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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윈게임 (win-win game), 교실에서 직접 해보니

윈윈게임, 간단하게 카드로 만들어 교실에서 직접 해 본 소감이야.

  1. 상대방이 W 카드를 내고, 나도 W 카드를 내면 두 팀 모두 3점을 받는다.
  2. W 카드를 내는 상대방을 배신하고 M카드를 내면 6점, W 카드를 낸 쪽은 -6점을 받는다.
  3. 상대방을 서로 불신하고 둘 다 M 카드를 내면 양쪽 모두 -3점을 준다.

위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무엇일까?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론 알지? 서로 상대방이 무슨 카드를 낼지 모르는 상황에서 2)의 선택이 가장 낫지. 왜냐고? W 카드를 내면 3점 따거나, 6점 감점이니까 평균 잡아 3점 손해지. 근데 M 카드 내면 6점 따거나 3점 감점이잖아? 수학적으로 평균 +3점이지. 결론적으로 6점 감점되는 건 너무 치명적이야.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손해를 보더라도 ‘너 죽고 나 죽자’식의 비합리적 결론이 차라리 나아. 공멸을 선택하는 것이 멍청해 보이지만 사실은 역설적으로 상대방을 신뢰할 준거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수학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라구. 게다가 상대방을 속이는 데 성공할 경우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잘만 하면 로또 당첨보다 짜릿할 수 있어.

일단 믿지 않고 보는 게 좋은 전략일까?

실제로 2학년 1반에서 한 팀이 정치적 협상을 통해 상대방을 두 번 등쳐먹으면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지. 아래 표에서 B팀은 A팀에게 심지어 W를 적은 카드를 보여주면서 신의를 버려서는 안된다고 했다가 두 번씩이나 마지막 순간에 M 카드로 바꿔치기하여 12점을 가로챘어. 맙소사. B팀이 똑똑한 거야, A팀이 순진한 거야?

팀명1회2회3회
AWWM
BMMM

여기서 문제는 B팀의 등쳐먹기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 하는 거지. EBS 다큐프라임 <설득의 비밀>에서는 협상에서 약속을 지키는 게 장기적으로 서로의 이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윈윈 게임’을 해야 결과적으로도 이익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지금 이 사례에서 A팀도 두 번은 성공했지만 결국 3회 이후부터는 영원히 불신의 길로 접어들어든 것 같네. 얘네가 4회부터 서로를 믿겠어? 서로 M 카드만 이제 영원히~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유로운가?

사실 요즘 입시 교육을 보면 M카드 잘 내는 법을 가르치는 기분이야. 말이 글로벌 사회의 경쟁력이지, 사실 이런 식으로 상황과 친구를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이용해서 M카드 내고 빠지는 ‘먹튀’ 전략의 교습소가 학교랄까? 합법적이고 규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 내에서 타인을 등쳐먹는 것이 스마트하다는 태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은 기본적으로 이런 이기심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는데,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의사결정을 하고자 하고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고자 하는 이러한 합리성을 기반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해. 이건 도덕적인 이기심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가정하고 인자로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지(그래서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를 선택한 거야). 경쟁을 장려함으로써 결과 생산물의 질과 양을 보장받는 편이 좋다는 거야. 하여, 이 문제는 B팀의 도덕성을 나무라고 회초리를 들어서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M 카드만 무한히 양산되어 생산량이 네거티브한 방향으로 기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서로 간에 최소한의 약속(레짐)을 수립하여 해결해야 하지. 우리도 사회적 안전망 같은 게 있지. 최저소득 같은 거 다 A팀처럼 W카드 두 번 낸 애들이 게임아웃되지 않고 계속 게임할 수 있게 해 주는 제도라고.

FTA도 이런 레짐을 강조하지. “너네 우리 소고기에 세금 매기지 마. 대신 너네는 우리 땅에 들어와서 자동차 팔면 되잖아. 대신 서로 죽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무역을 자유화하자.” 다시 말해서 FTA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무역개방이 예컨대 “우리 축산 업계 다 죽여줘. 대신 너네 자동차 산업 좀 죽어줄래?”식의 자폭적 협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야. 논란이 있지만 지하철 광고와 달리 FTA가 각 국가의 취약산업을 붕괴시킨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지. 바로 이것이 현대 게임의 규칙이야. 즉, 우리는 “열심히 싸워라, 단 게임을 못하면 안되니까 죽지는 말아줘”라고 말하는 규칙의 링에 서 있어. 신자유주의는 카드를 제시할 자유는 절대 침해하지 않은 채, 게임 오버를 막을 수 있는 울타리 안전망만을 최소로 구축하고 상호 손해를 거래하는 방식으로 궤멸을 막아왔다고 생각해. 죽지는 않아요. 펜스도 설치했어요. 최고속도 제한은 없어요. 모두 계속 달리세요! 저기 소달구지 아저씨, 헬멧은 드릴게요. 뒤에 F1 자동차와 함께 열심히 달려보세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현실에서 이 게임이 생각보다 잔인하다는 거야. 2회까지의 게임을 통해 12점을 획득한 B팀은 EBS 다큐프라임에서 말하는 것처럼 윈윈 게임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할까? 삼성이 세금 떼어 먹고 후회하디? 이미 3회의 게임에서 물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된 팀 보고 “이제부터 그러면 혼난다” 하면 “이제부터 안 그럴게요”라고 말은 하겠지. 그래서 B한테 벌금 좀 물리고, 다시 공정무역/공정한 협상을 시작한다고 해서 A팀이 아까 병신처럼 순진하게 있다가 잃어버린 12점은 누가 보상해주나? 오히려 투자를 통해 노다지로 돈을 벌어 비축자본이 있는 A는 계속 M 카드를 제시하여 B를 고사시킨 후, 시장을 독점할 확률이 높아. 혼내줄 때 엄청 혼내주면 된다고?

