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트 강의를 마치며

‘사진찍자’고 제목 붙여 ‘사진노트’ 말머리로 슬로우뉴스에 연재해온 이 글뭉치는 사실 2011년 말부터 써두었던 쪽글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은평구에서 장애아동들과 토요일마다 놀아주는 ‘토마토학교’에서 애들 사진을 많이 찍어주었어요. 하루 다녀오면 낮에 찍은 사진이 1,000여 장에 달했는데 저녁에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 리뷰할 때 어찌나 행복하던지 그 후 몇 시즌을 더 같은 아이들과 함께했습니다. 사진이 예뻐서 숨 막히는 기분을 느껴보신 적이 있나요? 빛을 2차 평면에 담는 이 매체와 기계의 매력은 과연 땀나는 하루와 사연이 더해질 때 비로소 아름다워진다는 걸 느꼈던 시간이었습니다. 카메라와 사진에 대한 내 나름의 공부 노트를 써두자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정말 제게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가끔 제게 질문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생로병사 다큐멘터리 보며 이면지에 받아적은 점방 주인에게 병을 치료해달라 부탁하는 격이라고 할까요? 훌륭한 강좌와 책과 사진 찍는 모범이, 무엇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피사체들이!! 저어기 밖에 널려 있으니 찌라시로 훑어적은 이런 말 놀음은 가벼이 읽어주셨으면, 그래서 괜히 제가 쓴 무슨 말 때문에 "내가 인터넷에 보니까 사진이 이런 거라던데?" 따위의 생각일랑 절대 품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서울 은평구, 2011년.

남아 있는 걱정

뭐든 막상 말로 정리하려고 하면 쉽지 않잖아요? 슬로우뉴스에서는 사진노트를 순서대로 번호 매겨서 게재했지만, 원래 저는 사진의 시선과 방향, 렌즈의 초점거리와 화각, 사진의 노출, 사진의 표현과 사진가의 의도, 사진파일의 관리와 보관, 라이트룸 다루기, 포토샵, 사진가에게 유용한 기타 프로그램, 스피드라이트와 사진 조명, 사진의 역사와 사진가들, 현대사진 이야기 등으로 주제를 나누어 1-1, 1-2와 같이 소주제로 분절하여 ‘사진’에 대하여 공부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라이트룸이나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 매뉴얼 강좌는 굳이 제가 계속해서 작성해야 할 필요를 못 느꼈고 또한 저 스스로 사진파일을 이제 아이폰과 맥북에서 거의 보정/백업하고 있어서 집필을 포기했어요. 사진 조명은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어서 겉핥기도 불가능하더군요. 사진의 역사와 사진가들은 아직도 구경 다니고, 읽을 게 너무 많아서 제 관점을 담아 글을 써낼 깜냥이 되지 못하네요.

게다가 이렇게 시리즈로 엮어 공개해버리니까 체계적이고 사전식 정보를 게재하는 일이 ‘사진을 찍는다’는 행동에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게 아닐까 의심합니다. 마치 좋은 사진이란 것이 어딘가에 있는데 준비를 잘한 사람은 카메라에 그것을 건져낼 것이고, 정보지식이나 수양이 부족한 사람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인상을 주지요. 대어를 낚을 꿈을 꾸는 어부의 유비인데, 그것은 스포츠나 찰나의 순간을 건져 대회에서 입상하기 위해 장소와 시점과 찬스를 물색하는 사진가들에게는 적합할지 몰라도 전 그런 유비가 해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들이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와 같이 제목을 달아 책을 찍어내듯 공포를 마케팅하는 보험회사와 다를 바 없는 접근이라 생각하지요.

좋은 사진보다 중요한 건 좋은 기억

좋은 사진은 아직 낚지 못했으나 미미한 확률로 남아 있는 어떤 ‘인상’이 아니라 정신없는 하루 뒤에 별안간 찾아오는 한숨이나 탄식 같은, 좀 더 생리적인 경험입니다. 그것은 100% 우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기획할 수도 없어요. 어떤 사진은 수년을 돌아 다시 나타나 갑자기 다시 말을 건네기도 하고, 어제 강렬했던 젊은 날의 이미지가 오늘 아침에는 늙은 주름처럼 푸석한 사진 한 장이 됩니다.

따라서 경험을 사진으로 무언가 남긴다는 과업에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딸아이의 노래 부르는 장면을 물고기처럼 낚으려고 객석의 모든 엄마가 딸의 눈을 마주하는 대신 캠코더나 카메라의 LCD만 보고 있습니다. 집에 와서 딸아이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걸 모니터로 확인하면서, 엄마가 말합니다. "얘가 왜 웃질 않지?" 그 표정이 그 표정을 담고 있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미치지 못하지요. 엄마는 무엇을 찍었습니까? 그날 찍은 것은 딸 아이의 현장이 아닙니다. 딸 아이의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캠코더만 보고 있는 모습을 딸 아이에게 경험하도록 하는 어머니의 무심함 자체였던 거죠. 그것은 건져 올린 커다란 죽은 물고기와 같습니다.

이토록 이야기 안으로 깊숙이 삽입되는 사진 찍는 일과 사진가의 경험이란, 사진을 찍을 게 아니라 사진을 찍는 것을 사진이라 부르라고 말합니다. "괜찮아, 아빠가 다 눈으로 담았어."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기엔 말도 못하게 아름다워서 안 찍기로 했어." 이미징 도구가 과잉인 시대에 오히려 희소하고, 유일하면서, 가장 개성 있게 사진 찍는 방법이 아닐까요? 사실 근사한 이미지와 왠지 너무나 매끄러운 감동휴먼스토리는 매일 네이버 뉴스에 올라오는데 어차피 내가 찍는 사진으로는 ‘충격’, ‘뒷태’, ‘경악’ 키워드 실시간 검색 리스트에 명함도 못 내밀지 싶어요.

그렇다고 사진기를 두고 다니거나, 카메라 앱을 뒤로 밀어두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꾸 어디서 본 사진들과 겨루지 마세요. 단지 우리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이미 좋은 ‘빛’이 아니던가요. 고맙습니다. 저는 이제 사진 찍으러 나갈게요.

(2015년 1월)

사진 노트 4-1. 사진의 심도와 흔들림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사진의 표현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게 되는 심도와 흔들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피사계 심도의 이해

△ 조리개를 조일수록 피사계 심도는 깊어진다. (출처: 바바라 런던, “사진학 개론”)

지난 시간에도 배웠지만, 조리개를 조여서 더 작은 구멍으로 세상을 보면 가까이에서 멀리까지 초점이 맞게 되지요. 반대로 조리개를 열면 카메라 렌즈로 초점을 맞추려고 시도한 지점을 중심으로 더 좁은 부위에 초점이 맞게 됩니다.

이렇게 조리개를 조일수록 초점을 맞춘 거리에서 시작해서 앞뒤로 더 넓은 영역에 초점이 모두 맞게 됩니다. 이것을 피사계 심도가 깊어진다고 말합니다.

브라이언 피터슨의 이야기를 했었죠? 조리개를 여는 건 페인트통의 뚜껑이 큰 것과 같아서 페인트가 한꺼번에 쏟아져서 사방으로 튑니다. 그래서 초점을 맞춘 부분만 초점이 맞습니다. 조리개를 조이는 건 페인트통의 뚜껑이 작은 것과 같아서 페인트를 천천히 가늘게 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전체 면에 골고루 고르게 페인트를 물들일 수 있죠. 조리개를 조이면 초점을 맞춘 부분을 중심으로 앞뒤로 더 넓은 영역에 초점이 맞습니다.

심도가 주는 효과

특정한 부분을 주제로 부각

안경점에서 시력측정할 때 자동으로 측정해주는 기계 있죠?

우리 눈은 기계에서 풍선이 흐려지면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눈은 사진에서 초점이 맞는 영역에 더 집중하죠.

따라서 배경과 분리하여 어떤 영역만이 사진에 필요할 때 심도를 낮춤으로써 간단하게 사진에서 특정한 부분을 주제로 부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모든 배경을 알아볼 수 없도록 날리는 것이 좋은 건 아니에요. 집중을 요구하는 정도에 따라 적절한 심도가 있습니다.

△ Burt Glinn 작. / USA. 1954. Bas­sett Hound class.

