의 사진만이 다시 그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믿어요, 믿으라니깐. 사진에는 영혼이 담긴다고. 뻥 아니에요.

마이클 스노우가 생각하는 사진가

뭔가 이번 글은 산으로 가는군요. 뭐 그래도 계속 프랑켄슈타인 사진이 아직도 똑같다고 우기신다면… 이런 데니얼 데닛의 수제자 같은 양반, 정 그렇게 우기시면 이번 글은… 실패! 하하~ 흑흑~

마지막으로 사진 이미지와 사진 찍는 행위가 별개가 아니며, 사진, 사진찍기 둘 다 이미 작가이자 행위 그 자체라는 것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작품 하나를 소개합니다. 설치미술 같은 거 잘 이해도 안 되고, 현대미술관 가면 잠만 오는 저이기에 필림 뒤봐 옹의 입을 빌리겠습니다.


△ 마이클 스노우, Autho­riza­tion, 1969

스노우는 대략 사진 규격에 비례하고, 사진 붙이는 작업이 하나하나 시작될 거울을 준비한다. 그리고 나서 스노우는 거울 중앙 부근에 두 장씩 모아 붙여 하나의 직사각형을 이루는 넉 장의 폴라로이드 테두리(그래서 안쪽 직사각형은 언제나 같은 형태로 비례한다)와 정확히 일치하는 직사각형 공간을 설정한다.

그는 시작도 끝도 없는 나선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 네 개의 회색 테이프를 찢어 그 끝을 교대로 교차시켜(한쪽 끝은 다른 한쪽 끝 밑에) 공간을 구분짓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거울 정면에 배치하고, 리본 테입 틀이 정확히 파인더 안쪽 사각형에 들어맞도록 거리와 높이를 조절한다. 그리고 그는 거울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그래서 폴라로이드 사진 안에서 테이프 틀은 언제나 흐리게 나타난다), 그가 파인더 안을 똑바로 들여다 볼 때 사진기와 자신으로부터 반사된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거리는 알다시피 다른 쪽 피사체, 즉 거울로부터의 거리와 대략 두 배쯤 된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면 이제 기계 작동만이 남게 된다. 마이클 스노우는 첫 번째 사진을 찍는다. 그는 그것을 즉시(여기서 사진은 곧바로 현상되어) 테입 직사각형 네 조각 중 왼쪽 윗부분에 붙인다. 그래서 거울은 더 이상 비어있지 않게 된다. 스노우의 사진은 거기에 붙여졌다. 사진기에 의해 찍힐 수 있는 거울의 반사 영역은 이제 75 퍼센트 남게 된다(사진이 거울 면적의 25 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리고 나서 스노우는 첫 번째 사진이 포착되는 두 번째 사진을 찍는다. 두 번째 사진 역시 거울에 붙여지는데, 거울에 있는 첫 번째 사진 바로 오른쪽에 붙여진다. 그는 파인더와 초점을 그대로 두고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두 번의 촬영을 한다. 각 사진들은 그 이전의 사진들을 다시 보여주는데, 이미 찍혀진 사진들을 다시 찍은 것이다. 다시 말해 찍혀진 네 장의 사진 이미지는 마치 심연의 효과처럼 사진기 파인더 공간을 꽉 채우고, 동시에 거울에 비치는 이미지들을 덮으면서 중앙 직사각형을 완전히 채우고 있다.

이제 그 무엇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거울에 비친 부분은 막히고 사진은 그 부분을 모두 점령했다. 모든 것은 중단되었다. 이제 스노우가 찍을 수 있는 한 장의 사진만이 남게 되고, 이 다섯 번째 사진 역시 어떠한 위치와 초점도 수정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모든 것(사물들의 상태)을 기록한다. 이 마지막 이미지는 큰 거울의 왼쪽 맨 위에 붙여질 것이다. 진행 과정은 종결된다. 우리는 ‘완성된’ 작품을 응시하게 된다(다시 말해 작품을 분해하고, 만들고, 그러면서 재생하고).

… (중략) … 관객은 이 장치의 정면에 선다. …(중략)… 관객-구경꾼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보다 정확히 말해 거울에 반사되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 … [Authorization(작가가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auteurisation)]은 단순한 사진 이상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사진 그 자체의 행위이다.

– 필립 뒤봐, [사진적 행위], 사진 마실, 2005년. 15-21쪽.

우리가 렌즈로 뭘 찍을 때 그 렌즈의 물리적 초점거리가 사진가가 사진에 부여하는 거리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가까이 보듬어야 할 것을 망원으로 예쁘게 담아도 그건 예쁜 사진은 아니고, 화질 좋은 광각렌즈로 프랑켄슈타인을 담아도 한 번도 그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가 멀게 느껴지겠지요. 마음의 거리와 렌즈의 초점거리를 깊이 이해해서 사진이 스스로 말하도록 사진을 찍어보고 싶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초점거리의 개념에 대해서 재미없지만 간략히 다뤄볼까 합니다.

부록: 사진가의 거리가 잘 드러나는 사진


△ 로버트 카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사진가가 걱정되는 사진이라고나 할까. 프레임 바깥에 있으면서도 관객의 주관적 개입을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이토록 사진가 자신의 위치와 시선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사진도 드물 겁니다.


△ 냉전 시대 러시아, 존 스타인벡

냉전 시대에 카파와 함께 러시아를 취재한 후, 존 스타인벡은 이렇게 기사를 끝맺었습니다.

“러시아의 지평선 위엔 희망이 보인다. 우리 일행이 오이를 추수하는 밭에 나갔던 날, 한 꼬마가 엄마에게 뛰어가 신기하다는 듯 소리쳤다. 이 미국 사람들은 우리랑 똑같이 생겼어요.”

이 사진은 광학적으로는 귀여운 꼬마에 대한 근접 촬영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자 가장 괴상하고 가장 멀리 있는 거리에 있는 ‘적’에 대한 외계인 보고서가 됩니다. 또한, 정치적으로는 가장 납득할 수 없는 SF 사진이 되었죠. 카파는 외계인 찬양 혐의로 이 취재 이후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 여권을 압수당합니다.

도전 과제: 거울 보고 마이클 스노우 따라해보기.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2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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