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노트 3-3.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빛의 효과를 통해 인상주의 화가들이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것은 바로 순간의 진실이기 때문에, 인상주의는 바로 이곳, 바로 현재의 경외감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기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이 분석하고자 분주할 때, 이미 빛의 순간적인 효과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인상’은 일반적으로 포개진 인상들의 나열로 남아 있게 된다. 스티글리츠는 인상주의 화가들보다 더 좋은 길을 선택했다. 그는 그를 위해 제작된 도구, 카메라로 곧장 달려갔다.
– 폴 로젠펠드

순간의 진실은 만들어 설명할 수 없다

1890년대에 사진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초상화 대신 사진 찍으러 가서 자기 얼굴 그대로 기념으로 찍어오는 사람들, 아니면 고흐의 그림처럼 인상적이고 완벽한 그림 같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던 고매한 예술가들이었죠. 이 사람들은 나중에 초점을 일부러 흐리게 만들고, 원래 사진에 없던 걸 합성해버리는가 하면, 닷징(dodging)/버닝(burning)을 과도하게 해서 처음 찍었을 때와 완전히 다른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포토샵의 신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폴 로젠펠드가 말했던 것처럼 이렇게 사진 위에 뭔가를 덕지덕지 덧칠하는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진분리파 운동을 이끌며 이른바 ‘스트레이트 포토’ 시대를 연 스티글리츠는 단지 노출되는 것만으로, 가장 사진적인 것으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삼등선실(The Steer­age)], 1907년

위 사진은 호화 여객선으로 유럽을 여행하다가 찍었다는데, 특등실과 3등실의 대조를 통해 ‘사진 그 자체로 말하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속 얘기하지만, ‘더 밝게 또는 더 어둡게 할까?’라고 고민하는 순간 당신이 보고 있는 어떤 소중한 장면의 빛은 너무나 빠르게 당신 앞을 지나가 버립니다. 카메라의 적정 노출에서 빛의 단면을 담는 노력이 선행될 때만, 적정 노출에서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과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너무 밝거나 너무 어두워도 그것이 주제라면 내버려둔다.

△ ©emdot [의자들], 2005년 (CC BY 2.0)

의자에 듬뿍 내리는 빛을 보면 색 정보가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진가는 이토록 찬란한 빛을 내버려두기로 합니다.

평범한 풍경에서 사진가의 내면이 드러나는 노출을 찾아라.


△ 마이너 화이트, [태평양], 1948년

스티글리츠와 친했던 마이너 화이트 역시 사진 그 자체가 말하는 범위 내에서 사진의 노출에 개입했습니다. 그의 사진은 시각과 노출에 따라 바위가 풍경이 되고, 서리가 바다 물결이 됩니다. 만약 바위를 적정 노출로 촬영했다면 서리가 바다 물결처럼 보이지 않고 하얗게 사라졌을 겁니다.

맑게 내다보는 렌즈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은 조작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다는 행위에서 심미적인 목적으로 꾸준한 변형을 이루는 것이다.
– 마이너 화이트

주제가 빛과 만날 때를 기다린다

△ 미국의 에드 카시(Ed Kashi)가 찍은 사진

에이전트오렌지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9살 여자아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얼굴 일부가 드러나며 우리의 시선이 아이의 눈으로 향합니다.

△ 김성수 님의 사진. [공양간에서]

인도 라닥의 어느 곰파 공양간을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빛으로 나아와서 공양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2011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공모전 수상작.

밝은 것이 어두운 곳으로 나아갈 때, 어두운 것이 밝은 곳에 놓일 때

△ 핀바 오렐리(Fin­barr O’Reilly)의 사진. 나이제르의 병원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의 손에 키스하고 있는 어머니. 2005년

아이의 하얀 손톱이 절망과 두려움에 놓여있는 어머니의 검은 피부에 올려진 순간입니다. 빛에 대한 집중, 노출의 중심은 아이의 손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옷에 있는 화려한 색깔들에 노출중심이 있었다면 시선이 분산되었을 겁니다.

△ 다니엘 모렐(Daniel Morel), 아이티 지진 잔해에서 구출되는 여인

나이제르 사진과 반대로 이 사진은 어두운 피사체가 밝은 배경으로 나아오고 있죠. 죽음과도 같은 어둠에서 하얀 세계로 구출되는 여인의 사진에서 노출, 초점의 중심은 흑인 여자의 얼굴에 있습니다. 흔들린 사진에서 사진가의 시선과 일치하는 여인의 눈을 보면 당시 긴박한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 크리샌 존슨(Krisanne John­son) 작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독일 침례교 형제단의 한 소녀가 저녁 식사 후 부모의 농장에서 농구를 하는 사진. 밝은 배경 위에 놓인 어두운 복장의 소녀가 인상적입니다. 화면 하단의 모자 모양도 여기가 어디인지에 관해 말해줍니다. 사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하얀 눈밭을 더 희게 표현하면 주제가 되는 여자의 검은 옷이 적정 노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004년 세계보도사진전 수상작.

피사체가 잘 드러나는 노출이 아니라, 빛이 잘 드러나는 노출을 고려하자.


△ 데이비드 소스(David Sausse) 작. 2011년

독일의 어느 숲. 빛이 은근히 전체를 감쌀 때, 나무보다는 빛 자체가 이 사진의 주제가 되도록 근경부터 원경까지 적절한 노출로 아침의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오늘의 사진.

역광일 때 과감히 노출 언더로 실루엣 촬영하는 등 외곽선을 표현해본다.

△ 아담 프리티(Adam Pretty) 작. 중국에서 열린 제14회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

날도 흐린데 선수들을 이렇게 까맣게 찍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요. 그러나 이런 부드러운 명암차이에서 오히려 노출 언더 쪽으로 조정하여 하늘은 더 칙칙하게, 주제는 그 위에 놓인 종이 인형처럼 실루엣으로 표현했습니다.

△ ©John Brian Silverio. [Ollie Back­lit] 2010 (CC BY NC ND)

은근한 역광은 피사체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질지 몰라도 아름다운 외곽선을 선사합니다.

빛이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본다.

△ 김아타. 온-에어(On-Air) 프로젝트 중.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8시간 장노출로 찍은 사진인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그 많던 차들이 모래먼지처럼 바람으로 남아있다.

△ 로드리고 에스퍼(Rodrigo Esper). [Tribal]. 2008년

어두운 실내에서 제한된 조명 아래 춤추는 모습. 아예 셔터를 길게 해서 오랫동안 노출시켜 역동적인 색과 율동을 사진의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 오형근. [옷을 어깨에 걸친 아줌마]. 1999년

2012년 [중간인] 전을 통해 ‘개인’과 ‘집단’, 혹은 ‘나’와 ‘우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날의 군인들을 담았던 작가입니다. 원래 아줌마 사진으로 한 번 돌풍을 일으켰죠. 강한 전면 플래시 사용으로 대상은 갑자기 평면화되면서, 배경에서 유리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갑작스럽게 노출된 듯한 피사체는 부자연스럽고 강한 방식으로 관찰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던지죠.

그냥 사진이 어두워 보이니까, 좀 더 밝게 찍어야지……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사진에게 빛을 더 주어야 할 경우, 없는 빛을 발견하는 경우, 부족한 빛을 역발상으로 이용하는 경우, 오히려 빛을 이용하지 않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경우…… 이렇게 사진의 내용만이 아니라 사진의 밝기와 빛의 흐름을 읽어내면 또 다른 사진의 모습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존 시스템(zone system)에 관해 공부하겠습니다.

  • 도전과제: 가장 밝은 장소에서 가장 어두운 사진 찍어보기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4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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