멍멍이 공부하는 시간. 사진가는 얕은 심도로 아이의 표정에 초점을 맞추고 개는 적절하게 초점에서 벗어나게 두었습니다. 멍멍이는 대충 흐려져도 멍멍이라고 알아보는 데 무리가 없고, 중요한 건 아주 뚫어져라 오늘의 관찰대상을 쳐다보는 소년의 표정이죠. 소년의 표정이 이 사진의 관심사입니다.

△ Alessan­dra San­guinetti 작. USA. Rochester, New York. 2012.

도시의 풍경을 담은 연작 중 하나. 아까 멍멍이 사진보다 더 얕은 심도로 촬영되었습니다. 왜? 저 뒤에 있는 사람은 없어도 이 사진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별 영향이 없으니까요. 오직 음료수 빨고 있는 저 아이의 묘한 눈빛이 이 사진에서 주제입니다.

△ 이사도라 코소프스키(Isadora Kosof­sky)의 2012년 사진. 그녀의 프로젝트 중.

코소프스키(Kosof­sky)라는 18세 소녀가 매그넘 사진가들에 의해 선정되어 5,000달러 상금을 받은 사진입니다. 그녀는 LA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의 일상을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죠. 이 로맨틱한 키스의 배경은 저 위에 소개한 사진들보다는 그 심도가 그다지 얕지는 않아요. 덕분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대담하게 진하게 키스 나누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상황이 잘 전달되고 있네요. 심도를 너무 얕게 촬영하면 배경 정보가 모두 날아가버린다는 점은 늘 유의해야 합니다.

초점이 나가는 것을 방지

두 번째로 심도를 어느 정도로 깊게 유지하면 움직이는 피사체의 초점이 나가는 걸 방지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조리개 f/1.4 는 가까이에서 찍으면 눈과 코의 초점도 달라질 정도로 심도가 얕은데, 이 녀석이 건들건들 자꾸 움직이면 찍을 때 곤란하지요. 이럴 때 조리개를 조이면 약간씩 앞뒤로 움직여도 초점범위 안에 들어오게 만들 수 있지요.

단, 조리개를 조이면 셔터스피드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늘 염두하세요.

일반적으로 사진가들은 f/5.6-8 의 조리개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것은 우리 눈의 일반적인 초점범위와 닮았으면서 함부로 배경초점을 지나치게 날리지 않게 되어, 사진의 맥락과 배경을 사진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거리계에 대한 감도 익혀두면 좋습니다. 광각 + 깊은 심도라면 뷰파인더를 보지 않고 대강의 초점거리를 생각하며 셔터를 눌러도 초점이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카메라의 렌즈에는 거리계가 표시되어 있는 것들이 있는데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카메라의 센서 위치에서 초점을 잡을 수 있는 최소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육감으로 알 수 있도록 대충 조사해보세요.

△ 렌즈의 거리계

내 카메라와 내 렌즈로 가장 들이댈 수 있는 게 대충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있는가? 내 카메라에서 3미터 떨어진 게 우리집 거실 벽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지점인가? 이런 거리에 대한 감각이 생기면 조리개를 조이고 렌즈의 거리계를 보며 대강 셔터를 날릴 수 있고, 의외의 시선으로 의외의 장면을 잡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재밌습니다. 해보세요. ^^

선명한 풍경 사진 만들기

풍경사진에서 F11 이상 조리개를 깊게 조이면 근경부터 원경까지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풍경사진에서는 조리개를 조입니다. 사실 f/11 이상을 조여서 표현하는 심도는 우리 눈으로 사실 불가능한 초점범위입니다. 우리 눈은 아주 가까이에서 멀리까지 초점을 동시에 맞출 수 없어요. 눈 앞에 손가락을 놓고 초점을 맞춰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진은 가능하죠. 사진이 선사하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조리개를 조이면 초점은 더욱 멀리까지 선명해질 수 있어도 화질에서 손해를 보게 될 수 있다는 점도 주의해야 합니다. 셔터를 일부러 느리게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렌즈의 극한까지 조리개를 조이는 것이 쨍한 사진이 나온다며 습관처럼 조리개를 지나치게 조이는 습관은 버리는 게 좋다.

대개의 사진가는 f/11 내외에서 풍경촬영을 많이 하고, 대부분의 렌즈가 이 조리개를 지원합니다

△ 앤셀 애덤스, 산과 농장 농부Farm work­ers and Mt. Williamson. (년대 미상)

풍경 사진 하면 역시 앤셀 애덤스가 가장 많이 소개되는 작가라고 하겠습니다. 그는 대형필름으로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요, 특성상 조리개를 무지막지하게 f/32 까지 조이고… 막 그런 게 가능해지지요. 덕분에 바로 앞에서부터 아주 멀리 있는 산까지 기막히게 선명한 풍경사진이 가능해집니다.

△ 네바다 산맥의 윌리암슨 산 Mount Williamson – the Sierra Nevada,from Man­za­nar, California (1945)

그리고 풍경사진을 찍을 때 조리개를 무조건 조이지만 말고 초점을 가운데보다는 초점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가급적 앞에 초점을 맞춥니다. 보통 소형 카메라에서는 아래에서 1/3 지점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사람과 동물은 눈에 초점을

사람이나 동물의 경우 눈이 초점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게 조심하세요.

△ Burt Glinn. USA. 1951. Slow loris.

귀엽네요.

△ Natalka Lind­strom, Horse’s Eye.

내셔널 지오그래픽 오늘의 사진 시리즈에서. 얕은 심도에서 말의 눈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움직이는 사물 찍기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사물의 경우 초점을 미리 맞춰두고 심도 안에 들어왔을 때 셔터를 누르는 것도 요령입니다.

△ Jared Skye가 찍은 뱀 사진. Cot­ton­mouth, North Carolina.

역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실린 아마추어 사진.

우연히 이 사진을 찍을 수도 있지만, 또 한 가지 방법은 뱀의 진행 경로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원하는 위치에 왔을 때 셔터를 누르는 겁니다. 그렇게 찍으면 좀 더 얕은 심도로 촬영이 가능해지지요.

셔터 스피드와 사진의 흔들림

사실 셔터스피드는 대상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찍은 사진을 보는 입장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1/100초나, 1/1000초나 그리 달라질 건 없어요. 찍히는 걔가 가만히만 있으면.

하지만, 먼저 렌즈의 초점거리가 길수록 사진이 흔들릴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사실에 주의하세요.

젓가락이 짧으면 물건 집을 때 힘들어요. 하지만 길수록 내가 손을 아주 조금만 까딱해도 작은 콩도 집을 수 있게 되지요. 이렇게 막대기가 길어지면 움직이는 쪽에서 살짝만 휘둘러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막대기가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부채꼴 모양을 생각해보세요. 부채가 클수록 똑같이 흔들어도 바람이 커집니다.

렌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멀리 있는 것을 담을수록, 사진찍는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내가 찍는 대상은 더 많이 움직이게 됩니다. 광각일수록 내 움직임에 덜 민감하고, 망원일수록 내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해 흔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셔터스피드를 안 그래도 확보하기 힘든 상황인데 대상을 좀 더 크게 담고 싶다면, 최대 화질로 찍어서 나중에 컴퓨터에서 자르거나, 직접 발로 다가가는 게 유리합니다. 함부로 줌렌즈로 당겨서 초점거리를 늘리면 더 잘 흔들리지요.

보통 사진 교본에서는 손에 들고 흔들어서 사진을 망치지 않도록 사용하는 ‘렌즈의 1/초점거리’ 보다 느린 속도로 촬영하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50mm 렌즈는 1/50초보다 느린 속도에서 촬영하지 않도록, 200mm 렌즈는 망원이니까 1/200 초 정도는 확보하도록 가능하면 노력하세요. 이보다 느린 셔터가 필요한 경우에는 특히 주의해서 촬영하거나, 삼각대를 사용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는 사진을 찍는 비결입니다.

호흡을 멈추고 찍거나, 얼굴을 카메라에 밀착시킨다거나, 팔꿈치를 몸에 붙인다거나, 다리를 어깨넓이만큼 벌리고 안정된 자세를 취하는 것, 어딘가에 카메라를 올려놓거나, 상체를 벽에 기대고 찍는 방법 등 흔들림을 방지하는 여러가지 테크닉도 도움이 됩니다.

셔터스피드의 활용

사진에 따라 셔터스피드가 사진에 주는 효과를 잘 이용하면 오히려 인상적인 사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셔터스피드를 빠르게 하여 순간을 잡는다

셔터가 빠를수록 짧은 순간의 장면이 카메라에 잡힙니다. 사진은 더 드라마틱해집니다. 스포츠 사진처럼 순간적인 장면을 잡아야 한다면, ISO를 높혀서 노이즈가 생기더라도 과감하게 셔터 속도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좋습니다. 또는 보조조명을 마련해야겠죠.

