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노트 2-2. 렌즈의 초점거리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핀홀카메라

옥션에서도 팔고 있는 핀홀 카메라입니다. 어렸을 때 과학 시간에 실험하고 그랬는데 말이죠. 그런데 렌즈도 없이 바늘구멍(핀홀) 하나 뚫는다고 사진이 나올까요? 렌즈가 없어도 사진이 나오는 거야? 네, 나옵니다!

망원렌즈? 그런 건 휴지심 두 개 붙여서 자작 DIY로…

핀홀카메라2
△ (출처: northlight-images.co.uk)

정말 바늘구멍은 위대하군요!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깜깜하게 빛을 가린 방 (카메라 옵스큐라)

고대로부터 전해져오는 마법서(?)에 따르면 그냥 창문을 크게 열어두면 집에 있는 벽에 아무 일도 안 생기지만, 깜깜한 방에서 바늘구멍 하나만 뚫어놓으면 바깥에 있는 사물이 아래 그림과 같이 좁은 구멍을 통해 들어와 방의 벽에는 사물이 거꾸로 맺히지요. 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이 신기한 현상을 알고 있었습니다.

카메라옵스큐라
*△ 카메라 옵스큐라 (그림 출처미상) *

원리는 사실 간단해요. 빛은 직진으로만 나가거든요. 아주 작은 바늘구멍을 뚫으면 위에서 출발한 빛(A)은 사선으로 들어와서 방 안에 있는 벽에는 아래 부분(B)에 도착하게 됩니다. A에서 시작한 빛이 방으로 들어오는 방법은 B의 위치 외에는 없습니다. 왜? 빛은 직선으로 가니까!

즉, 정리하면:
1) 밖에서 들어오는 빛을 바늘구멍으로 통과시키면, 2) 그 구멍을 지나 반대편에 똑같은 상이 맺혀요. 물론 상하좌우가 반대이지만~.


*△ 카메라 옵스큐라 현상을 이용해 초상화를 그리는 모습 (출처미상) *

그래서 지오반니라는 16세기 남자는 아예, 이걸 대박 상품으로 삼아 초상화 업계의 거부가 될 꿈을 꾸셨죠. 너희는 보고 그리냐? 나는 대고 그린다! (성공했는지는 알 수 없음. ) 아무튼 이런 방을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라고 부르지요. 이것은** ‘깜깜하게 빛을 가린** 방’이라는 뜻입니다.

바늘구멍 대신 렌즈

근데 바늘구멍이 좀 작아요? 눈도 안 좋은데, 날도 더운데 저 깜깜한 방에 온종일 있다가는 몸 다 버리겠어요. 게다가 꼬딱지만한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고 뭘 그리고 앉아있자니 미칠 노릇이죠. 그래서 좀 구멍을 크게 뚫었으면 좋겠는데, 손가락에 침 묻혀서 구멍 크게 뚫으면 상이 또렷하게 안 맺힙니다. 그런데 똑똑한 양반들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그 해결책이란 무엇이냐? 바로 바늘구멍을 크게 뚫는 대신에, 유리알 같은 걸 곡면으로 비스듬하게 갈아서 사용하면 초점을 모아줄 수 있다는 거예요. 다들 왕년에 볼록렌즈로 개미 똥구멍 태워보셨잖아요? 유리를 곡면으로 만들면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 빛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습니다.

![](https://lh4.googleusercontent.com/-VCf7jDP7eug/VIpp53-e-ZI/AAAAAAABTdU/ohVQhp6YFvI/s0/05.jpg
camera_5)

아까 촛불에서는 A에서 출발한 빛이 방으로 들어가는 길이 구멍 하나여서 문제가 안 되었는데 …

바늘구멍 대신 렌즈를 앞에 두면 A라는 점 하나에서 시작한 빛이 렌즈 위로도 들어오고, 중간으로도 들어오고 아래로도 들어오고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유리를 공들여서 잘 갈아야 합니다. 위에서 출발한 녀석도 (1)을 통해 B로 잘 도착하고 아래를 통해 들어오는 녀석도 (3)에서 방향이 꺾여서 점 (B)까지 잘 도착하도록 해야지요.

이렇게 촛불의 점 하나하나에서 나온 빛들은 바늘구멍보다 큰 렌즈 알을 통과할 때는 여러 갈래로 나뉘지만 통과한 후 방 안의 벽에 다시 차곡차곡 역순으로 모이게 됩니다.

