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기술] 01. 호주 Lumineer Academy — 실리콘밸리처럼 학교 만들기

호주 멜번에 위치한 초등학교 Lumineer Academy 에 관한 뉴욕타임스 기사입니다. 실리콘밸리의 혁신마인드를 학교 현장에 옮겨심는 시도가 꽤 붐이라 할 수 있는데, 둘러싼 쟁점을 균형있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 출처: medium.com/luminaria

기존 학교 시스템은 낡았고 학생을 괴롭힌다

우선 Lumineer에는 기존의 교실, 교복, 시험과 성적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명백히 학생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는 요소가 됩니다.

“현재 우리의 학교 모델은 100년도 더 된 것으로 산업혁명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 중요했던 건 비슷한 한 세트의 노동자들을 뽑아내는 동질한 공장이었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이것은 학교 설립자이자 실리콘밸리 출신인 Susan Wu가 한 이야기로, 그는 미래 사회에 적합한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으로 LUMINARIA 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는 스트레스 없는 (stress-free) 새로운 교육 모형으로 자신의 학교를 선전합니다.

비판으로, 이러한 대안학교 시스템에서 마음껏 놀면서 학습한 이 학생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을 때 더욱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가령, 십대 중후반에 겪을 사춘기의 혼란에 대처하는 능력은 놀이와 프로젝트 중심의 교육 환경 속에 초등학교 다닌 아이들이 더 약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거죠.

물론 기사에서는 이를 “sticking together”하면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아이의 말을 인용하며 은근히 안아 마무리하는데, 기존 시스템이 갈등에 더욱 집단적이면서 공동의 노력으로 대처하는 솔루션을 주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학교 ‘전체’가 책상 앞에 앉아있는 개인의 성적보다 전체 집단에 대한 공동의 기여와 협업을 강조할 때, 개인에게 닥치는 역경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 문화를 몸에 익힌 사람이 앞으로 더 많아지도록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데 ..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공간 — 교실, 교복 등 위에서 강제하고 구획하는 선을 없앤다

Lumineer Academy에는 교실이 없고,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처럼 커다란 화이트보드와 편하게 눕고 기댈 수 있는 비즈쿠션 의자를 마련해둔 공간이죠. 여기엔 일반 교실처럼 개인 책상이 없고, 푹신한 소파가 있는 방에 비즈쿠션 의자에 뒹굴면서 각자 책을 보거나, 애들의 키높이에 맞춘 스탠딩 탁자가 군데군데 있어서 함께 모여 의논할 일이 있을 때 사용하는 듯 합니다.

교복 이야기도 재밌는데, 호주는 원래 사립 초등학교에서 교복을 많이 입는 편인데 이 학교에는 교복이 없습니다. 대신 일종의 드레스코드로, ‘prescribed palette(규정 색상)’을 제시하고 있어요. Lumineer 는 ‘Nautical Stripes (항해선원 느낌의 푸른 줄무늬)’와 카키색을 제시하고, 학생들은 티셔츠, 원피스 등등에서 이러한 줄무늬, 카키 색상을 응용한 나만의 옷장을 꾸며두고 입고 등교합니다. 사진을 보니까 때로 코드가 맞지 않거나 어색한 아이들도 있지만 뭐 개의치 않는 것 같고, 코드를 맞춘 애들이 군데군데 보이면서 같은 배에서 내린 선원들이 모여있는 재밌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Lumineer 커리큘럼 — 하드와 소프트

