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노트 3-3.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년

빛의 효과를 통해 인상주의 화가들이 보여주고자 노력했던 것은 바로 순간의 진실이기 때문에, 인상주의는 바로 이곳, 바로 현재의 경외감을 한 폭의 그림으로 남기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들이 분석하고자 분주할 때, 이미 빛의 순간적인 효과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인상’은 일반적으로 포개진 인상들의 나열로 남아 있게 된다. 스티글리츠는 인상주의 화가들보다 더 좋은 길을 선택했다. 그는 그를 위해 제작된 도구, 카메라로 곧장 달려갔다.
– 폴 로젠펠드

순간의 진실은 만들어 설명할 수 없다

1890년대에 사진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초상화 대신 사진 찍으러 가서 자기 얼굴 그대로 기념으로 찍어오는 사람들, 아니면 고흐의 그림처럼 인상적이고 완벽한 그림 같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했던 고매한 예술가들이었죠. 이 사람들은 나중에 초점을 일부러 흐리게 만들고, 원래 사진에 없던 걸 합성해버리는가 하면, 닷징(dodging)/버닝(burning)을 과도하게 해서 처음 찍었을 때와 완전히 다른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포토샵의 신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폴 로젠펠드가 말했던 것처럼 이렇게 사진 위에 뭔가를 덕지덕지 덧칠하는 분위기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진분리파 운동을 이끌며 이른바 ‘스트레이트 포토’ 시대를 연 스티글리츠는 단지 노출되는 것만으로, 가장 사진적인 것으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삼등선실(The Steer­age)], 1907년

위 사진은 호화 여객선으로 유럽을 여행하다가 찍었다는데, 특등실과 3등실의 대조를 통해 ‘사진 그 자체로 말하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계속 얘기하지만, ‘더 밝게 또는 더 어둡게 할까?’라고 고민하는 순간 당신이 보고 있는 어떤 소중한 장면의 빛은 너무나 빠르게 당신 앞을 지나가 버립니다. 카메라의 적정 노출에서 빛의 단면을 담는 노력이 선행될 때만, 적정 노출에서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

노출을 만지는 사진가들과 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너무 밝거나 너무 어두워도 그것이 주제라면 내버려둔다.

△ ©emdot [의자들], 2005년 (CC BY 2.0)

의자에 듬뿍 내리는 빛을 보면 색 정보가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진가는 이토록 찬란한 빛을 내버려두기로 합니다.

평범한 풍경에서 사진가의 내면이 드러나는 노출을 찾아라.


△ 마이너 화이트, [태평양], 1948년

스티글리츠와 친했던 마이너 화이트 역시 사진 그 자체가 말하는 범위 내에서 사진의 노출에 개입했습니다. 그의 사진은 시각과 노출에 따라 바위가 풍경이 되고, 서리가 바다 물결이 됩니다. 만약 바위를 적정 노출로 촬영했다면 서리가 바다 물결처럼 보이지 않고 하얗게 사라졌을 겁니다.

맑게 내다보는 렌즈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은 조작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다는 행위에서 심미적인 목적으로 꾸준한 변형을 이루는 것이다.
– 마이너 화이트

주제가 빛과 만날 때를 기다린다

△ 미국의 에드 카시(Ed Kashi)가 찍은 사진

에이전트오렌지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9살 여자아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얼굴 일부가 드러나며 우리의 시선이 아이의 눈으로 향합니다.

△ 김성수 님의 사진. [공양간에서]

인도 라닥의 어느 곰파 공양간을 찍은 사진이라고 합니다. 어두운 곳에서 빛으로 나아와서 공양을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2011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공모전 수상작.

밝은 것이 어두운 곳으로 나아갈 때, 어두운 것이 밝은 곳에 놓일 때

△ 핀바 오렐리(Fin­barr O’Reilly)의 사진. 나이제르의 병원에서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의 손에 키스하고 있는 어머니. 2005년

아이의 하얀 손톱이 절망과 두려움에 놓여있는 어머니의 검은 피부에 올려진 순간입니다. 빛에 대한 집중, 노출의 중심은 아이의 손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옷에 있는 화려한 색깔들에 노출중심이 있었다면 시선이 분산되었을 겁니다.

△ 다니엘 모렐(Daniel Morel), 아이티 지진 잔해에서 구출되는 여인

나이제르 사진과 반대로 이 사진은 어두운 피사체가 밝은 배경으로 나아오고 있죠. 죽음과도 같은 어둠에서 하얀 세계로 구출되는 여인의 사진에서 노출, 초점의 중심은 흑인 여자의 얼굴에 있습니다. 흔들린 사진에서 사진가의 시선과 일치하는 여인의 눈을 보면 당시 긴박한 분위기를 알 수 있습니다.