보조조명이 여의치 않다면 같은 공간에서도 밝을수록 셔터스피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굳이 악조건을 극복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방에 추가로 실내 조명이 있는데 전기 아낀다고 꺼둔 상태에서 사진을 찍는다거나, 빛이 은근히 들어오는 좋은 방이 있는데도 커튼 친 안방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이지요. 빛을 찾을수록 셔터를 빠르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 딸 아이와 친구의 물놀이 장면을 빠른 셔터스피드로 순간포착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 Chris­tine Guin­ness. Pat­ten Pond, Maine.

아참, 형광등의 경우 1초에 120번 깜박입니다. 사람 눈으로는 잘 안 보이죠. 그래서 그보다 빨리 찍으면 사진에 줄이 생기지요. 추가 조명 없이 아파트에서 형광등 아래에서 촬영할 때에는 조리개를 변경하면서 셔터도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셔터가 1/125초보다 빨라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흔들려야 움직이고, 흔들려야 불안해 보인다

사진 역사 초기에는 워낙 정적인 초상사진이 인기여서, 사람들은 그림처럼 안 흔들리게 사진을 찍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 머이브리지, 말의 질주, 1878년.

특히 연속되는 사람이나 동물의 동작을 옛날에 그림 그릴 때는 자세히 볼 수 없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빠른 셔터로 자세하게 동작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분석해보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수정을 해서라도 디테일을 확보하려고, 안 흔들린 말의 순간 동작을 찍어내려고 머이브리지는 대단한 노력을 기울였죠.

하지만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순간의 모습은 ‘진실이 아니다’라며 그의 노력을 폄훼했죠. 1891년 미국의 판화가였던 조셉 펜넬은 모션에 대해 이렇게 비판합니다.

“만약 운동하고 있는 물체를 사진으로 찍으면 운동의 느낌은 모두 상실된다” (조센 펜넬, 1891)

사진 과학자 애브니는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많은 화가들이 사용하는 기법처럼 “바퀴의 중심으로부터 팔방으로 펼쳐진 양털 같은 것이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덩어리인 쪽이 더 그럴듯하다”고 비판하죠.

이처럼 회화처럼 우리가 보는 진실을 표현하지 못하고 야릇한 순간포착만을 즐기는 사진은 예술이 아니라고 매도하는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사진은, 오늘날 오히려 셔터를 조정하여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진실을 포착하고 보여주는 예술로 당당히 서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셔터를 늦춰서 일부러 흔들리게 하면 피사체는 운동하고, 움직여야 불안해 보인다는 점을 사진가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의도적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 Moi­ses Saman, 터키, 2012년.

터키에서 몰래 시리아로 건너가는 밀매업자입니다. 어두운 밤이어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불안한 상황에 잘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 Paul Fusco. USA. 1968. San Francisco.

매그넘 사진가 폴 푸스코(Paul Fus­co)가 찍은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의 공연입니다. 흔들린 그녀의 얼굴이 공연의 분위기를 잘 전달합니다.

서로 다른 속도 사이의 균형 맞추기

세 번째로 화면 안에서 속도가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은 빠르게, 어떤 것은 느리게 움직이지요. 이 때 셔터스피드가 너무 빠르면 움직임이 없어지고, 조금 빠르면 속도가 다른 둘 중에 하나의 속도는 따라잡지만, 하나는 흔들리게 됩니다. 아주 느리면 둘 다 흔들리게 되죠.

이렇게 빨리 움직이는 것의 속도와 느리게 움직이는 속도 사이의 균형에서 적절한 셔터스피드를 찾는 건 사진을 표현하는 데 관건이 됩니다.

우선 배경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주제만 움직이는 경우가 있죠. 폭포 사진이 특히 그렇습니다.

△ Svar­ti­foss, Ice­land. 내셔널 지오그래피.

여행 사진 부문 콘테스트에 제출된 이 사진에서 배경은 정지해있고 폭포는 움직입니다. 셔터를 늦추게 되면 폭포가 우유빛으로 찍히게 되죠.

그리고 배경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주제가 특히 더 많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겠고.. 반대로 배경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주제는 움직이지 않는 경우도 있겠죠. 특히 후자의 경우,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서 일부러 셔터를 느리게 하면 독특한 느낌을 줍니다.

△ Nenad Saljic, Mat­ter­horn at Night. 2012년.

이 사진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산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구름은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고, 별도 움직입니다. 셔터를 너무 느리게 하면 별이 이동하면서 점이 아니라 선으로 표현되어 사진을 망칩니다. 너무 셔터를 빨리해서 찍으면 구름이 부드러운 실크처럼 안 보일 거예요. 사진가는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셔터를 선택해서 이 사진을 완성했을 겁니다.

△ Travis Teo. 도쿄의 택시.

역시 내셔널지오그래픽 오늘의 사진에 소개되었던 사진입니다. 정지해 있는 택시 주위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느린 셔터로 잘 잡아냈습니다. 지나치게 셔터를 늦추면 사람의 형체마저 없어져서 내용 전달에 실패하게 됩니다.

△ Hisao Mogi. 떨어지는 꽃잎들. 일본.

사슴은 가만히 있죠. 셔터가 너무 빠르면 꽃잎이 날리는 느낌이 들지 않고, 너무 느리면 너무 지져분해지거나 사슴이 움직일 겁니다.

△ Ken­neth Gar­rett. King Tut Mask on Dis­play, Cairo Museum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전시된 투탕카멘 마스크입니다. 위에 소개되었던 택시 사진과는 다르게 셔터를 더욱 느리게 설정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물결을 추상화했습니다. 사람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오히려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오늘날의 박물관에 전시된 유적의 세월을 느끼게 하네요.

참고로 대낮에도 셔터를 더 이상 느리게 할 수 없을 때 ND필터를 사용하면 셔터를 더 늦출 수 있게 됩니다. ND필터는 썬글라스처럼 들어오는 빛의 양 자체를 줄여주기 때문에 더 느린 셔터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어요.

셔터속도를 고려할 때, 움직이는 대상의 방향에 주의

똑같은 속도로 움직여도 사진에서 움직이는 거리가 다릅니다. 즉, 똑같은 속도로 달리는 열차도 옆에서 보면 획~하고 지나가지만, 앞 방향에서 보면 더 느리게 커지지요. 텔레비전에서 보면 야구장 투수의 공이 그리 빠른 것 같지 않은데, 야구장 가서 옆에서 보면 공이 엄청 빠른 걸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걸 강조하려면 옆에서 보는 게 좋고, 덜 흔들리게 하고 싶으면 앞이나 뒤에서 찍는 게 좋겠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점프하는 점프샷은 아래에서 위로 찍어야 사진에서 이동거리가 늘어납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사물은 옆에서 지켜보는 방향이 떨어지는 속도가 느껴지고, 그 사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떨어지는 느낌은 떨어지지만 덜 흔들리게 찍을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철도사진 전문가 나카이 세이야의 사진을 소개해드릴게요. 2012년 10월에 공원에서 찍은 사진이라는데요. D5100의 내장 플래시를 손가락으로 절반 가리고, 나무의 윗부분만 인상적으로 빛이 닿도록 한 뒤에, 저속 셔터로 찍어서 열차는 일부러 흔들리도록 촬영했다지요. 이 사진 찍으려고 1시간 동안 여러 장 실패를 거듭했다고 하네요. 가로방향으로 달리는 열차가 적절히 흔들리면서, 그보다 덜 흔들려 보이도록 전면에 있는 나무에는 플래시를 이용한 기막힌 연출입니다.

사진기를 움직이며 촬영하는 패닛샷

움직이는 사물을 따라가면 상대적인 속도가 느려집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같이 따라 달리는 옆 차선의 차를 보면 그렇게 빨라 보이지 않지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맞은 편에서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를 보면 엄청 빨라 보이죠.

그래서 사진기를 움직이는 물체를 따라 움직이며 촬영하게 되면 정지되어 있는 배경이 오히려 흔들리고, 움직이는 사물이 정지된 것처럼 찍히게 되죠. 이것은 움직이는 사물 자체의 시각과 가깝습니다. 즉, 달리는 입장에서 나 자신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배경이 움직이면서 내가 운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사진을 보면 우리는 움직이는 대상의 입장이 되어서 함께 달리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이런 촬영을 패닝샷이라고 합니다.