전체 커리큘럼은 Hard 와 Soft로 나누어, 하드한 S.T.E.M. 과목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게 들어가고, 소프트 쪽에는 정서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나 팀워크를 키우는 활동이 포함되는 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물리학의 “제1원리(First Principle)” 위에 올린다고 설명합니다. 이건 엘런 머스크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 사람들의 사고 과정이 이전의 경험이나 관습에 너무 얽매여있다. 무엇인가를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부터 생각하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 “항상 이렇게 해왔던 거니 우리도 이렇게 해야지.”라고들 말하거나, 아니면 “아무도 이렇게 한 적이 없으니 분명 좋은 방법이 아닐 거야.”라고 말한다. 바보 같은 일이다. 무엇인가를 추론할 때는 항상 그 근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 1 원리”는 물리학의 용어이다. 문제의 근본을 보고 그것으로부터 추론을 쌓아 올리는 것, 이렇게 도출된 결론이 타당한지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과학의 언어로 말해보면, 참임이 증명된 증거로부터 시작해야 함을 의미한다. 과학자는 “지구는 평평해. 왜냐면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야. 직관적이고, 모두가 그렇다고들 동의하잖아.”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육안으로 확인하는 지구는 지구의 일부이며, 일부만을 본 경우에 평평해 보이는 다른 모든 사물과 같이 지구의 일부 역시 평평해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 지구의 전체 형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만한 정보가 부족하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말은 세워볼 만한 가설이지만 우리가 이 가설을 확인하고 증명할 도구와 기술을 갖추기 전까지 결론을 확정 지을 순 없다.”고 말한다.
출처: hahnryu.com에서 재인용

교수법 — 실리콘밸리처럼 질문하기

가령 스튜디오에는 8-9명이 들어가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단계별 디자인을 통해서 표현하도록 훈련시키는데, 이것은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구상해서 실제 런칭하기까지의 과정과 정확히 닮아있습니다.

  1. 블루스카이 씽킹 = 박스 밖에서 생각하기. 창의적 브레인스토밍?
  2. SCOPE = 일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자원을 파악하기
  3. MVP = 일종의 프로토타입으로 내가 생각한 것을 최소한으로 구현해내기
  4. 실제 실천과 적용

꽤 근사한 네이밍이면서, 신제품을 런칭하는 듯이 자신의 생각을 구상 단계에서 실현으로 이끌고 가도록 한 플로우가 마음에 드네요.

또, “Profitable micro-farm” 만들기 수업도 등장하는데, 뭔가 스스로 키워서 지역의 시장에 1년 안에 직접 기른 거 팔아보기 수업이랍니다. 8살 아이가 개미집을 허물면 개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기고 관찰하고 배운 바를 정리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가설-검증-피드백 과정이 과학 실험 수업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죠.

Lumineer 의 교육철학 요약과 적용 사례


Luminaria.org 에서 소개하는 교육철학 모형

홈페이지에 가면 Luminaria 과정의 교육철학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제1원리(First Principle)에서 지식을 도출해 배운다: 기존에 알고 있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박스’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면서 가장 튼튼한 원리와 가정에서부터 검증해가며 지식을 구축하는 것.
  2. 시스템 사고(Systems Thinking)을 장려한다: ‘시스템 사고’ 또한 꽤나 유행한 개념으로, 에너지와 자원을 어디에 집중하여 행동 인풋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예측하는 사고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합니다. 문제를 변수 사이의 관계로 보는 힘, 복잡한 시스템에서 성과를 높이기 위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레버리지 포인트를 보는 안목을 갖추는 교육입니다.
  3. SEL과 STEM의 종합: SEL이란 Social Emotional Learning의 약자로, ‘사회정서 배움’으로 번역합니다. 협동심이라는가 타인에 대한 배려심 등을 실제 교육의 커리큘럼으로 끌어와서 직접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인성교육 트렌드입니다. Lumineer 에서는 애착이론, 긍정 심리학, grit과 정서적 탄력성 키워주기 등 여러가지 인성발달 개념을 커리큘럼에 포함했다고 주장합니다. STEM은 일종의 컴퓨테이셔널 씽킹을 중심으로 한 미국 학교의 이과 과목 교육 강조를 가리킵니다. 과학(S), 기술(T), 공학(E), 수학(M)의 줄임말이죠. Lumineer 는 인성 교육을 커리큘럼에서 중요하게 다루면서 문제 해결 중심의 이과/컴퓨터 교육을 공부 과목의 중심에 놓겠다는 겁니다.
  4. 메이커 프로젝트 (Maker Projects) 중심: ‘메이커’ 교육 또한 트렌디한 단어죠. 직접 실체가 있는 어떤 것을 구현해내는 것을 교육의 단계에 포함하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특히 전체 교과과정에서 이런 실제 구현과 수행이 70% 이상이 되도록 하여 이론 중심의 배움이 역전됩니다.
  5. 실제 세계에 기여(Authentic Real World Purpose): 최종 지식과 성과물이 사변적인 게 아니라 실제 세계를 이롭게 하는 목적과 의미를 지니도록 합니다. 모든 커리큘럼은 실제 그것들을 적용할 수 있는 ‘탐색 모듈’과 연계되어 실제 구현되도록 하는데, 통나무집 짓기, 소설 완성하기, 새로운 학교 거버넌스 모델 구축, 새로운 악기 만들기, 마음 건강에 좋은 샐러드 레시피 개발, 직접 키운 농작물로 수익 내기, 드론 만들어 장애물 통과하기 등으로 제시됩니다. 이런 단일 모듈 안에는 그동안 배운 여러 지식이 융합되어 사용되겠죠.