△ 크리샌 존슨(Krisanne John­son) 작

미국 오하이오주에 있는 독일 침례교 형제단의 한 소녀가 저녁 식사 후 부모의 농장에서 농구를 하는 사진. 밝은 배경 위에 놓인 어두운 복장의 소녀가 인상적입니다. 화면 하단의 모자 모양도 여기가 어디인지에 관해 말해줍니다. 사진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하얀 눈밭을 더 희게 표현하면 주제가 되는 여자의 검은 옷이 적정 노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004년 세계보도사진전 수상작.

피사체가 잘 드러나는 노출이 아니라, 빛이 잘 드러나는 노출을 고려하자.


△ 데이비드 소스(David Sausse) 작. 2011년

독일의 어느 숲. 빛이 은근히 전체를 감쌀 때, 나무보다는 빛 자체가 이 사진의 주제가 되도록 근경부터 원경까지 적절한 노출로 아침의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오늘의 사진.

역광일 때 과감히 노출 언더로 실루엣 촬영하는 등 외곽선을 표현해본다.

△ 아담 프리티(Adam Pretty) 작. 중국에서 열린 제14회 세계 수영선수권 대회

날도 흐린데 선수들을 이렇게 까맣게 찍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요. 그러나 이런 부드러운 명암차이에서 오히려 노출 언더 쪽으로 조정하여 하늘은 더 칙칙하게, 주제는 그 위에 놓인 종이 인형처럼 실루엣으로 표현했습니다.

△ ©John Brian Silverio. [Ollie Back­lit] 2010 (CC BY NC ND)

은근한 역광은 피사체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질지 몰라도 아름다운 외곽선을 선사합니다.

빛이 부족하거나 넘치거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본다.

△ 김아타. 온-에어(On-Air) 프로젝트 중.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8시간 장노출로 찍은 사진인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그 많던 차들이 모래먼지처럼 바람으로 남아있다.

△ 로드리고 에스퍼(Rodrigo Esper). [Tribal]. 2008년

어두운 실내에서 제한된 조명 아래 춤추는 모습. 아예 셔터를 길게 해서 오랫동안 노출시켜 역동적인 색과 율동을 사진의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 오형근. [옷을 어깨에 걸친 아줌마]. 1999년

2012년 [중간인] 전을 통해 ‘개인’과 ‘집단’, 혹은 ‘나’와 ‘우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젊은 날의 군인들을 담았던 작가입니다. 원래 아줌마 사진으로 한 번 돌풍을 일으켰죠. 강한 전면 플래시 사용으로 대상은 갑자기 평면화되면서, 배경에서 유리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갑작스럽게 노출된 듯한 피사체는 부자연스럽고 강한 방식으로 관찰하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던지죠.

그냥 사진이 어두워 보이니까, 좀 더 밝게 찍어야지……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사진에게 빛을 더 주어야 할 경우, 없는 빛을 발견하는 경우, 부족한 빛을 역발상으로 이용하는 경우, 오히려 빛을 이용하지 않고 단호하게 거부하는 경우…… 이렇게 사진의 내용만이 아니라 사진의 밝기와 빛의 흐름을 읽어내면 또 다른 사진의 모습이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존 시스템(zone system)에 관해 공부하겠습니다.

  • 도전과제: 가장 밝은 장소에서 가장 어두운 사진 찍어보기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4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사진 노트 3-2. 적정노출에 대하여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오늘은 ‘적정노출’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화가는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얼굴이 하늘보다 더 많은 시간을 담고 있기 쉽다. 그림의 시간은 인간이 판단하는 가치에 따라 생겨난다. 사진에선 시간이 균일하다. 어떤 부분이건 균일한 시간 동안 균일한 화학 처리를 받는다. 노출되는 시간도 같다.
(중략)
그림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판단과 결정들은 체계적이다. 다시 말해서 이미 존재하는 언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중략)
사진은 그림과 달리 언어를 갖지 않는다.
(중략)
롤랑 바르트는 사진에 관한 글에서 “… 사진은 …정보경제학의 결정적인 돌연변이에 해당한다”라고 썼다. 독자적인 언어를 갖지 않으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곧 돌연변이인 것이다.
– 존 버거/장 모르, <말하기의 다른 방법>, 눈빛, 93-94쪽

그림은 생각하고 하나하나 그려나가는 것이지만, 사진은 그렇지 않아요.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서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뒤로 돌려 보게 될 영상을 상상한 뒤에 눈을 “하나, 둘, 셋!” 하고 떠보세요. 사진은 그렇게, 단번에, 하나의 장면으로, 별안간 다가오는 것입니다.