윈윈게임, 즐거운 신뢰 없이는 힘들다

글쎄.. 공동의 약속이 있다고 해서 그 자체가 합리적 결정을 보장하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이야. 아래 사례를 보자.

팀명1회2회3회
발롱WMM
재인WMM

발롱과 재인은 둘 다 협상이 없는 상황에서는 착하게 W를 제시했었는데, 오히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W를 내기로 협상을 마친 후에 동시적으로 M 카드를 제시했어. 얘네 진짜 웃겨. 이거 보고 우리 반 전체가 폭소를…. 왜 어떤 사람들은 약속이 없는 상황에서보다 협상과 규약이 생긴 후에 일탈하는 거야? 너무 이상하지 않아? 내 생각에 협상과 규약이 생기면 상대방이 W 카드를 낼 가능성이 더욱 증가한다고 믿기 때문이야. 규약으로 강제되는 환경은 규약을 위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욱 달콤하게 보이도록 하지. 역설적이지? 엄마가 먹지 말라고 장롱 위에 꿀단지를 올려놓는 순간, 평소에 관심 없던 꿀이 먹고 싶어지는 것. 그래서 위 두 팀은 오히려 협상을 시작한 후 초고속으로 공멸의 길에 들어선 것이지.

반면 아래 표에서 보듯, 탁지 팀과 기미 팀은 줄곧 W 카드를 제시했지. 이 두 팀은 협상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도 않았어. 1회 때부터 믿는다는 전제 하에서 W 카드를 썼고, 2회에서도 긴 협상은 필요하지 않았어. “너네 M 카드 내면 죽을 줄 알아”와 같은 위약 조건마저 제시하지 않았어. 3회 때도 망설임이 없었지. 즉, W-W 카드를 내면 낼수록 협상 때 스트레스도 줄고, 심리경제적 비용도 감소한 셈이지. 20년 넘게 동네 구멍가게 금고를 지키지 않는 어떤 시골마을은 이제 마을 사람 전체가 서로를 너무나 당연하게 믿기 때문에 구멍가게 금고에 대해 별로 걱정 없이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편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 그게 바로 윈윈게임.

팀명1회2회3회
탁지WWW
기미WWW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건, 이 두 팀은 카드 결과가 나올 때마다 엄청 박수치고 좋아했다는 거야. 아 물론 환호소리는 아까 처음 보여줬던 W-M 카드쌍에서 M카드를 낸 B 팀도 컸지. 근데 남에게 6점의 손해를 끼친 댓가로 6점을 얻은 환호성은 한 팀이 낸 것이었지만, 탁지 팀과 기미 팀은 둘 다 환호성을 질렀으니까 후자가 양적으로 크다고 할 수 있지 않나? 윈윈게임 본질은 공동의 환호성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에 있어서도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고 생각해. 탁지-기미 팀은 B팀과 같이 다음 게임에 대한 불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더욱 행복했다고 본다.

윈윈게임? 나는 이 게임에서 즐거움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삶에서 서로를 공멸로 떨어뜨리고야 마는 카드 선택 게임에 있어서 말이야. 내 주장은 즐겁지 않으면 우리는 W 카드를 낼 수 없고, W 카드를 내지 않으면 즐거울 수 없다는 거야. 합리적 규약이 선행하는가의 여부, 인간의 경제적 선택은 언제나 이기적이며 이러한 이기성을 합리성과 등가로 보는 인간관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 불법적 탈선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도 필요하지. 그러나 근본적으로 게임에 임하는 두 팀이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는가, 그들이 즐겁게 서로를 신뢰하는가는 단순히 허무한 얘기가 아니라 이 생존게임에서 대단히 중요하게 교육해야 할 지점이라는 거야.