이것이 맞느냐와 별개로 어떤 순서와 철학을 학교교육에 도입하고자 하고 있는지, 기존의 학교 시스템에 과연 무엇이 그토록 부재하길래 이러한 혁신 기업가들이 이러한 주사를 놓고자 하는지 관찰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가령, 위의 그림의 순서가 가리키는 철학과 그 실천이 기존 학교에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전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이런 새로운 학교 모형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일단 이 구성과 제시에 있어서 세련된 전략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다섯 가지 교육철학 위에, Curriculum Epistemology Framework(커리큘럼 인식론 프레임워크)을 더합니다. 이것은 교육과정을 과목별로 가져가지 않고, 질문 위에 놓겠다는 의도로, 가령 “영어와 수학과 지도제작의 유사성에 주목하자”와 같이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도구 = 도움 지식, 팁, 매뉴얼, 인적 도움”가 제시되고, 그 위에 기존 국가의 과정 이수 가이드라인과 기준을 참고하여 보충하는 방식으로 학습 여정(learning exploration)이 짜여집니다.

가령, 아래와 같죠. (홈페이지에서 보기)

  1. 제1원칙으로 지식 얻기: 인간 사회에서 물이 가지는 중요성과 역할 알아보기. 물은 어떻게 모아지고 어떻게 분배되는가? 깨끗한 물에 대한 접근은 모두에게 평등한가? 깨끗한 물을 얻기까지 시간과 자원은 얼마나 들어가는가? 깨끗한 물을 풍부하게 얻지 못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살펴보면서 배우자.
  2. SEL + STEM : 실제 파푸아뉴기니 마을과 협력하며 수도 시스템/시설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배운다. 해당 마을의 가뭄의 원인과 해결책을 공동으로 조사한다. 진짜 마을 사람들의 필요와 내가 전에 생각했던 것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수원지, 정수 기술 등의 개념적 학습과 구분하기. 단계에서 학생들은 친구들과 작업하면서 참을성과 겸손함을 배우고, 관개 장치와 여과 시스템을 만들어 마을의 각 가정에 보내줄 계획을 세운다.
  3. Maker 프로젝트: 4-5명의 팀으로 프로젝트 팀을 운영하고, 기존에 배운 리터러시/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사용하도록 과정에서 훈련된다. 마을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직접 공부한 내용으로 소통하며, 필터링 장치를 만드는 매뉴얼을 꼼꼼하게 읽으면서 기술용어에 대한 공부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직접 키트를 제작한다. 학생들은 물의 수집, 정화, 관개, 저장에 대한 과학 지식을 배우게 되며, 실제 “만듦으로써” 배운다. 과학, 수학 이론을 실제 기능하는 물 정화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이용하고, 실제 제작된 기기는 해당 마을의 가족이 유용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다.
  4. 배움이 의미있는 것이 되도록 하기: 파푸아 뉴기니 마을의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직접 친구가 되도록 하고, 직접 이야기를 들으며 물이 인간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도록 한다. 기후 변화가 이 마을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직접 느낀다. 현지의 마을 사람들과 비영리 기구와 협력한 수업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authentic) 맥락에서 사용 가능한 도구를 제작하게 되며, 가뭄 시기에 실제 마을 사람들이 채소를 키울 물을 저장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장치를 배급하게 된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필요한 비용 마련을 위해 발표자료(pitch decks)를 작성하여 지역 로타리 클럽 등을 통해 기금을 얻고, 현지 마을의 대표 등을 통해 현지 지식을 얻어냈다.