△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1889년


△ 요세프 카쉬 작. [헬렌 켈러]. 1948년

요즘은 화학적으로 필름을 처리하는 대신 센서로 들어오는 ‘빛 정보’로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디카’ 시대입니다만, 카메라에 HDR 기능이 내장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일차적으로 센서에 들어오는 원본 영상 자체는 전체가 같은 노출시간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친구를 사진으로 찍을 때, 내 맘대로 더 밝게 찍을 수도 있고 더 어둡게 찍을 수도 있고, 왜 이렇게 찍었는지 물으면 ‘나의 예술적 표현 의도가 있어!’라고 대답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거의 동 시간대의 빛을 단 한 번에 모아서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것이 2초, 3초의 장노출 사진이라고 하더라도 샐로판지처럼 같은 층위에 있는 빛들을 차곡차곡 쌓는 것이지 중요한 순서나 그리고 싶은 순서대로 빛을 ‘읽어내려가면서’ 모으지는 않는다는 거죠.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따라서 노출의 기본은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찰~~~’에서 시작한 빛의 열차에서, 여러분이 무언가를 보았을 때 여행을 멈추고 정거장에서 내려서, ‘~~~~칵’ 하는 것입니다. 너무 빨리 내리면 여러분이 노출하고 싶었던 아름다운 풍경은 저 멀리 어둠에 가려져 만나보지도 못하게 될 것이고, 너무 늦으면 하얗게 빛바랜 기억으로 사라져 잊히게 되지요.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사진의 노출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와 관계가 있습니다.

둥근 물체의 그림자는 둥글게, 부드러운 커튼을 통과한 빛줄기는 벽면에 부드러운 파도와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진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처음부터 너무 고흐처럼 밤하늘이 찬란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심술내지 말고, 사물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물이 나에게 말하는 순간을 기다려보세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낄 때 셔터를 누릅니다. 그 사진의 밝기와 그 사진 곳곳에 담긴 빛의 명암은 이상하게도 오늘 나에게 주는 느낌이 다르고, 일 년 후에 나에게 주는 느낌이 또 다르지요. 빛은 이렇게, 의도하지 않아도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계속 무언가를 말해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계산하지 마라

그림으로는 밝은 창가에서 방 안쪽으로 나를 보는 아이의 웃는 모습을 공들여 그릴 수 있지만, 사진에서는 이 극명한 밝기 차이를 나중에 포토샵으로 합성하면 모를까 둘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어두운 아이의 미소를 밝게 하면 창가의 빛은 지나치게 밝아져서 눈부시게 되며, 창가의 빛을 줄이면 아이의 미소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죠.

오늘도 우리는 너무나 아까운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감춰서 포기하면서, 대신 더욱 필요하고 놓칠 수 없는 무언가를 노출해 사진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눈도 그래요. 다들 눈이 예뻐서 주변의 것들은 죄다 칙칙해지는 그런 예쁜 사람 한 명을 기억할 수 있을 거예요. 단 한 번 ‘찰칵’했을 뿐인데, 눈에는 선택적으로 곳곳이 도드라져 나에게 말 거는 사진의 매력. 롤랑 바르트가 사진을 돌연변이라고 이름 지은 건 정말 적절해 보입니다.

그래서 기본은 그렇습니다. 받아들여라, 그게 사진이다. 너무 계산하지 마라. 언어가 없어도 사진은 스스로 말할 것이다.

△ 마이클 케냐, 영국 요크셔 지방, 1986년

△ 백조 반영, 영국, 1977년

적정 노출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사진을 보며 “너무 어둡게 나왔네.”, “너무 밝게 나왔네.”라고 말하지요. 이때 밝다, 어둡다는 보통은 원래 눈으로 봤던 것보다 밝거나 어둡다, 또는 대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밝다, 어둡다는 뜻입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적정 노출’(optimum exposure), 최적의 노출에 대해서 노출이 과다한 것은 사진의 밝은 부분의 정보를 잃은 것이고, 노출이 부족한 것은 사진의 어두운 부분의 정보를 잃은 것이라고 표현하더라고요. 쉽게 말해 사진에 하얗게 떠버린 곳이 많으면 ‘노출 오버’(overexposure)라고 하고, 어두운 부분이 뭉쳐있으면 ‘노출 언더’(underexposure)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카메라도,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진가도 가능하면 하얗게 뜨거나 어둡게 뭉친 사진을 피하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눈으로 본 어떤 빛을 고이 담아서 사진에 다 담아 넣고 싶어 하지요. 내 눈으로 봤는데 사진에 안 나오면 곤란하잖아요.

