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구적🍋001 – 체계적일수록 느리다

교무부장 서쌤의 일하기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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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모두들 흠모(?)하는 교무부장 서쌤에게 인수인계를 받으며 그의 일하기 원칙을 들어보았습니다. 모두 동의하긴 힘들지만, 제 습관을 돌아보게 됩니다.

1. 퇴근 전 책상을 치운다

공간이 있어야 새로 도착한 새 일을 시작한다. 보통 그대로 두고 어서 퇴근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그냥 도망가는데, 어렸을 때 방 안 치웠다가 박살난 경험을 떠올려보자.

2. 모든 업무를 체계적으로 분류할 필요는 없다

업무가 도착하면 즉시 파일명 고치고, 매뉴얼 만들고, 스마트폰 할일관리 앱에 목록을 만들거나 심지어 시간을 측정하는 사람들과 산업이 있다. 고도의 복잡성을 가진 업무가 아닌데도 정리하고 분류하여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일의 완성에 중요한 것은 작업공간을 가능하면 협소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메일은 받은편지함과 보관함과 휴지통으로 분류. 메신저는 받은 쪽지 목록과 처리해서 지운 휴지통만이 있을 뿐. 책상 위에는 차례로 쌓아올려 순차/역차순으로 처리할 서류 더미와 완료되어 책상을 떠나는 규칙만이 존재한다. 도착한다 – 머무른다 – 내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한다 – 내 시야에서 사라진다.

극단적으로는 긴급하다, 중요하다 정도의 분류도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긴급하고 중요한 것을 태깅하고 표시하는 행위보다 중요한 것은 매일 받은편지함에 머무는 습관이다. 계속하여 열어보고 신경 쓰는 사람은 지금 무엇이 긴급하고 중요한지 안다. 많은 사람들은 중요하다고 표시한 다음에 시작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너무 복잡하고 많은 서류가 밀려올 때는 책상 위에 두 개의 뭉치 구분만을 추가했다. 왼쪽은 긴급하고 중요한 것, 오른쪽은 그 뒤에 해도 되는 것. 시각적으로 보이도록 구분하고 하나씩 치워나간다. 보통은 이 두 가지의 구분도 한 더미로 통합한다.

3. 완료한 것은 사라져야 한다

정보를 모두 보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영화를 시디로 굽고, 드라마의 모든 회차를 수집하지만 다시 보지는 않는다. 이런 태도의 반대 극단을 추구하라. 가령 들어온 일을 가능하면 즉시 처리하면서, 가능하면 그것을 요청한 쪽지나 메일까지를 모두 ‘삭제’한다. 휴지통까지 지우는 편이다. 지옥까지 따라가서 절대 다시는 나에게 그 일이 상기되지 않도록 처리한다. 이것은 두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현재의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점과 두 번째는 일을 처리할 때 엉성하게 처리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모든 참고 파일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지옥까지 따라가 죽이는 것은 단발성 요청에 한한다. 모든 채팅과 대화는 삭제 대상이다. 카톡은 해악이다. 명확하게 지시된 일을 담은 요청 사항 – 일의 수행 – 필요한 것만 보관하거나 완전히 흔적 삭제의 과정만이 있다.

타인의 업무인데 나중에 타인이 그 파일을 나에게 다시 찾으면 어떻게 하나? 첫째, 타인의 업무이므로 타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지 내 책임이 아님. 둘째, 타인과의 업무인데 필요 없을 줄 알고 모두 삭제했으나 내가 그 파일이 어떤 이유로 나중에 필요해졌을 때에는 그 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요청하면 됨. 너무 미안하지 않냐고? 실제로 이런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으며, 파일을 지워서 생기는 집중의 여유가 반대로 다른 사람의 파일을 찾지 못해 생기는 곤란함을 훨씬 상회한다.

아카이브는 집중의 적이다.

4. 매뉴얼보다는 루틴이다

신경쓸 일이 많지만 스마트폰의 알림, 알람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작은 일까지도 모두 스마트폰이 나중에 알려주도록 하는 게 요즘 사람들의 일하기 방식인데, 이런 식으로는 일에 숙련되는 게 더 지연된다.