△ Feb. 2008 @Madrid, Spain

제가 마드리드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말이 달리는 기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 나카이 세이야 / 오사카 역. 2012년

역시 나카이 아저씨의 사진.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찍은 패닝샷입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사진일 거예요.

△ Maruf Hos­sain. 그네 타는 소녀. 2011년.

하지만 역시, 패닝샷이라는 게 요령이 필요하고 연습도 필요하고 운도 필요한 사진이 되겠습니다. 아주 여러번 촬영해야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어요.

움직임을 예상하라, 마치 예언가처럼

좋은 사진가들은 대상의 특성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상이 언제 잘 웃는지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어떻게 움직일지도 미리 예상하는 사진가들이 있습니다. 잠깐 지나가는 순간을 보고 나서 셔터를 누르는 것은 어렵습니다. 물론 행운이 오기도 하지만.

△ 나카이 세이야. 2012년.

지나가는 걸 보고 찍은 게 아니라, 꽃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겁니다.

저 사람은 아마도 3초 후에 이쯤에 쿵 하고 넘어지지 않을까?

△ Subhrjit Basu. 인도의 레슬링 경기. 2009년.

어쩌다가 찍을 수도 있겠지만, 멍 때리고 있다가 뭔가 넘어가기 직전에 분위기 파악을 잘 못하면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순간을 담기 위해서는 가까운 미래를 이해하고, 기다리고, 찍고자 하는 대상의 마음과 의도를 가늠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마법사의 능력이라고 해야 하나요. 좋은 사진가들은 이런 순간을 놓치지 않으며, 이런 순간이 또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말하며 인내할 줄 알지요. 사진이 늘지 않는 사람들은 남이 찍은 순간의 장면을 보고 운이 좋았다고 손가락질 하고, 바보처럼 오래 기다리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합니다.

△ (사진가 이름 까먹음 ㅠㅠ 책에서 봤었는데..). 다이애나 장례식. 1997년.

마치 영혼의 행진처럼 그림자로 구성된 이미지가 이 날의 슬픔을 상징하는 것 같죠. 이 사진을 찍은 사진가는 우연히 이 장면을 포착했다고 했지만, 이 사진을 소개한 책에서는 말했었죠.

“그 우연조차 아무에게나 오는 건 아니다.”

사진의 표현기법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다루고 나중에 또 생각나면 사진을 모아서 함께 구경했으면 좋겠습니다.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6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사진 노트 3-5. 조리개-셔터-감도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오늘은 카메라에서 사진의 밝기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요소인 조리개, 셔터, 감도의 의미와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이미 카메라 노출을 조정하는 방식에 대한 안내는 인터넷에 자료가 많거든요.

만약 잘 이해가 안 가시면 [사진학 강의] 같은 책을 천천히 한 번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림도 자세하고 말이지요.

최대한 쉽게 한 번 가보겠습니다.

카메라가 빛의 양을 조절하는 방법

카메라로 들어오는 빛을 물이라고 생각해봅시다. 카메라는 이 빛을 어떻게 어떻게 조절할까요?

△ 소니 NEX-5 단면도

먼저 렌즈에 보면 조리개(Aperture)라는 게 있습니다.

△ 조리개 장치 (출처 미상)

원래 작은 구멍이란 뜻인데요. 렌즈에 달린 이 장치는 구멍을 작게도 크게도 만들어주는 장치입니다. 구멍이 크면? 빛이 많이 쏟아져 들어오겠지요. 구멍이 작으면? 빛이 조금씩 들어옵니다.

△ 조리개 변화 모습 (출처 미상)

두 번째로 빛의 양을 조절하는 요소는 셔터스피드입니다. 수도꼭지를 완전히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가, 닫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셔터스피드가 느리면 ‘차~~아~~알~~칵’ 하면서 빛이 많이 들어오고요, 셔터스피드가 빠르면 ‘찰칵!’ 하면서 빛이 조금밖에 들어오지 못하지요. 카메라는 셔터 속도를 조절해서 빛의 양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센서의 감도입니다. 필름카메라로 치면 필름의 감도가 되겠습니다. 필름에는 종류가 있습니다. 필름의 겉에 보면 100, 200, 400 등의 숫자가 있습니다.

△ 다양한 감도의 필름들

이것은 쉽게 말해 필름이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즉, 민감한 필름일수록 적은 양의 빛으로도 밝은 사진을 얻지요. 피부가 민감하면 살짝 꼬집어도 아프죠. 빛이 부족할 때, 필름을 100 에서 200 감도로 변경하면 적은 빛으로도 적정 노출의 사진을 쉽게 얻을 수 있답니다.

디지털 카메라에서는 필름 대신 센서의 감도를 카메라 메뉴에서 바꿀 수 있어요. 필름을 교체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 감도를 ISO라고 합니다. 원래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랐는데, 통일해서 ISO라고 부르기로 했답니다.

자 이제 정리가 되었습니다. 조리개, 셔터 속도, 센서의 감도. 이렇게 세 개를 만져서 사진의 밝기를 결정하는 겁니다.

조리개 수치의 이해

먼저 조리개는 f 값으로 표시합니다. 이 f 값은 숫자가 클수록 구멍이 작아집니다. 처음 카메라 잡으시는 분들은 자꾸 반대로 생각하는데, 까먹지 마세요. 숫자가 클수록 구멍은 작아지고, 빛은 더 적게 들어옵니다. 잊지 마세요.

△ 조리개의 값 변화에 따른 밝기 변화 (출처: E-PORTFOLIO VISUAL TECHNOLOGY PRODUCTION-MPT 1483 – WEEK 2 – APERTURE)

왜 이렇게 헷갈리게 만들어 놓은 걸까요? 그래도 일단 외우세요.

숫자가 커질수록 구멍을 더 작게 조인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구멍을 꽉 조이려면 힘을 줘야 하지요? 힘을 세게 줄수록 파워업! 숫자가 올라가고, 조리개 구멍을 꽉 움켜쥐게 되고 구멍이 작아집니다. 힘을 풀면 구멍이 다시 커집니다. 파워가 다운~ 다운~. 빛이 더 많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위의 그림에서 숫자 간격을 보면 왜 복잡하게 갑자기 소수점이 툭툭 튀어나오고 그럴까요? 사실 이 간격은 정확히 빛의 양이 두 배씩 줄어드는 단계입니다.

**f/1.4 – f/2 – f/2.8 – f/4 – f/5.6 – f/8 – f/11 – f/16
**

즉, 조리개를 1.4 에서 2로 조이면, 구멍이 얼마나 작아지느냐면 f/1.4보다 빛이 딱 절반만큼 들어오도록 작아집니다. 이 간격을 스톱(stop)이라고 하죠. 한 스톱씩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하면 빛의 양은 이전 단계보다 두 배씩 늘어나거나 절반으로 줄어들거나 합니다.

그럼 조리개를 2에서 2.8로 조이면? 구멍이 더 작아지겠죠? 얼마나 작아지느냐고요? 빛이 f/2보다 절반만 들어오도록 작아집니다.

조리개를 2로 찍은 사진과 조리개를 2.8로 놓고 찍은 사진의 밝기 차이는 어떻게 될까요? 조리개를 2로 찍은 사진이 조리개를 4로 찍은 사진보다 4배 밝습니다. 2랑 4는 두 배 차이인데, 왜 빛의 양은 4배 차이가 날까요? 왜 자꾸 헷갈리게 누가 숫자를 이따위로 해놓은 겁니까?! 저 같으면 1 – 2 – 4 – 8 이렇게 해놓고 빛이 두 배씩 달라진다고 했을 텐데 말이죠. 좀 쉽게 가면 좋잖아요!

참고로 조리개의 값 숫자가 이렇게 어렵게 매겨진 건 아래의 수식 때문입니다.

f 수식

우리는 렌즈의 초점거리가 길수록 멀리 있는 걸 당겨서 볼 수 있다고 배웠지요. (참고 링크: 사진 노트 2-2. 렌즈의 초점거리)

그렇다면 초점거리가 길기만 하면 무한정 멀리 있는 걸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초점거리가 늘어날수록 센서에 맺힌 이미지가 어두워지므로 렌즈를 엄청나게 큰 걸 써줘야 볼만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지요.