그러나 어떤 사진가들은 일부러 ‘노출 오버’ 또는 ‘노출 언더’로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즉, ‘적정 노출’에서는 벗어나 있어도, 그 사진에 빛 정보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진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는 거죠.

본대로 옮기는 것이 좋은 노출

무엇을 보았나요? 밝은 낮에 뭔가 종말을 느꼈다면, 카메라를 이용해서 밤처럼 어둡게 찍을 수도 있습니다. 찍힌 사진에 내가 본 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 그것이 좋은 노출이고, 꼭 카메라가 계산해 준 적정 노출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다 이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막 찍어도 된다는 소리가 아니라, 시각 감각으로 무엇이 느껴지는지 매달려보고, 사진에 담아보려고 해야 한다는 말이겠죠.

△ 라즐로 모홀리 나기, [라디오 송신탑에서 본 풍경], 1928년

유명 사진가이자 프린팅의 대가였던 앤셀 애덤스(Ansel Adams, 1902-1984)는 위대한 사진가들의 작품을 합동으로 전시하는 사진전에서 라즐로 모홀리-나기(Laszlo Moholy-Nagy, 1895 ~ 1946)가 찍은 사진이 너무 조악해서 빼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기야 필름 원판을 빌려와서 세계 최고의 프린팅 전문가의 솜씨로 사진의 밝기와 질감을 조절해서 다시 인화했는데……

인화하자마자 자신이 인화한 걸 버리고 원래의 사진을 전시하기로 했다죠. 질감과 적정 노출을 맞춘 순간 원래의 사진이 가진 독특한 조형미와 추상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과학적 노출 계산이 만능이 아니라는 소리죠.

사진이 하나의 순수한 행위-자국으로 여겨지는 것은 …… 소위 노출의 유일한 순간 동안이다. 그 순간에, 바로 그 유일한 순간에 인간은 그 무엇도 중재할 수 없으며, 사진의 본질적인 특성을 바꾸려는 그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그 순간에는 틈새, 코드들의 망각된 순간, 거의 순수한 인덱스가 있다.
– 필립 뒤봐, [사진적 행위], 사진 마실, 66쪽

카메라로 사진의 노출값을 설정하는 데 너무 집착하지 마세요. 조리개 8에 두고, 조리개 우선 모드로 막 찍는 겁니다. 사진의 순수한 순간을 만나게 될 때, 노출에 대해 어느 날 우리는 득도해 있을 거라 믿어봅니다. :-)

재미없는 얘기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한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편하게 사진 구경 좀 해보려고 합니다. 사진가들이 빛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정리해보겠습니다.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4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사진 노트 3-1. 노출을 만드는 방법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 다이앤 아버스, 무제, 1970-71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방, 그 방에 누가 있을까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빛을 더하면 더할수록 무언가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서서히 드러난 형체, 질감, 그리고 결국 눈빛과 표정. 이 방에 빛을 멈추지 않고 계속 더합니다. 화면 전체는 눈부시게 하얗게 되어 하늘로 사라집니다.

무엇을 노출할 것인가?

우리는 사진의 노출은 사진기의 메커니즘에 의해 결정되는 물리적, 기계적 현상이고, 노출증 환자가 스스로 보여주고 싶은 순수한(?) 욕망은 심리적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진의 노출’을 검색하면 카메라 작동법 이야기만 너무 많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생각해요. 사진기가 보여주게 되는 노출은 기계가 하는 일이지, 나의 ‘노출’은 아닙니다.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가? 바로 이게 사진 찍는 사람에게 있어서 노출의 본질이라고 말입니다.

비정상적인 사람들, 그늘진 곳을 찾아다녔던 다이앤 아버스(1923-1971)는 196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탈영병 보호소를 운영하던 샐스트롬과 함께 작업하다가 샐스트롬의 친척 아주머니댁을 방문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이앤은 아주머니가 냉장고에 기댄 사진을 찍어주고는 아저씨는 찍지 않겠다고 말하지요. 이유는 아저씨의 얼굴과 목에 벌겋게 습진이 일어 아저씨가 ‘무방비 상태’였으니까요. (퍼트리샤 보스워스, [다이앤 아버스], 세미콜론, 347쪽.)