진짜 몰입하고 숙련되어서 매일 어떤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사람, 가령 비슷한 패턴으로 돌아가는 연중 학사일정 관리를 하는 교무부장이 숙력되면 5월의 어느 날에 “00를 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 안 한 것 같아”라는 쎄~ 함이 느껴진다. 처음 업무를 담당하면 어쩔 수 없지만, 2~3년차의 숙련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무엇이다.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쉬운 매뉴얼, 쉽게 체크박스를 건드려 완료하는 스마트폰의 할일관리 앱은 일의 본질이 아니다. 본말을 전도하지 말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실체를 알아 몰입하여 숙련된 상태, 일의 루틴을 몸으로 느끼는 상태로 먼저 진입하는 게 중요하다.

5. 오류를 피하는 방법

검토하고 최종 결재하는 입장에서, 알고리듬이나 엑셀의 자동수식에 기대어 일하는 사람들을 조심한다. 그들은 한방에 일을 처리하기 좋아하고 몇 가지 조건에서 테스트를 한 뒤에 손쉽게 이것을 일반적으로 적용하려고 한다. 경험상 이런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올리는 문서에 오류가 많았다. 자동화를 도입하는 초기에는 손수 검토하는 게 정말 필수적이다.

데이터를 검토할 때는 한 가지 기준에 대한 판별자가 되어야 한다. “오류가 없는지 본다”와 같이 넓은 범위로 검토 행위를 수행하지 말고, 단계별 검사 목록을 만든다. “‘학원’이라는 문구가 있는가?”, “시험 시간은 출제 계회과 일치하는가?” … 이렇게 귀찮아도 하나의 기준으로 여러 번 보는 치밀함이 사고를 방지한다.

6. 폴더를 사람과 공간으로 지정하기

대개의 사람들은 폴더 구조를 업무의 주제에 따라 분류한다. 그래서 교무부 – 학사일정 – 1학년 일정 등과 같은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복잡한 일을 수행하는 사람일수록 이런 방식을 지양하는 게 좋다. 가령 졸업식이라는 폴더가 있고 그 안에 상장 인쇄, 성적 우수자 산출 데이터, 행사 식순 제작 등등의 작업이 있으며, 이 폴더를 공유하여 함께 보면서 일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런 공유 방식은 특정 파일을 정말로 공동작업하는 경우가 아니면 오히려 집중을 방해한다.

사람으로 구성한 폴더는 교무부 = 부장 + 기획 + 부원1 + 부원2 로 만들고, 부장 아래에 졸업식 성적 사정자료를, 부원1 폴더 안에 행사 식순 제작 관련 파일을 두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 교무실의 물리적 사람과 책상 구조를 반영한다. 따라서 내가 부원1에게 졸업식 행사 식순 인쇄를 부탁할 때 실제 나의 폴더에서도 해당 사람의 폴더에 자료를 넣는다. 그가 완료된 파일을 나에게 참고용으로 주었을 때에도 해당 부원1의 폴더에 넣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식순 인쇄가 실제 내가 집중을 기울여야 할 작업이 아니라, 검토하거나 참고할 수준의 자료이기에 최선을 다해 나(부장)의 폴더 “밖에” 둠으로써 내 폴더 안에는 내가 생산하고 계속 수정해야 하는 주제만이 머물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파일명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나의 업무와 연관된 폴더로 진입해 일하기 때문에 파일명도 기가 막히다. 연습.xlsx세부.hwp 이런 식. 시야가 좁아지니 여러 설명도 필요 없다. 대신 인터벌을 두고, 직접 부원들과 대면으로 어려움을 듣고 소통하고 지원한다. 보통은, 문제가 있을 때 그들이 나를 찾아오며, 나는 그 때 협력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서 “세부”를 다뤄서 끝내는 것이고, 어서 일을 끝내고 이 일을 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할 일이 많다.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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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 지난 주 컴퓨터 자료 정리를 막 끝낸 참인데, 이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 아카이브는 집중의 적이다-라는 말이 와닿네요. 이번에 그동안 모았지만 거의 듣지 않았던 mp3 파일 어떻게 하니, 한참을 고민했거든요. 결론은 퉁- (전체를 한 번에 날림)으로 결정했지만요.

    • 자그니님 오랜 구독자인데, 댓글 받으니 기쁩니다! 저도 저 글을 쓴 이후로 미니멀한 자료 관리가 주는 이익이 생각보다 크다고 여기게 되었어요. 세상에 중요한 자료는 꼭 내가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고, 남에게 중요한 사적인 자료는 남들이 알아서 잘 가지고 있기에, 정말 소중하고 의미있지 않은 것들을 지우거나, 또는 숨기는 스킬이, 중요하지 않은 것을 잘 정리하거나, 검색하는 스킬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느껴요.