△ 거대 천체망원경 (출처: Cosmos Magazine)

멀리 있는 우주를 잘 보려면 센서도 중요하지만, 망원경 지름도 중요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건 지름이 10m에 이르고, 지름 25m 망원경도 개발 중이라지요.

그렇다면 렌즈의 지름이 2배, 4배로 늘어나면 f 값은 어떻게 될까요? f 값은 지름에 반비례하니까, 각각 1/2배, 1/4배로 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빛이 들어오는 양은 원의 지름이 아니라 구멍의 면적에 따라 다른 거잖아요? 간단한 수학 이야기를 해보죠.

f 값과 빛의 관계

  1. 원의 면적 = π(파이) x 반지름 x 반지름
  2. 원의 둘레 = π(파이) x 지름 = π(파이) x 반지름 x 2

f 값은 원의 둘레와 관계가 있습니다. 둘레는 면적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1.의 수식을 살펴보죠. 1.의 수식을 변형해보면 다음처럼 되겠죠?

반지름의 제곱 = 원의 면적 / π(파이)

즉, 반지름이 2배 증가하면 원의 면적은 4배 증가한다는 거죠. 반지름이 루트 2만큼 증가하면, 원의 면적은 2배 증가합니다.

2.의 수식을 살펴보겠습니다. 2.의 수식에서 원의 둘레는 반지름에 비례하지요. 즉, 반지름이 2배 증가하면 그대로 원의 둘레는 2배 증가합니다. 따라서,

  • 원의 둘레가 2배 증가했다
  • = 원의 지름이 두 배 커졌다
  • = 반지름이 각각 2배 커졌다
  • = 이렇게 반지름이 2배 또는 지름이 두 배 커지면 면적은 4배 늘어났다는 뜻이고,
  • = 면적이 4배 늘어나면 빛이 4배 더 많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f 값은 반지름에 반비례하니까, 결국 f 값이 2배 커지면 빛은 1/4로 작아지는 겁니다.

수학적으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원하시는 분들은 한강좋아™ 님의 강좌를 참고하세요.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관계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관계는 예전부터 많은 교재와 사진가들이 즐겨 쓰는 비유를 통해 이해하면 쉽습니다. 이미 강좌가 많이 있지만, 저도 간단하게 다시 해보겠습니다.

야구장에 가면 호스를 이용해 맥주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 야구장에서 맥주 파는 사람 (출처: enif’s life log : Season 3)

이제부터 사진기로 들어오는 빛을 술이라고 생각하고, 호스의 구경을 렌즈의 구경이라고 생각하고, 호스 밸브를 여는 시간을 셔터 속도라고 생각해봅시다.

그럼 맥주잔에 호스로 술을 채우겠습니다.

△ 조리개는 호스의 굵기, 술이 나오는 기둥의 굵기와 같습니다. (출처: Canon PowerShot Compact Camera)

여기서 문제!

  • Q1) 똑같은 컵에 맥주를 따르는데, 호스가 두 배로 커지면 어떻게 될까요?
  • A1) 컵을 채우는 데 시간이 반으로 줄어듭니다.

카메라에서도 조리개를 1스탑 열어서 빛을 두 배 많이 들어오게 하면 셔터 속도를 반으로 줄여야 똑같은 밝기의 사진이 됩니다.

  • Q2) 야구장에서 맥주를 따르는데 평소보다 따르는 시간을 두 배로 늘리면 어떻게 될까요?
  • A2) 당연히 맥주가 넘치겠죠.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면 호스를 1/2 크기로 줄여야 잔이 넘치지 않을 겁니다.

카메라에서 셔터스피드를 2배 느리게 하면 조리개를 두 배로 조여야(1스탑 조여야) 똑같은 밝기의 사진이 됩니다.

그래서 조리개와 셔터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어요. 조리개를 조일수록 → 조리개 숫자가 커질수록 셔터는 그만큼 느리게 “찰~~~칵~~~” 해야 좁은 호스 구멍으로 적게 들어오는 빛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조리개만 조이고 셔터는 변경하지 않으면 사진이 어두워지지요.

*△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관계 (출처: MC Photography Blog)
*

조리개와 심도

그런데 어차피 빛을 같은 양으로 조절할 거면 뭐하러 조리개를 바꾸는 걸까요?

첫째, 호스 구멍을 가늘게 조이면 사진의 심도(depth of filed)가 깊어집니다. 안경 쓰는 분들은 안경을 벗고 멀리 있는 간판을 보면 잘 안 보이는데요, 이때 손을 모아서 바늘구멍처럼 모은 다음에 그 구멍으로 그 사물을 다시 보면 글자를 읽을 수 있어요.

△ 핀홀안경: 한때 시력 교정된다고 해서 많이 팔리던 핀홀 안경이란 게 있습니다. 바늘구멍으로 사물을 보면 갑자기 안 보이던 글자가 보이거든요. 물론 이 안경을 팔아먹던 사람들은 이 안경으로 눈을 훈련하면 나중에는 벗어도 시력이 좋아진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죠.

조리개를 조이면 사진이 가까이서부터 멀리까지 사진의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조리개를 열면 특정 거리에 있는 피사체만 초점이 맞고 나머지는 초점에서 벗어납니다. 카메라가 바라보는 방향에서 초점이 맞는 앞뒤 영역이 넓으면 심도가 깊다고 하는데요, 조리개는 이렇게 조일수록 심도가 깊어집니다.

△ 사진의 심도 (출처: Wikipedia – Depth of field)

△ 조리개 개방에 따른 심도 차이 (출처: Wikipedia – Depth of field)

왼쪽 사진은 조리개를 열고 찍었습니다. 꽃이 배경과 분리되었죠. 오른쪽 사진은 조리개를 충분히 조이고 찍었습니다. 배경까지 초점이 맞기 시작하고 있죠.

브라이언 피터슨(Bryan Peterson)은 이 효과를 페인트통의 구멍에 비유합니다.

조리개를 열면 → 페인트통 구멍이 크면, 페인트를 부었을 때 갑자기 쏟아지면서(셔터가 빨라지면서) 빨리 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부위만 진하게 묻고 나머지는 보기 싫게 페인트가 튀게 되지요. 이처럼 조리개를 개방하면 사진의 특정 부분만 초점이 맞고 나머지는 날아가 버립니다.

조리개를 조이면 → 페인트통 구멍이 작으면, 페인트를 붓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셔터스피드가 느려지지만), 대신 바닥에 페인트를 균일하게 물들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조리개를 조이면 사진의 멀고 가까운 구석구석이 초점 범위에 들어오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조심할 것은 초점을 맞게 하고 싶다고 조리개를 무작정 조이면 셔터가 느려진다는 것이죠. 그러나 셔터보다는 조리개가 중요할 때가 많으므로 많은 사진가들은 조리개 우선 모드(AV, Aperture Value)로 사진을 찍습니다. 피사체가 격렬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진의 심도가 사진을 감상하는 데 결정적으로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위 사진에서 꽃이 바람에 크게 흔들리는 상황이 아니라면 두 사진의 셔터스피드가 달라져도 배경 표현에 차이가 있지, 꽃 자체의 노출과 표현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데 주목하세요.

오늘 심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사진의 감도

마지막으로 감도입니다. ISO를 설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비유가 있지만, 어떤 비유는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고민해보니 그냥 ‘감도’ 자체로 설명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ISO를 맥주에 대한 감도라고 해볼까요?

  • ISO 100인 사람보다
  • ISO 200인 사람은 술에 2배 민감한 사람입니다.
  • ISO 400인 사람은 ISO 100인 사람보다 4배 술에 민감한 사람이죠.

그럼 ISO 100인 사람의 주량이 한 잔이라면, ISO 200인 사람의 주량은? 반 잔이겠죠? ISO 400인 사람의 주량은? 1/4 잔이겠죠.

이처럼 민감할수록 적은 양의 술로도 취할 수 있습니다. 이걸 사진 센서의 민감도로 바꿔 말하면, 센서가 민감할수록 빛이 적어도 똑같은 밝기의 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되지요.

△ ISO를 그릇의 크기로 비유 (출처: Canon PowerShot Compact Camera)

민감할수록 술이 조금만 있어도 금방 취할 수 있으니, 바꿔 말하면 술잔 크기를 반씩 줄여도 좋다는 말입니다. 민감한 피부는 살짝만 꼬집어도 자국이 남는 것과 같습니다. 휴지는 물을 살짝만 떨어뜨려도 금방 젖잖아요. (그렇다면 이왕이면 민감한 녀석으로 하는 게 좋겠군요. 술도 절약하고 말이에요.)