아니 가슴을 덜렁거리는 누드족도, 더 끔찍한 문신을 한 사람들도 수 백 장 찍었으면서 아저씨의 습진은 못 찍어?

지켜줄 수 없다면 찍지 말아야 한다

다이앤에게 있어서 누드족의 가슴보다, 원치 않는 습진으로 고통받는 아저씨의 얼굴은 자신을 방어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서 더욱 무방비로 ‘노출’된 아픔이었지요. 내가 지켜줄 수 없다면, 우리는 찍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이 어둡다, 밝다 말하기 전에 어떤 윤리적인 검토도 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이것을 드러내도 괜찮은가? 이것은 무엇무엇을 감수하고 반드시 드러내야 하는가? 등등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훌륭한 사진가들은 대체로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피사체가 무방비라면 노출해서는 안 되고, 피사체가 지나치게 노출되고 싶어 하면 찍어도 좋은 사진은 되지 못한다.’ 아마도 좋은 사진은 이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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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데이비슨은 ‘동100번가’ 시리즈에서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을 밀착해서 보여줍니다.

어떤 사진을 보면 ‘아, 정말 예술이다’, ‘아, 정말 어쩜 이런 묘한 장면을 포착했을까?’, ‘창문 밖 축축한 세계와 집 안에 인형처럼 놓여있는 백색 소파 위 흑인 소녀들을 봐, 기가 막힌 노출과 구도로군!’ (……)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실제로 매그넘 회원 중에서도 저널리즘보다는 사진에 예술적인 노출과 구도를 의도적으로, 은근히 연출하는 순수 사진을 찍는다고 알려졌죠.

그러나 그의 인상적인 구도와 노출이 만들어지기까지 자신이 그곳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자다가도 그 동네 사람들이 부르면 고장 난 보일러 사진을 찍어서 동사무소에 제출해주고, 심지어 법정 소송도 대신 담당해줄 정도로 그가 찍는 사람들을 사랑했다는 사실 말이에요.

피사체 스스로 노출하게 하기

사진을 밝게, 어둡게(……) 도대체 매번 어떻게 찍어야 적절한 밝기로 찍을 수 있는지 고민되시나요? 찍고자 하는 사람과 아주 오랫동안 함께하며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하는 순간, 가장 좋은 모습으로 어느 순간 사진 안에 그들이 ‘노출되어’ 사진을 완성하게 될 겁니다.

전문가에게 노출에 대한 조언을 구하면, ‘조리개 8에 두고 계속 찍어!’라고 말하죠. 이 말 자체가 말장난인데, ‘조리개 8’은 뭔가 기술적이고 유용하게 들리지만, 사실은 f/8은 대부분 렌즈에서 만들 수 있는 조리개이고, 셔터와 ISO 를 함께 가르쳐주지 않으면 노출에 관해서는 쓸모없는 조언입니다. ‘계속 찍어’라는 말은 궁극적으로 노출이라는 게 쉽다는 걸 의미합니다. 좋은 노출을 얻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설정이 아니라, 인내와 헌신이며 그래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순간에 집에 안 가고 거기 있을 수 있습니다. (참고: 포토넷)

딱 적당한 노출로 사진을 어떻게 찍을 수 있는지 궁금하나요?
찍어요. 찍으라고요!

하루는 브루클린에서 험상궂게 생긴 흑인 청년 하나가 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이 팬 흉터 자국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기 사진을 찍지 말라고 미리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카메라를 부숴버리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항상 미리 양해를 구하고 찍은 사진은 반드시 보내준다고 대답하고는, 사진을 모아둔 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진을 찍도록 가만히 있어 주었다.
– 브루스 데이비슨

브루스 데이비슨 사진 몇 장 (지하철 연작 중)

도전 과제!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찍어 보기.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3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사진 노트 2-4. 광각과 망원의 세계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우리는 카메라를 산 뒤, 표준렌즈에 슬슬 싫증이 느껴지면 렌즈를 추가로 사고 싶어집니다. 이것은 신체적으로는 우리가 무언가를 더 가까이에서 탐구하고 싶은 욕심, 또 가끔은 답답한 시선에서 벗어나서 전체를 조망하고 싶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사다리로 생각해보는 배경 압축

물리적으로 광각렌즈와 망원렌즈에서 생기는 효과는 사다리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자, 여기 사다리가 하나 있습니다.