비판

기사에서는 비판도 잘 다루고 있는 편입니다. 일단, 상업적으로 또한 대중에게 있기 있을 애플리케이션을 시장에 뿌리는 게 일차 목적인 실리콘밸리의 교육 방법이 학교 현장에 과연 타당한가라는 물음이 있습니다. 시장에 먹힐 것 같은 앱을 만들어 뿌리고, 성공 여부를 보면서 다시 도전하는 제품/서비스 개발 과정에 대신 사람을 집어넣어 아이들을 돌려서 제대로 생산적 인재로 굴러갈지 테스트해보는 거 아니냐는 거죠. 제품 개발 순서도에 재료만 사람으로 대신 넣은 것이라는 날선 비판입니다.

두 번째는 이런 종류의 혁신 학교 사례에서 자본의 주체가 민간 기업이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에서 사기업/기술기업 자본 유입이 교육에 쉽게 간섭하는 편인데, 우리나라보다 덕분에 멋지고 광범위한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는 듯 보이지만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구글과 아마존이 교실에 너무 쉽게 들어서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요? Elon Musk와 Netflix 의 돈으로 세운 학교와 프로그램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그 학교가 비영리기관이라 하지만 기업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죠.

세 번째는 이런 움직임이 성과를 기대하기에 때 이르거나 어쩌면 유행에 있어 철 지난 감이 있다는 겁니다. 기존 교육의 판을 뒤엎겠다는 야심찬 출발은 좋은데 투자할 곳을 찾는 자본이 입맛 다시는 또 하나의 버블 섹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 미래 교육의 첨병이 될 것처럼 문을 연 후, 투자금만 까먹고 등록금은 비싸고 운영난에 빠져 문을 닫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사례가 이미 관찰됩니다. 야후가 망하는 거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5년 넘게 실험적인 교과운영을 하던 학교가 실패하는 것은 많은 사람의 인생에 치명적이죠. 교사들도 기존의 학교가 너무 권위적이라 이런 신생 학교에서 꿈을 찾고 싶어하는데, 역시 언제나 옳은 선택이리라 누가 장담할까요?

네 번째로 커리큘럼 자체에 대해 혁신성을 의문시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뭔가 새로운 거 같지만 기존에 다 있던 거라는 거죠. 결국 마케팅을 위해 만든 용어이다. 테크 기업과 학교가 만나는 현장에서 만든 과정을 잘 보면 결국 클리셰에 불과하고, 인기 있는 키워드로 포장한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소셜 러닝, Emotional Learning, 마인드셋, grit, S.T.E.M., 마인드풀니스(마음챙김), authentic learning, 글로벌 인식 .. 이런 유행타는 용어를 사용해서 기존 수업을 조금 비틀고 다시 잘 포장하면 혁신 학교의 수업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무언가 일반학교의 교육 테제와 전혀 다른 것을 배우는 별천지 학교일 수가 없다는 지적입니다.

현재 Lumineer 학교엔 130명 재학생이 다니고 호주 달러로 10000달러(미국달러 기준 $8000)의 연간 비용을 내는데, 공립학교에 비해 거의 10배 규모인 듯 합니다.

(2018년 6월)

1 개의 댓글

  1. 우와아아아 이런 의견이 있었군요!!!!! 새로운 발상인 것 같아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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