민감한 녀석으로 하면 → 센서의 민감도를 높이면 → 더 적은 양의 빛으로도 사진을 만들 수 있게 되면, 어떤 점이 이득일까요?

△ ISO에 따른 셔터스피드의 변화 (출처: Canon PowerShot Compact Camera)

첫 번째 이득: 더 민감한 센서를 사용하면 → ISO를 높이면 → 더 적은 양의 술만 있어도 충분한 상황이 되면, 그림에서처럼 한 컵을 채우는 데 시간이 적게 걸리게 되므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요. 즉, 더 빠른 셔터스피드로 임무를 완수하게 됩니다.

즉 같은 밝기의 사진을 찍으면서 ISO를 올린다 → 셔터를 더 빠르게 ‘찰칵!’ 하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 ISO 변화에 따른 조리개 변화 (출처: Canon PowerShot Compact Camera)

두 번째 이득: ISO를 올리면 → 더 민감한 센서로 사진을 찍으면 → 빛이 조금만 있어도 괜찮으면 → 그릇이 작아지면, 똑같은 셔터스피드(술을 틀어놓는 시간)에서 수도꼭지를 조금 더 조일 수 있게 됩니다.

똑같은 밝기의 사진을 찍을 때 ISO를 높이면 조리개를 조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드린 대로 피사계 심도를 높여서 전경에서 배경까지 더욱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해주지요.

반대로 낮에 사진을 찍으면서 어떻게든 배경이 뽀얗게 날아가는 사진을 찍고 싶어서 조리개를 개방하고자 할 때에는 동일한 셔터스피드에서 ISO를 낮추면 조리개를 좀 더 열 수 있습니다. 조리개를 열면 술을 한꺼번에 붓는 것처럼 특정 부분만 초점이 맞고 나머지는 날아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ISO를 올리면 손해 보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사진의 노이즈가 증가한다는 겁니다. 감도가 올라갈수록 사진의 입자가 거칠어집니다. 술에 민감할수록 피부가 안 좋다는 걸 기억하세요.

그래서 노이즈와 셔터스피드는 상보적인 관계입니다. 노이즈를 줄이고 싶으면 ISO를 낮춰야 하는데, 그러면 셔터스피드가 느려져서 흔들린 사진을 찍기 쉬워지죠.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사진의 내용에 충실한 게 좋다는 기본 원칙하에, 노이즈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찍어야 할 것을 너무 흔들리게 담지 않도록 하세요. 게다가 요즘엔 노이즈를 보정하는 카메라 안의 보정기능과 후보정 프로그램이 노이즈를 다루는 수준도 탁월하므로 찍을 때에는 지나치게 노이즈에 민감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쉽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정리하면,

  1. 조리개를 힘줘서 조일수록 f 숫자가 올라간다.
  2. 조리개를 조일수록 가까이에서부터 멀리까지 초점이 맞는다.
  3. 조리개를 조일수록 술을 찔끔찔끔 따라야 해서 오래 걸린다 = 셔터스피드가 느려진다.
  4. 감도를 올리면 술에 민감한 사람처럼 술을 적게 마셔도 취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술 = 빛이 필요해진다.
  5. 감도를 올리면 조리개가 일정할 때 셔터를 더 빠르게 가져갈 수 있다.
  6. 감도를 올리면 셔터가 일정할 때 조리개를 더 조일 수 있다.

이렇게 조리개 ↔ 셔터 ↔ 감도의 상관관계와 각자 사진에서 담당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면 카메라로 노출을 설정하는 기본을 배운 것입니다.

시뮬레이터로 연습하기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연습해보세요.

아래 사이트에서 사진 노출을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해 연습해볼 수 있습니다.

CameraSim의 카메라 시뮬레이터 (웹 버전) 바로가기

뷰파인더에 아이가 바람개비를 돌리며 서 있습니다. 바람개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지요. 그리고 뒤에 놀이터 배경이 있습니다.

△ 카메라 시뮬레이터 (CameraSim) 웹 버전

  • 빛의 양: 그 날의 조명 상황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점점 날씨가 좋아지고 빛이 좋은 날이 됩니다. 날씨가 좋을수록 조리개는 더 조여야, 셔터는 더 빠르게 해야 같은 밝기의 사진을 찍을 수 있겠죠?
  • 거리: 여러분과 아이의 거리입니다. 당연히 아이에게 다가갈수록 아이는 화면에 크게 나타납니다.
  • 초점 거리: 렌즈의 줌입니다. 렌즈의 줌을 당길수록 → 초점거리를 늘리게 되면, 아이는 화면에 크게 다가옵니다. 그럼 ‘거리’와 ‘초점 거리’와의 차이는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난번 강의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신이 직접 다가가서 아이를 크게 키우나, 줌으로 당겨서 아이를 크게 키우나 아이의 크기는 별 상관이 없는데요. 발로 다가가면 놀이터는 별로 나에게 안 다가오지만, 줌으로 당겨서 아이를 당기면 놀이터도 나에게 더 다가옵니다.
    즉, 발로 걸어가서 줌을 당기면 앞에 있는 아이만 움직이고, 카메라의 줌으로 당기면 배경도 따라오면서 화각이 좁아집니다. 그러면서 아이와 놀이터 사이의 거리가 압축되지요.
  • 조리개 우선 모드: 조리개를 이리저리 바꾸면 카메라가 알아서 셔터를 변경해줍니다. 조리개를 바꾸면 아이의 배경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여러 번 찍어보세요.
  • 셔터 속도 우선 모드: 이 사진에서 셔터와 관련 있는 건 아이가 계속 엉덩이를 씰룩쌜룩 움직이고 바람개비가 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셔터를 변경하면서 사진에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 보세요.
  • 매뉴얼 모드: 완전 수동 모드입니다. 도전해보세요! 노출 공부를 가장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모드가 될 겁니다.
  • 삼각대: 느린 셔터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됩니다.
  • ISO (필름 감도): 감도를 증가시킬수록 셔터를 확보할 수 있지만, 사진이 거칠어집니다.
  • 조리개: 숫자가 커질수록 구멍을 더 작게 조인다! 잊지 않으셨죠?
  • 셔터: 셔터스피드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우측 하단의 크고 동그란 은색 버튼을 누르면 사진이 찍힙니다. 정말 잘 만든 시뮬레이터 같아요. 여러 번 찍어보면서 연습해보시기를!

참고로 이 시뮬레이터에서 사용한 카메라는 1/4000초가 한계입니다. 화면에 뭔가가 깜박이면 한계치에 도달했다는 얘기지요.

이번에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꾸벅!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5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사진 노트 3-4. 존시스템 이해하기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아주아주 아주~ 옛날 사진기에는 말이지요. 노출계가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진기가 멍청해서 지금 밝은지 어두운지 몰랐어요. 사진가가 시키는 대로 찍을 뿐이지요.

△ 휴대용 노출 계산표. 1900년.

밝은지 어두운지 몰랐던 ‘바보’ 사진기 시절

그래서 사진가는 중요한 노출을 외우고 다녔습니다. 대강 지금 이렇게 이렇게 사진기를 설정하고 찍어야 사진이 너무 어둡거나 밝지 않고 적절한 밝기로 나온다는 공식 말이에요.

인기 있는 건 써니 16 규칙(Sunny 16)이었습니다.

“해가 쨍한 날, 조리개를 16에 놓고, 셔터스피드는 지금 카메라에 넣은 필름과 같은 속도로 맞춰서, 직광을 받는 피사체를 찍으면 적정 노출이다.”

그래서 사진가는 이런 기준을 머리에 넣어두고 상황이 변하면 적절하게 계산해 사진 촬영했습니다.

‘지금은 내 공식에서 날이 흐리니까 좀 더 밝게 찍어도 되겠군.’
‘날이 밝은데 조리개를 더 열고 싶으니까 셔터를 더 빨리해야겠군.’
‘내가 외운 공식에서 지금은 그늘에 있는 사람을 찍으니까 노출을 조금 낮춰야겠군.’

이런 식이었죠. 유능한 사진가는 몸으로 노출을 느꼈죠. 배꼽 노출계라고 해야 할까요? 천재가 아니라면 노출 노트는 필수였습니다. ‘어디서, 무슨 날씨에, 무엇을 찍을 때 노출 설정은 무엇무엇이 좋다.’ 이렇게 말이죠. 자기만의 노트와 경험으로 좋은 노출을 경험으로 배워갔죠.