벽에 사다리를 세워두고 멀리멀리 뒤로 가서 사다리를 보면, 사다리의 가로줄 간격이 일정해 보입니다. 왜 일정하냐? 원래 일정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러나 이제 사다리를 오르려고 가까이 다가가서 하늘 쪽으로 사다리를 올려다보면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요.

분명 간격이 일정했는데 하늘 쪽으로 갈수록 간격이 좁아지는 게 아니겠어요? 사실 이렇게 되어야 우리의 눈은 똑같은 간격으로 서 있는 사물을 앞 방향에서 볼 때 원근감을 갖게 되죠. 광각은 가까이 있는 것은 더 가깝게 먼 것은 멀게. 원래 직사각형이어야 하는데, 가운데 공간이 사다리꼴에 가깝지요? 이것이 광각의 특징입니다.

망원은 앞뒤 간격이 압축됩니다. (화질이 안 좋아 죄송)

여기서 사진에 똑같이 나오도록 사람을 사진에 넣어 찍으면, 그러니까 사다리 아래쪽에 앉혀 놓고 광각으로 찍은 사진과 사람 보고 사다리 위로 올라가라고 해놓고 망원렌즈로 당겨 찍은 사진이 있다고 할 때 말이지요. 사진에 나온 사람은 크기는 같은데 배경이 넓게 넓게 퍼져있습니다.

사진에 나온 사람 크기는 같은데 배경에 더 멀리 있는 녀석들까지 답답하게 앞뒤로 밀착해서 들어와 있습니다.

광각렌즈와 망원렌즈를 응용해보자

단지 초점거리만을 고려할 때

가까이 있으면 광각렌즈, 멀리 있으면 망원렌즈입니다. 그러나 멀리 물러날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광각렌즈를, 가까이 갈 수 없을 때 어쩔 수 없이 망원렌즈를 선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 사자를 망원렌즈로 찍었습니다. 왜? 무서우니까!

보통 인물의 초상사진, 증명사진 등은 표준초점거리보다 더 먼 거리에서 찍습니다. 약간 카메라가 떨어진 느낌이어야 표정도 자연스러워지고 덜 부담스럽거든요.

초점거리 변화에 따른 배열압축을 고려할 때

아까 사다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똑같이 줄을 서 있어도 멀리서 당겨 찍으면 더 갑갑하게 달라붙어서 줄 서 있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므로 같은 간격도 좀 더 떨어뜨려 놓고 싶으면 광각렌즈를 쓰고, 같은 간격도 더 답답하게 붙여놓고 싶으면 망원렌즈를 씁니다.

△ 안 그래도 답답하게 사람들이 걷고 있는 거리, 망원렌즈로 멀리 있는 사람들을 담았더니 더 답답하게 앞뒤로 꾸역꾸역 뭉쳐 보이는군요. (사진: © nial­lkennedy)

△ 사실 이렇게 코가 크지는 않을 텐데 저 멀리 있는 배경은 더 멀리 밀려나고 가까이 있는 코만 강조되었습니다. (사진: © don j schulte @ oxherder arts)

사다리 예를 좀 응용해서 거리 차를 이용하는 방법

즉,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 창밖을 보면 가까이에 있는 나무는 휙휙~ 지나가고 멀리 있는 커다란 산은 잘 안 움직이지요. 즉 가까이에 있는 사물은 내가 움직이면 금방 따라 움직이지만, 멀리 있는 사물은 좀처럼 위치나 크기를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달은 계속 우리를 따라다니지요.

렌즈의 초점거리가 광각렌즈에서 망원렌즈로 달려갈 때에도 가까이에 있는 사물은 확확 커지지만, 멀리 있는 사물은 거의 그대로이기 때문에 풍경 사진에서도 망원렌즈를 잘 이용하면 멀리 있는 사물의 근경에 손쉽게 커다란 물체를 놓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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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서 근경에 커다란 바위를 압도적으로 배치하고 원경의 커다란 산을 배경으로 처리했습니다. 만약 저 앞까지 걸어가서 바위도 나오고 산도 나오게 광각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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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가 나오기는 했는데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두 사진에서 같은 크기의 두 개의 바위가 모두 등장하도록 사진 프레임을 잘랐다는 데 주목하세요. 또 한 가지는 바닥에 있는 풀이 듬성듬성 나 있잖아요. 망원렌즈로 찍었을 때보다 풀 사이가 덜 압축되게 되면서(사다리의 예를 생각해보세요), 뭔가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한 느낌을 주게 되어버렸네요.