유리를 엉성하게 갈면 (1)의 빛과 (2)의 빛이 한 곳으로 잘 모이지 않겠죠? 실제 상황에서는 렌즈도 여러 개 필요하고 더 고려할 내용도 있지만 간단한 원리는 이렇습니다.

그런데 방에 있는 벽을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밀면 초점이 맞을까요? 안 맞습니다. 렌즈의 모양이 정해지면, 렌즈의 초점이 맞는 거리는 물리적으로 딴 한 지점으로 정해지게 되지요. 위 그림에서는 50mm 떨어져야 초점이 맞게 되는 거고요. 그보다 멀거나 가까우면 촛불 사진이 흐리멍덩해지겠지요.

이렇게 어떤 렌즈를 통과한 빛이 모두 모두 가지런히, 한 자리에 다시 모이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초점거리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어두컴컴한 방보다 좀 밝게 살자고 바늘구멍 버리고 렌즈를 선택한 이유를 공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렌즈에 고유한 초점거리가 있다는 것도요!

사진은 초점거리를 지나간 빛의 흔적

모든 렌즈에 저마다 최적의 초점거리가 있다는 사실은 사진의 기록성을 불러옵니다. 우리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방에서 더 앞에 앉아 있을 수도 있고, 더 뒤에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결국 기록되는 것은 고정된 벽면이지요.

깜깜한 카메라 안에 난쟁이가 되어 들어간다고 상상해보아요. 렌즈는 방 안으로 빛을 비추는 창문입니다. 창문을 통해 빛이 들어옵니다. 나는 방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방 안에 빛이 가득합니다. 그 공간 전부가 빛이고, 현실인데, 결국 기록되는 것은 2차원 벽/필름/센서 평면의 영상이지요. 모든 사진은 렌즈의 초점 거리에 염두에 두고 일정 거리에 떨어져 붙박이로 박아놓은 필름/센서 지점에서 발생한 것이고 그 사진이 기록될 때 센서보다 앞에 있는 빛은 잊혀졌습니다.

이렇게 잊힌 빛들에 미안해하며, 잠깐 지나간 어떤 순간의 빛을 힘들게 렌즈로 모아서 한순간을 남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단 한 장의 사진에도 감동이 벅차오릅니다. 많이 어둡게 찍힌 사진일지라도 그 안에는 너무나 많은 빛 알갱이들이 꿈틀꿈틀 살아있습니다. 잊지 마세요. 50mm 렌즈로 직은 모든 사진은 그 사진이 찍혔을 당시, 동시에 들어온 빛 가운데서도 벽에서 50mm 떨어진 순간의 빛만을 렌즈가 골라준 것입니다. 단 한 개의 평면에 기록된 유일한 빛의 흔적입니다. 우리는 빛을 담습니다.

빛은 사물 묘사의 보조 수단으로만 써먹기에는 너무 아까운 존재이다. 빛을 빛으로 살려내는 길은 없을까 하는 점을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사물 묘사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빛이 주된 대상이 되는 사진. 빛으로 사물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물로 빛을 살려내는 길은 없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 한정식, [사진 예술의 기본 성격- 3∼5 빛의 예술], 2005년. (출처: 사진가 김춘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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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젠느 앗제(Eugene Atget)의 사진. 20세기 근대 사진의 선구자로 보는 사람도 있고, 그냥 밥벌이로 사진 찍은 건데 호들갑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좋아합니다. 자폐증이 있었다는 속설이 돌 정도로 소심했다고 전해지는 성격 때문인지 그가 찍은 쇼윈도 사진에는 한 발자욱 물러난 그의 내성적 성격과 카메라 렌즈의 초점거리가 동일 선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더 이상 가까이할 수 없는 곳에서 그는 멈추어 바라보았고, 렌즈는 딱 그만큼 떨어진 것에 초점을 맞추었죠. 맞은 편 거리의 건물들 반영, 빛, 찍는 사람, 찍힌 사람(마네킹), 렌즈, 렌즈와 대상 그리고 맺힌 상의 거리. 무언가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되어버린 사진 한 장입니다.

다음 시간엔 초점거리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화각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도전과제:

50mm 렌즈로만 찍어야 하는 사진이 있을까? 찍어보자!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3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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