드디어 기계가 노출을 계산하다

기계가 노출을 사진가 대신 계산해주는 데에는 사실 시간이 오래 걸렸지요. 1930년대가 되어야 비로소 노출계가 등장했습니다. 1932년 ‘웨스턴 노출계’는 배터리가 없어도 둥근 계산자를 사용해서 사진가가 f/스톱값과 필름 감도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셔터를 계산해주었지요.

△ Weston 617 모델. 1932년

명암과 농담으로도 세계는 충분히 정교하다

우리 조상들은 검은색 하나로만으로도 어쩜 그리 그림을 잘 그렸는지요?

△ 안창수. ‘쌍호’

수묵화를 보면 사실 색이 하나가 아닙니다. 사실 색이라기보다는 명암이 다른 것이지만요. 먹을 진하게 갈아서 완전한 검은색으로 쓸 수도 있고, 물을 타서 옅은 회색으로 칠할 수도 있죠.

이렇게 농담을 조절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세상을 정교하게 묘사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 형태, 멀고 가까움을 칼라가 없어도 흑색의 짙고 옅음만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거죠.

수묵화나 흑백 텔레비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색을 스펙트럼으로 표현한다면 아래와 같을 겁니다.

존 시스템(Zone System)이란 무엇인가?

1939년 발표한 이래 사진의 적정 노출과 올바른 현상을 위해 널리 교육되어 온 존 시스템은, 보통 앤셀 애덤스가 고안했다고 알려져있지만, 그 자신도 밝히고 있는 바 사진감광술에 관한 19세기 연구를 잘 정리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 시스템은 방금 보여드렸던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가는 스펙트럼을 몇 개의 영역으로 나눠서 이론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합니다. 뭔가 기준을 만들어야 구분할 수 있고, 구분해야 사진을 찍거나 현상할 때 기준에 따라 일관되게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10개로 구분하기도 하고, 11개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등급을 나누면 사진을 찍거나 필름을 현상할 때 기준이 생기지요. 여러분이 수묵화를 그릴 때 이 표가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두운 나뭇잎을 그릴 때 종이에 붓을 대기 전에 연습지에 붓을 그어보고 이 표와 대조해서 이 정도 농도면 좋겠어~ 할 때 그리기 시작하면 되겠지요?

이렇게 흑백 사진에서 존 시스템을 사용하면 체계적으로 사물을 정확한 밝기, 더 실제에 가까운 밝기로 묘사할 수 있게 됩니다.

△ 안셀 애덤스의 존 시스템 예제 사진

보통 컴퓨터 모니터 밝기는 제조사마다 조금 다를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르게 조정해서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만약 위에 있는 표의 10개 영역이 충분히 구분되어 보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모니터 밝기에 문제가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존8와 존9가 정확히 똑같은 색으로 보인다면 지금 모니터 밝기가 너무 밝은 거에요.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물을 정확한 노출로 표현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질감이 있는 백색이 질감을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노출을 관리해야 하지요.

명암차이를 보는 능력

세상에는 어느 정도의 밝기 범위가 있을까요? 우리가 눈으로 보는 가장 밝은색이 흰색이라면 그것보다 더 밝은 게 있을까요? 없을까요?

정답은 ‘있다!’

완전히 빛의 밝기가 0인 곳에서 시작해서 빛의 밝기는 무한대로 나아갑니다. 그중에서 사람의 눈은 일부분만을 취해서 볼 수 있고, 또 아주 제한된 범위에서 빛의 차이를 구분하지요.

예를 들어 아래 그림에서 완전한 검은색 존0 영역의 A를 포토샵에서 아주아주 살짝 밝게 수정해서 제가 A’을 만들었거든요. 사람 눈은 이 차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요.

△ 좌: 완전히 검은색 A (존0 영역) ㅣ 우: 포토샵에서 살짝 밝게 만든 A’

그리고 잉크의 한계도 있습니다. 눈으로 볼 때는 분명 구분이 되던 부분이었는데 종이에 인화하면 표현력에 한계가 생기지요. 보통 대형필름이 아닌 경우 가장 밝은 영역, 가장 어두운 영역에 있는 색들은 구분하기 어렵게 출력됩니다.

그레이 18%의 의미

흑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어느 정도로 명암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세상의 모든 색을 존 시스템의 중간쯤 되는 존5 로 바라봅니다.

카메라에 검은색 점 하나를 주고 이게 밝기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면, “몰라 존5”라고 대답하지요. 하얀 색 점 하나를 주고 물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카메라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존스케일에서 딱 중간을 기준으로 삼아야 질감과 디테일이 살아나니까요. 원래 그 사물이 밝은지 어두운지는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고, 뭔가 있으면 표현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이거지요.

이건 측광 방식과 관계 없습니다. 점 하나를 주어도 존5이고, 넓은 평면을 주면 조각으로 나누어서 각각 존5로 계산한 뒤에 평균 냅니다. 왜? 최대한 질감을 살려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카메라가 흑백텔레비전을 보면서 화면이 너무 까맣거나 너무 하얗게 되지 않고 회색이 되도록 텔레비전 명암을 언제나 가운데로 돌려놓고 싶어한다는 걸 알아야 하죠. 카메라가 딱 좋아하는 존5 영역은 빛을 18% 반사하는 그레이(회색)카드와 같은 명암 지점입니다.

반달곰

그러므로 여러분이 카메라랑 같이 흑백 텔레비전을 보는데 거기에 멋진 검은색 반달곰이 나오면 카메라가 일어설 거에요. 이거 왜 이렇게 깜깜해? 아무 것도 안 보이네. 화면을 회색으로 맞춰놓습니다.

△ 아니! 젠장!! 뱃살까지 너무 드러나니 멋진 반달곰이 갑자기 맥주 좋아하는 40대 아저씨 되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만족합니다. “역시 이제 가슴 털이 보이는군. 화질이 좋아졌어!”

북극곰

북극에서 수영하는 순백색의 북극곰 장면. 정말 감동적이고 예쁜 장면이야~ 라며 흑백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이 카메라놈의 자식 또 일어납니다. 이거 왜 이렇게 허옇게 나오는 거야? 그리고 다시 회색으로 텔레비전을 맞춰놓죠.

△ 아니! 젠장!! 나의 폴라베어를 돌려줘. 목욕 안 한 북극곰이 되었습니다. 칙칙해 죽겠네요. 하지만 카메라는 이제야 가슴털이 한올 한올 보인다며 좋아라 합니다. “중요한 건 가슴 털이라구!”

그러므로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는 이 곰이 원래 태어날 때부터 검은 애인지 흰 애인지 상관 없어 합니다. 뭐가 묻은 건지 원래 어두운 털이 나는 건지 알 바 아니죠. 그저 가슴 털이 중요할 뿐이에요.

검은색 많을 때 오히려 어둡게 / 흰색이 많을 때 오히려 밝게

그래서 검은색을 화면에 가득 채워도 회색으로, 하얀색 A4지를 가득 채워서 찍어도 회색으로 열심히 바꿉니다. 이제 매번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을 회색으로 고쳐놓으려는 카메라에 사진가는 지금은 검은색은 검은색으로 좋고, 흰색은 그대로 두어도 좋다고 말해주어야겠지요.

즉, 화면에 검은색이 많을 때는 카메라를 밝게 하는 게 아니라 어둡게 해야 합니다. (카메라는 검은색을 회색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밤에 사진 찍을 때는 밤처럼 나오게 하려면 노출 보정을 마이너스(-) 쪽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화면에 너무나 눈부신 흰색이 많을 때는 카메라를 어둡게 하는 게 아니라 밝게 해야 합니다. (카메라는 흰색을 회색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흰 눈밭을 찍을 때는 노출보정을 플러스(+) 쪽으로 조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존 시스템은 카메라의 노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잘 이해해두면 노출 보정할 때 도움이 됩니다. 물론 요즘은 디지털 시대니까 한 번 찍어보고 어두우면 밝게 해서 다시 찍으면 되겠지만요.

칼라 시대의 존 시스템

사실 컬러 사진 시대가 되면서 존 시스템을 응용하는 게 더 복잡해지고, 사진가도 내가 지금 새빨간 색을 화면에 많이 포함해서 찍으려고 하는데 흑백으로 보고 있는 내 카메라는 이 빨간색을 밝다고 생각할지 어둡다고 생각할지 헷갈립니다.