  • 서울비님 블로그가 다시 워드프레스로 바뀐것도 이 맥락에서 옵시디언보단 워드프레스가 효율적이라 판단하신 이유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옵시디언 블로그를 처음보고 감탄하여 지향점으로 잡았는데 워드프레스로 바뀌어있어 섭섭하던차 이 게시글을 읽게되어 궁금어린 댓글하나 남기고 갑니다

    • 안녕하세요? 저도 사실 Obsidian Publish 를 오래 유지해보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질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답변드리고 싶네요.

      1. Obsidian 이 워드프레스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지식 저장이 가능함. 그래프뷰의 효용은 생각보다 없었지만 자료간의 연결, 검색, 확장에 있어서 정말 좋은 도구라고 여전히 여깁니다. 특히 텍스트 파일로 관리하는 장점이 매우 큼.
      2. 다만 그렇게 구축한 Vault 전체를 모두 웹에 발행해두어야 할까 의문이 들었음. 제 개인이 생산하고 메모하는 정보의 양과 체계 전체를 공개하기에는 속도나 생산량이 미흡하다는 생각…
      3. 결정적으로 Obsidian Publish는 검색엔진 최적화가 안 되어 있음. 고유 주소를 지정할 수 없어 문서 제목 오타만 수정해도 고유한 접근 주소가 훼손됨. 또한 공들여서 널리 읽히기를 바라면서 공개해도 검색엔진이 잘 긁어가지도 못하고, 맥락도 인지하지 못하는 모양…
      4. 결국 월드와이드웹에서 다른 사람이 읽히기를 바란다면 SNS나 인기 게시판에 직접 링크를 소개해야 하는데 … 그럴 생각과 시간이 없고, 언제나 필요한 사람이 키워드 검색을 통해 내가 작성한 자료와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워드프레스가 훨씬 좋다는 생각
      5. 로컬의 작은 메모들은 여전히 Obsidian과 Workflowy로 작성하고, 서로 연결하면서 작성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보기 좋게 마지막으로 가공하여 공개하는 상점 개념으로, 워드프레스 블로그로 복귀하였습니다.
      6. 앞으로 Obsidian Publish가 더 커져서 웹에서 이런 마크다운 형식의 직접 배포, 검색, 색인 생성이 훨씬 중요하게 생각되는 흐름이 있으면 좋겠네요.
      • 안녕하세요. 저도 Obsidian Publish 를 블로그로 사용하는 것은 비슷한 이유로 부적절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서울비님으로 부터 Obisidian 을 접해서 지금은 PKM (Personal Knowledge Management) Workflow 구축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비님은 현재 Obsidian 과 Workflowy 를 혼용해서 사용하신다고 하셨는데 obsidian 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obsidian 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workflowy 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안녕하세요!

        현재 저는
        – Obsidian을 주 메모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거의 포기한 상태입니다. 기능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워크플로위의 속도가 나오지 않네요. 그리고 노드 방식으로 메모를 작성하고, 노드끼리 가볍게 연결하고 탐색하는 습관 때문에 … 이런 한바닥 문서 기반 툴에 제가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엄연히 Workflowy, Dynalist 같은 툴이 Obsidian과 다른 포지션에 있어서 뭐가 좋다고는 못하겠어요.
        위키피디아처럼 표제어를 제목으로 두고 하위 지식을 축적한 페이지를 완성해가면서 해당 페이지 사이의 연결을 추구하시면 Notion, Obsidian이 좋겠지만, …. 저처럼 정신없이 산발적으로 기록하면서 아래로부터 체계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걸 원하는 사람에게는 Workflowy 같은 아웃라이너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웹에 기반한 도구가 보안이나 속도에서 불리한 점이 있지만, 즉시 공유-협업하기 편리해서 이 장점을 포기하기 어렵더라고요.

      • 그렇군요. 저도 Obsidian 과 Johnny Decimal 이나 PARA 기법 등을 활용해보면서 PKM 구축 실험을 해보고 있지만 폴더 구조나 tag, link, 노트의 생명주기 등에 대한 원칙을 세우는데 어려움이 있네요. 어찌 됐든 서울비님처럼 자신에게 맞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좋은 의견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By seoul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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