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관찰기-06. 수능, 소수자, 낙태, 귀여니


△ "선생님은 이상한 생각 전문가에요", 2015년 11월

수능 전날

담임 선생님과 으쌰으쌰 힘내자고 종례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또 교무실로 내려오는 아이들이 있다. 발길 향하는 걸 보고 있으면 중요 과목순이 아니라 그래도 나를 위로해준 적이 있던 선생님, 내 이름은 챙겨서 불러주던 선생님한테 총총 모여들어, "쌤 기를 받으러 왔습니다." "쌤 저 내일 잘 다녀올게요." 별 내용도 없는 인사를 건네고는 쑥스럽게 퇴청하는 풍경이다. 섬처럼 군데군데 자신의 구루를 찾아 나름의 의식과 주문을 외우는 듯한 풍경 속에, 교무실 한 켠에 여자 둘이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시험을 망친 게 아니라 시험을 치러 가기 전에 미리 남은 울음을 모두 쏟아내고 싶었던 걸까, 뺨도 코도 빨간 아이가 푹 안겨진 품에서 나와서 흔한 고맙다는 말도, 잘 다녀오겠다는 말도 없이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큰 여자는 계속 등을 도닥이는데 내 코도 시큰한 향이 올라오더라.

소수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 중에 "인권 변호사", "인권 단체"에 들어가고 싶다는 애들이 있다. 정밀한 정의는 못할지라도 나는 일단 아이들이 "사람이라면 응당 괴롭히지 말고 박탈하지 말고 지켜줘야 하는 그 무엇"에 대한 도덕 감각을 늘 주제 삼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고는 한다. 아이들의 인권은 무엇인가? 때로는 그것이 자신의 또래 집단이나 친구 고리를 벗어난 타인에게 가차없이 무너지는 신념이기도 하지만, 또한 자주 그것은 최소한의 기만이 없다면 어른들이 두려워하는 많은 제한사항을 가볍게 뛰어넘어 선사할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어른들은 생각이 어리고 미성숙한 살이의 전형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교실에서 친하지도 않은 아이를 위해 손잡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가거나, 더럽고 하기 싫은 일 앞에서 ‘제가 할게요!’라고 손 드는 아이들을 숱하게 만나왔으며, 그래서 아이들은 인권을 잘 알고 있고 스스로 잘 배운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음은 내가 이 학교에서 어른(교사)들에게 지난 주에 들은 말들이다.

성소수자 문제가 인권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동성애는 비성경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합니다.
그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면 애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잖아요.
소수자라는 말이 공격을 피하려고 그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쓰는 말이라던데요.

낙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전국에서 수많은 중고등학생들을 데려다가 단체봉사활동을 돌려주는 모 기관이 있는데, 이 기관이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건재한 이유가 무엇일까? 애들이랑 이번에도 전교생을 데리고 봉사활동에 투입시키면서 입에 텁텁한 기분만 남는 하루를 보냈다.

우선, 이런 방식의 규모로 실행되는 새마을 봉사활동은 이제 지양되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하루 있다가 돌아갈 아이들과 그 어떤 의미와 유대를 형성하고 싶은, 또는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 아이들은 커다란 복지시설이 어떤 규모의 사람들을 수용하여 유지하기 위해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많은 양파와 많은 기저귀와 많은 걸레로 하루하루가 반복된다는 사실과, 김장을 하기 위해 4천 포기의 배추가 필요하다는 스펙터클 외에 얻는 게 없다. 그런 장엄함은 아이맥스 영화관처럼 서울의 중심가에서도 흔히 보던 ‘구조’인데.

