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관찰기-05. 공포, 일처리, 수시철


△ 교실에서 주운 풍선, 2014년 10월

공포

선배 교사 한 분이 출근 후 학교 건물 지하 주차장 본인의 차 안에서 그만 의식을 잃었다가 한참 지나 정신을 차렸다. 뒤이어 출근한 교사들은 그 앞과 뒤와 옆으로 차례차례 무거운 금속기계를 놓고 황급히 교실로 오른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서운하고 무서운 마음을 말할 때 공감이 되었다. 넓고 깊게 사람을 보아야 하는 교사들의 주변 시야가 시계공보다 좁다.

그는 사실 시험 감독 중에 한 번 더 쓰러진다. 교실에서. 이번에는 노출되었고, 껍데기 안에 가려 있던 것도 아닌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괜찮으냐고 묻는 사람이 없다. 부축하는 아이도 없다. 그리고 교무실로 나중에 걸려온 전화. "우리 아이가 쿵 하는 소리에 시험을 망친 거 같은데, 뭐 담당 선생님께서 이 점 잘 처리해주시겠죠."

둘 중에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무엇일까? 직장에서의 비명횡사는 근무환경과 복지의 문제이겠지만, 일어나지 않았던 아이들의 시험 시간은 목숨보다 서러운 기억이 될 것 같다.

일처리

어느 나라 학교 학생들은 학교에서 단체 협상하고, 설문 돌리고, 파업하는 걸 배운다던데,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현장 중심에 있는 중요한 단어를 하나 고르라면 나는 ‘일처리’라고 하겠다. 일처리란, 분란 없이 신속함을 말한다.

"여하튼 되었다"라든가, "된 모양새"를 중요시하는 이 시선이 대부분의 학교 일과를 기획한다. 행동주의가 원투쓰리 펀치를 얻어맞은 게 언제인데 우리는 보여줄 성과를 생산하거나, 결국 어떻게 보일 것인가, 또는 보여지는 것을 어떤 보이는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하루를 다 쓴다. 애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으면 배우지 않았고 성취한 게 없으니 하나도 처리된 게 없다고 일러두고, 중앙시스템에서 번호별로 아이들을 정렬하여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옆 자리 선생님에게, "이제 몇 명 남으셨어요?"라고 묻는 게 우리가 아이들을 일감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이른바 난장의 흔적은 고대의 유물인양 자취를 감추었다. 누가 어린 사람은 실패해도 된다던가? 정기적으로 우리는 누가 실패했는지를 종이에 정리하여 배부하곤 한다.

연구원에서 전화가 왔다. "갑작스럽게 죄송하지만 오늘 저녁에 연구원들 회의하는 데 오셔서 성취평가제 관련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무례한 연구원 박사님들에게, 도대체 여러분이나 저나 왜 이렇게 일처리를 못하는 동시에 잘하려고 하는 건지 궁금해진다. 귀하는 "이 수업을 듣고 전문적인 내용의 담화를 읽고 저자의 심중을 이해할 수 있다." 따위의 성취목표에 어쩌다가 집착하게 된 건지 묻고 싶다. 성취하고 싶냐고 당사자에게 물어본 적이 없는 그 목표들을 말이지.

수시철

가장 따뜻하기도 하고 춥기도 하다는 계절, 수시철이 지나가고 있다. 발표가 나는 날은 함부로 질문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웃어서도 안 되며, 또한 혼자 울 수 있는 장소를 잘 모색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경쟁이란 같은 것을 원하는 사람이 많을 때 생긴다. 턱 괴지 말고 자지 말고 정신 차리고 노력하라는 주문하는 선생님도 계시고, 웅크리지 말고 가오(?)는 잃지 말고 너만의 인생을 살라고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시장의 생리를 무시하고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교사도, 열패감에 빠진 애한테 세상이 만만하고 동등한 가치들이 전시된 슈퍼마켓이라 노력만 하면 골라서 성취하는 판매대인 것처럼 말하는 어른도 재수없기는 매한가지더라 만은, 어른들이 뭐라 하든 결국 그저 이 수시철에 떨어지는 건 낙엽이 아니고 그저 애들의 눈물이 아닌지.

가끔 교무실에 합격 인사로 먹을 걸 사들고 와서 편지랑 내미는 학생들도 예쁘고, 불합격했지만 "괜찮습니다. 선생님도 저 상담해주시고 추천서 챙겨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그래도 감사해요."라고 말하는 놀라운 학생들은 더욱 예쁘다. 그러나, 가끔이라도 내 자리로 놀러 오던 아이 중에 수시철 찬바람 지나고 나자 스스로 자격이라도 박탈된 것처럼 소식 없는 얼굴들은 얼마나 슬픈가.

(2015년 11월)

“학교관찰기-05. 공포, 일처리, 수시철”에 대한 2개의 생각

  1. 크게 잘못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 위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 서글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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