앞 뒤 거리가 압축된다는 사실과 서로 다른 거리에 위치한 두 사물을 가까이서 찍는 것과 멀리서 당겨서 찍는 차이를 잘 이해하면 사진가의 의도에 따라 사뭇 다른 사진을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밖에 일반적으로 배경이 뽀얗게 날아가는 효과에는 망원렌즈가 좋지요. 광각렌즈와 망원렌즈에 따른 심도 차이는 다른 강좌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고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기계적, 물리적 차이는 이렇습니다. 사실 위대한 사진가들은 그들이 찍고자 하는 주제에 더 다가갈 것인가, 물러서서 전체적으로 볼 것인가를 더욱 깊이 고민했습니다.

다가가는 것


△ 다이안 아버스, 장난감 수류탄을 든 소년, New York City (1962)

다이안 아버스­(Dainae Arbus, 1923-1971)는 1958년 한 여류사진작가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을 듣습니다.

“빛은 가장 위대한 정신의 수용체이다. 사진에서의 빛이란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사진은 빛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가서 비추어라. 가서 드러내라. 세상에 가려진 것, 소외된 것, 버림받은 것, 모든 상처 입은 영혼들이 너의 빛을 기다리고 있다.”
– 진동선, [영화보다 재밌는 사진 이야기], 푸른세상, 225쪽에서 재인용.

이 이야기를 듣고 그녀는 패션 사진을 때려치우고, 세상이 저주의 대상으로 여기는 기형인들, 난쟁이, 거인, 문신한 흉측한 사람들을 찾아가 [기형인] 시리즈를 찍죠. 부잣집 딸로 태어나 패션 사진에서 떠나 60년대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 카메라를 들이대던 그녀는 자신의 사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괴로워하며, 마약, 이혼 등을 통해 자신의 삶마저 망가뜨리다가 1971년 자살합니다. 어쩌면 그녀는 자기 스승이 주문했던 대로 “삶의 무게가 사진의 무게가 되기 위해”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르지요.


△ 다이안 아버스, Eddie Carmel, 거인증 있는 한 유대인, 부모님과 함께 그의 집에서, New York, 1970

쌍안경으로 세상을 본 적이 있나요? 그것은 무언가를 확대해주어서 그것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지만, 동시에 당장 내 앞에 있는 내 삶을 잊게 하는 마약과도 같은 시선입니다. 기본적으로 도둑촬영의 시선인 그것은, 내 삶의 무게와 피사체의 무게가 같지 않다면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될 무기이기도 한 것이지요.

우리는 망원렌즈를 사용하면서 자신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 멀리 있는 것을 이렇게 가까이 가져도 될 자격이 나에게 있는가? 참 감사하다, 미안하다.

물러서서 조망하는 것

1970년대 베트남전. 대부분 사진작가가 남베트남 미국 전선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유일하게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서 북베트남에 잠입한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프랑스 출신 사진작가 마크 리부(Marc Riboud)죠.

광각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이 사람이 생각난 이유는, 물러선 시선을 갖는다는 것, 와이드-앵글을 보여준다는 것은 언제나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언가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발 뒤로 물러난 세상을 보여주는 것은 렌즈의 초점거리에 상관없이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와이드-앵글의 미학입니다.


△ 어린 소녀까지도 나라를 지키는 데 동원/참여하는 북베트남의 현실은, 당시 냉전상황에서는 하늘을 날아가서 훔쳐보지 않는 이상 볼 수 없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새롭고, 유일하며, 넓은 시야를 제공합니다. (사진: 마크 리부, 북베트남, 1969)


△ “너희는 가난하잖아”라며 모스크바 박람회장에서 소련 서기장에게 삿대질하는 닉슨의 사진입니다. 카메라의 초점거리 자체는 근접해 있지만, 이 한심한 광경을 한참 떨어져서 지켜보는 사진가의 떫은 시선이 느껴지지 않나요? (사진: 엘리엇 어윗, “흐르쇼프와 닉슨”, 모스코바, 1959)

초광각의 렌즈 자체도 중요하지만, 저 중요한 건 상황과 역사를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사진가의 의식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시선 없이 함부로 광각렌즈를 들고 아무거나 찍으면 정말 사진이 지저분해질 뿐입니다.

초점과 화각 강의를 마치며

초점거리와 화각 이야기는 오늘로 끝내겠습니다. 다음 강의에서는 ‘노출’에 대해서 다루어보겠습니다.