수치를 아는 사람들의 윈윈게임

조커카드, 그리고 윈윈게임
△ 함께 사는 사회에서 상대방을 계속 속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아래 사례를 보자.

팀명1회2회3회
발유WWM
석경MMW

2학년 2반에서도 이 글의 맨 처음에 등장한 사례처럼 두 번 상대방을 속여먹는 사례가 있었어. 석경 팀은 두 번 눈치와 말빨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 불쌍한 발유네는 두 번 속은 후 결국 M 카드를 냈어. 그런데 12점이라는 거대한 점수를 얻게 되었으면서 석경네 팀이 마지막에 그냥 W 카드를 냈어! 마지막에 M 카드를 내도 결국 1위인 탁지-기미 팀과 동률을 이룰 수 있었는데 왜 포기한 걸까?

물론 이 팀에 속해있는 애들이 좀 계산을 잘못했을 수도 있어. 그렇다 해도 마지막에 W 카드를 낸 태도는 말이야, 자발적으로 쓸데없는 손해를 감수하는 비합리적 선택이라고 볼 수 있지. 삼성이 미안하다고 거리에 돈을 뿌리지는 않아. 그런 점에서 얘네 진짜 이상해. 여러분은 이왕 이길 때 큰 점수차로 이기는 게 좋지 않아? 그래야 나중에 더 쎈 애가 게임에 참여해도 내 기록을 못 깰테니까 말이야. 근데 석경 네는 왜 W카드를 낸 거야?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게임 도중 교실 뒤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네”라는 대사가 나왔지. 충격적이게도 석경네 팀이 발유팀을 한 번 더 등쳐먹는 데 성공했을 때, 걔네 팀 내부에서도 미안함 마음과 수치심이 생겼다고 생각해. 좀 미안한 거지. 착한 발유네는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며 망연자실하게 되었고 말이야. 석경네 팀은 환호성을 지르며 연속으로 6점씩 12점을 획득했으면서도 사실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거든. 그래서 결국 마지막 순간 이런 미안함이 W를 내도록 했고 결과적으로 점수는 6점이 되었지.물론 얘네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가 이겨봤자 선생님이 돈을 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어. 아니면 마지막에 M카드를 내면 최종 점수가 9점이었겠지만, 이 점수는 3회까지의 게임으로는 윈윈 게임을 하고 있는 팀과 동점일지 몰라도 4회차 이상의 게임이라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가능해. 그래도 그렇지. 이 갑작스런 인생무상의 태도라니… 참 재밌는 녀석들이었어.

결론적으로 난 ‘인류애’의 문제가 승자독식 사회에서 벌어지는 게임에 대단히 중요하게 개입한다고 봐. 개인이 또 다른 개인을, 이제는 현대사회에서 한 국가가 또다른 한 국가를 문화적으로 심리적으로 형제애로써 대해봤자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경제적 결과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네. 어떤 팀은 오히려 규약이 있기 때문에 M 카드를 선택한다는 것, 어떤 팀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사회적 수치심?으로 W 카드를 내어 패배를 자초한다는 것은 이기심의 메카니즘으로만 의사결정이 작동한다는 신자유주의 주장에 대한 반례라고 할 수 있지. 작은 게임이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타인과 섞여서 사회심리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지 알 수 있잖아?

그래서 M 카드를 계속 내는 사람들을 규제할 국제규약의 발명도 시급하지만, 우리가 차마 수치심 때문에 M 카드를 낼 경우 얼굴을 들 수 없는 건강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야. 3점으로 충분히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노후대책도 할 수 있는데, 12점을 가지고 싶어하는 태도에 대한 사회적 반감 말이야. 방법론적으로는 국제적 협약과 강제적인 공동대응만으로 이러한 편중을 해결하고 윈윈게임 가능할까? 인류애를 향유할 수 있는 토종 텍스트와 이미지 그리고 작은 삶에서 매일 매일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동네 문화가 훨씬 중요하지. 바로 이러한 고민이 세계화를 반대하고 Localization을 주창하도록 하지. 이것은 수 억 명이 참여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동시에 W 카드를 내는 것은 정말 눈치보느라 피곤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경제적 활동과 정치의사결정의 단위를 개별 국가, 작은 마을 단위로 지켜냄으로써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오히려 전체 인류의 생존에도 적합하다는 주장이야. 로컬라이제이션을 지역 이기주의와 혼동하면 안 돼. 내가 사랑하고 알고 있는 앞집 할아버지를 배신하고 M카드를 낼 수 없는 시스템을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전체의 생존에도 불리하다는 테제로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작은 경제에서 규약을 최소화한 상태로 즐겁게 계속할 수 있는 윈윈게임 – 내 삶의 희망이고 바람이기도 해.

(2009년 8월에 쓴 글)

보론: 죄수의 딜레마 보론 (이바닥, 2009.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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