두 번째로, 종교시설의 설립취지나 운영 기조에 대한 교육을 지자체 차원에서 좀 배제해라. 그 기관에서는 10대 학생들에게 수년 째 낙태 비디오를 틀어주는데 집게로 태아를 꺼내는 장면이나 심지어 부서진 손과 발까지 그 어떤 모자이크나 여과 없이 시전하면서 "우리 나라가 자살율이 높은 건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다. 십대들도 병원 가서 이런 식으로 낙태한다."는 메시지를 일방 주입한다. 단지 종교 관련 시설이라고 해서 청소년에게 공공 상영하는 것이 위법해보이는 영상을 연간 수 천 명의 학생들에게 틀어주며 선정적으로 낙태 반대론을 펼치는 걸 행정기관은 아는지 궁금하다.

상식, 그리고 일베충

국정화 교과서 관련 몇 명의 학생들이 꿈틀꿈틀 거렸는데, 열이 난 학생회장은 무언가 크게 해보려다가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 거 같아요"라며 돌아갔고, 아침에 학교 밖에서 일인 시위를 하다가 출근한 그 교사는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과 자신의 머리 속에 든 것 사이에 분열을 관찰하고는 큰 한숨을 쉬며 말했다. "쪽팔린다."

어떤 아이는 앞뒤가 잘 맞지 않지만, 성긴 어휘로 자보 비슷한 것을 붙였는데, "그래도 이런 방식은 아닌 거 같다"는 반대 의견에 금세 아이들이 달라붙어 "너 일베충이지"를 시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양쪽 아이를 달래며 서로 혐오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보았지만, 기분은 계속 우울했다. 편가르기와 혐오를 차단하는 것이 정치적 의견보다 먼저라는 교사들의 이야기에 아이들의 열은 다행히(?) 좀 진정되었지만, 거꾸로 보면 과연 무엇이 혐오할만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 번 빼앗으면서 늘 하던대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들 자리에 다시 앉아 다음날 아침 일곱 시 오십 분에 하루를 시작하며, 거울을 보며 말한다. "그래, 내일모레가 수능인데."

귀여니

영어 수업을 하다가 언어 사용 습관이 정치나 경제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지만, 일상의 언어 사용 습관을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 언어 전체의 활용과 규칙이 더욱 건전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읽었는데, 말 나온 김에 귀여니에 관한 경험을 애들에게 물었더니 애들이 꺄륵꺄륵 웃으면서 다들 할 얘기가 많더라는.

근데 우리반 친구가 한 번 읽어보라며 귀여니 책을 한 권 빌려주었다.

어제 경원이랑 무슨 일이 있었길래 머리에 나사가 풀린 듯 실실 웃어대는 거지? ㅇ_ㅇ
"아싸~~! 빠리ㅂㅏㄱㅔ뜨ㄲㅓㄷㅏ!"
– 귀여니, [그놈은 멋있었다], 반디, 2006년, 170쪽.

결론적으로 다시 보니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실제 내가 교실에서 듣는 여자 아이들의 목소리를 잘 보여주는 기호 활용이라고 생각이 들며, 소설적으로 또는 작가의 의도대로 말하는 어떤 소녀를 등장시킨 숱한 성장소설들보다 오히려 바로바로 입에서 튀어나오자마자 키보드로 타이핑되어 각인된 글자들이 꽤 매력적으로 보이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ㅋㅋㅋ

이른바 ‘리터러시’에 대한 어른들의 우려란, 귀여니 이후에 우리가 진정 붕괴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사실 책상 정리에 관한 엄마들의 불안 정도로 생각해도 괜찮지 않나 한다. 누구나 닥친 문제에 대한 최소한 독해력을 생존의 기술로서 지니게 되어 있다. 교사는 따라서 언어 습관의 교정보다 이러저러한 문제가 사실은 너의 문제인데, 이 문제를 충분히 서술할 용기와 관찰과 관심에 관해 학생에게 물어야 하며, 진정 관심있는 대상이 생길 때 아이들의 어휘는 그 어떤 형태로든 날카롭고 정교해지기 마련이다. 그 날카로운 결과물이 기성 문법인지 아닌지는 언어의 발달을 규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언어가 그것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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