△ 칼라조견표

그래서 이런 표를 보기도 하는데요.

그냥 칼라도 대체로 흰색에 가까우면 카메라가 흰색 쪽으로 인식하고, 칼라도 더 짙고 어두운 색에 가까우면 카메라가 검은색 쪽으로 인식한다고 생각하세요.

외우기보다는 경험적으로 많이 찍어보는 게 좋습니다.

35밀리 카메라에서는 2스탑 내에서 너무 벗어나지만 않으면 후(後)보정도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번 테스트 샷을 날려보면서 감을 익히세요.

이번 강의는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는 조리개-셔터-ISO의 개념에 대해서 정리해보겠습니다.

  • 도전과제:

집에서 가장 하얀 물건을 찾아 찍기 전에 노출 보정하고 찰칵~!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5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사진 노트 3-3.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빛의 효과를 통해 인상주의 화가들이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것은 바로 순간의 진실이기 때문에, 인상주의는 바로 이곳, 바로 현재의 경외감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기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이 분석하고자 분주할 때, 이미 빛의 순간적인 효과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인상’은 일반적으로 포개진 인상들의 나열로 남아 있게 된다. 스티글리츠는 인상주의 화가들보다 더 좋은 길을 선택했다. 그는 그를 위해 제작된 도구, 카메라로 곧장 달려갔다.
– 폴 로젠펠드

순간의 진실은 만들어 설명할 수 없다

1890년대에 사진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초상화 대신 사진 찍으러 가서 자기 얼굴 그대로 기념으로 찍어오는 사람들, 아니면 고흐의 그림처럼 인상적이고 완벽한 그림 같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던 고매한 예술가들이었죠. 이 사람들은 나중에 초점을 일부러 흐리게 만들고, 원래 사진에 없던 걸 합성해버리는가 하면, 닷징(dodging)/버닝(burning)을 과도하게 해서 처음 찍었을 때와 완전히 다른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포토샵의 신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폴 로젠펠드가 말했던 것처럼 이렇게 사진 위에 뭔가를 덕지덕지 덧칠하는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진분리파 운동을 이끌며 이른바 ‘스트레이트 포토’ 시대를 연 스티글리츠는 단지 노출되는 것만으로, 가장 사진적인 것으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삼등선실(The Steer­age)], 1907년

위 사진은 호화 여객선으로 유럽을 여행하다가 찍었다는데, 특등실과 3등실의 대조를 통해 ‘사진 그 자체로 말하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속 얘기하지만, ‘더 밝게 또는 더 어둡게 할까?’라고 고민하는 순간 당신이 보고 있는 어떤 소중한 장면의 빛은 너무나 빠르게 당신 앞을 지나가 버립니다. 카메라의 적정 노출에서 빛의 단면을 담는 노력이 선행될 때만, 적정 노출에서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과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너무 밝거나 너무 어두워도 그것이 주제라면 내버려둔다.

△ ©emdot [의자들], 2005년 (CC BY 2.0)

의자에 듬뿍 내리는 빛을 보면 색 정보가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진가는 이토록 찬란한 빛을 내버려두기로 합니다.

평범한 풍경에서 사진가의 내면이 드러나는 노출을 찾아라.


△ 마이너 화이트, [태평양], 1948년

스티글리츠와 친했던 마이너 화이트 역시 사진 그 자체가 말하는 범위 내에서 사진의 노출에 개입했습니다. 그의 사진은 시각과 노출에 따라 바위가 풍경이 되고, 서리가 바다 물결이 됩니다. 만약 바위를 적정 노출로 촬영했다면 서리가 바다 물결처럼 보이지 않고 하얗게 사라졌을 겁니다.

맑게 내다보는 렌즈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은 조작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다는 행위에서 심미적인 목적으로 꾸준한 변형을 이루는 것이다.
– 마이너 화이트

주제가 빛과 만날 때를 기다린다

△ 미국의 에드 카시(Ed Kashi)가 찍은 사진

에이전트오렌지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9살 여자아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얼굴 일부가 드러나며 우리의 시선이 아이의 눈으로 향합니다.

△ 김성수 님의 사진. [공양간에서]

인도 라닥의 어느 곰파 공양간을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빛으로 나아와서 공양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2011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공모전 수상작.

밝은 것이 어두운 곳으로 나아갈 때, 어두운 것이 밝은 곳에 놓일 때

△ 핀바 오렐리(Fin­barr O’Reilly)의 사진. 나이제르의 병원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의 손에 키스하고 있는 어머니. 2005년

아이의 하얀 손톱이 절망과 두려움에 놓여있는 어머니의 검은 피부에 올려진 순간입니다. 빛에 대한 집중, 노출의 중심은 아이의 손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옷에 있는 화려한 색깔들에 노출중심이 있었다면 시선이 분산되었을 겁니다.

△ 다니엘 모렐(Daniel Morel), 아이티 지진 잔해에서 구출되는 여인

나이제르 사진과 반대로 이 사진은 어두운 피사체가 밝은 배경으로 나아오고 있죠. 죽음과도 같은 어둠에서 하얀 세계로 구출되는 여인의 사진에서 노출, 초점의 중심은 흑인 여자의 얼굴에 있습니다. 흔들린 사진에서 사진가의 시선과 일치하는 여인의 눈을 보면 당시 긴박한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 크리샌 존슨(Krisanne John­son) 작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독일 침례교 형제단의 한 소녀가 저녁 식사 후 부모의 농장에서 농구를 하는 사진. 밝은 배경 위에 놓인 어두운 복장의 소녀가 인상적입니다. 화면 하단의 모자 모양도 여기가 어디인지에 관해 말해줍니다. 사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하얀 눈밭을 더 희게 표현하면 주제가 되는 여자의 검은 옷이 적정 노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004년 세계보도사진전 수상작.

피사체가 잘 드러나는 노출이 아니라, 빛이 잘 드러나는 노출을 고려하자.


△ 데이비드 소스(David Sausse) 작. 2011년

독일의 어느 숲. 빛이 은근히 전체를 감쌀 때, 나무보다는 빛 자체가 이 사진의 주제가 되도록 근경부터 원경까지 적절한 노출로 아침의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오늘의 사진.

역광일 때 과감히 노출 언더로 실루엣 촬영하는 등 외곽선을 표현해본다.

△ 아담 프리티(Adam Pretty) 작. 중국에서 열린 제14회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

날도 흐린데 선수들을 이렇게 까맣게 찍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요. 그러나 이런 부드러운 명암차이에서 오히려 노출 언더 쪽으로 조정하여 하늘은 더 칙칙하게, 주제는 그 위에 놓인 종이 인형처럼 실루엣으로 표현했습니다.

△ ©John Brian Silverio. [Ollie Back­lit] 2010 (CC BY NC ND)

은근한 역광은 피사체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질지 몰라도 아름다운 외곽선을 선사합니다.

빛이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본다.

△ 김아타. 온-에어(On-Air) 프로젝트 중.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8시간 장노출로 찍은 사진인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그 많던 차들이 모래먼지처럼 바람으로 남아있다.

△ 로드리고 에스퍼(Rodrigo Esper). [Tribal]. 2008년

어두운 실내에서 제한된 조명 아래 춤추는 모습. 아예 셔터를 길게 해서 오랫동안 노출시켜 역동적인 색과 율동을 사진의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 오형근. [옷을 어깨에 걸친 아줌마]. 1999년

2012년 [중간인] 전을 통해 ‘개인’과 ‘집단’, 혹은 ‘나’와 ‘우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날의 군인들을 담았던 작가입니다. 원래 아줌마 사진으로 한 번 돌풍을 일으켰죠. 강한 전면 플래시 사용으로 대상은 갑자기 평면화되면서, 배경에서 유리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갑작스럽게 노출된 듯한 피사체는 부자연스럽고 강한 방식으로 관찰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던지죠.

그냥 사진이 어두워 보이니까, 좀 더 밝게 찍어야지……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사진에게 빛을 더 주어야 할 경우, 없는 빛을 발견하는 경우, 부족한 빛을 역발상으로 이용하는 경우, 오히려 빛을 이용하지 않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경우…… 이렇게 사진의 내용만이 아니라 사진의 밝기와 빛의 흐름을 읽어내면 또 다른 사진의 모습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존 시스템(zone system)에 관해 공부하겠습니다.

  • 도전과제: 가장 밝은 장소에서 가장 어두운 사진 찍어보기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4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