강의 순서를 ‘구도 – 화각 – 노출’로 구성한 이유는 순서대로 고민해보는 것이 더 좋은 사진을 만들 것 같아서였어요. 카메라를 사면 자동 모드로 많이 찍어보면서 화면 안에 무엇을 집어넣고 뺄 것인지 고민해보는 것(구도)이 가장 중요한데도 많은 책들을 보면 노출부터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동 모드도 노출은 훌륭하게 계산하니까 그냥 찍기부터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자동카메라에도 줌 버튼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 밀고 당기는 화각이 가장 사진 찍을 때 그다음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 거 같았고요.

노출의 개념은 천천히 익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3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

사진 노트 2-3. 표준화각 – 눈으로 사진찍기

사진 전문가의 강의가 아닙니다. 사진을 찍으며 드는 생각을 하나씩 정리한 노트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의 사진 노트를 엿본다고 생각해주세요. – 서울비

렌즈의 초점거리를 변화시켜 보겠습니다.


△ (출처: www.geog.ucsb.edu)

그림에서처럼 초점거리가 늘어나면 렌즈에서 똑같은 거리에 떨어져 있는 동상이 더 큰 상으로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초점거리가 늘어나면 빛이 덜 꺾이도록 덜 오목하게 렌즈를 다듬어줘야 하겠죠. (근데 그건 렌즈 만드는 회사가 할 걱정이고요.)

초점거리와 화각의 관계

우리는 초점거리가 작아질수록 대체로 사물은 작아져서 화면 안에 구겨져서 들어오고, 초점거리가 늘어날수록 원반 던지는 아저씨의 배꼽에 있는 털이 벽에 크게 나타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사물이 있는 경우에는 두 개의 검은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초점이 맺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하세요.)

그런데 초점거리가 늘어나면 사물의 크기만 증가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볼 수 있게 되는 세계의 범위가 좁아지죠.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서 안경처럼 눈에 붙이면 아무 문제 없이 세상을 볼 수 있지만, 점점 눈에서 멀어지게 떨어뜨리면 주변을 볼 수 없게 되고 점점 답답해지지요.

그래서 초점거리가 늘어나면 더 좁은 범위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화각이 좁아진다고 말합니다.


△ 이미지 출처 미상

우리가 구매하는 렌즈에는 저마다의 초점거리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원반 던지는 아저씨 옆에 있는 배경을 억지로 구겨 넣지도 않고, 또 부담스럽게 아저씨 배꼽 털로 전진하지도 않은…… 사람이 눈으로 보는 모습과 비슷한 범위의 영상을 담아주는 초점거리는 35mm 필름카메라 기준으로 50mm 전후입니다. 그래서 50mm 렌즈를 표준렌즈라고 많이들 부르죠.

100mm는 두 배 줌이라고 생각해주세요. 화면은 좁아지고 화상은 커집니다. 25mm는 뒤로 더 물러난 느낌이에요. 세상은 넓어지고, 주변을 왜곡시켜 꾸깃꾸깃 화면에 많이 집어넣게 됩니다. 초점거리가 15mm 정도 되면 물고기 눈처럼 화각이 넓어집니다. 서 있는 상태로 정면을 보고 사진을 찍으면 내 발이 나올 정도이지요.

초점거리가 짧아서 넓게 보이는 렌즈를 “광각렌즈”(와이드앵글)라고 합니다. 초점거리가 길어서 멀리 있는 사물이 가깝게 보이는 렌즈를 “망원렌즈”(텔레포토)라고 합니다.

보통 행사사진 찍으러 온 사진사들을 보면, 커다란 줌렌즈를 많이 들고들 오시죠. 하지만 많은 전문가가 처음 사진을 배울 때 표준화각의 단렌즈를 사용해보라고 권합니다.

단렌즈는 초점거리가 일정한 렌즈, 줌렌즈는 초점거리를 변경할 수 있는 렌즈를 말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눈으로 보는 세상을 가위로 오려서 사진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물러나거나 망원경으로 당겨도 그다지 좋은 시선을 담지 못하기 때문이라지요. 여러분의 눈을 깜박이면 찰칵하고 사진이 자동으로 찍힌다고 상상해봅시다. 지금 방 안에서 어느 쪽을 보고 어느 쪽을 시야 바깥으로 제외하고 어떤 높이에서 눈을 “깜박”해서 “찰칵”하실 건가요?


△ 캐논 EF 50mm F1.8 II 렌즈

함부로 손가락을 까딱거려서 세상을 밀고 당기는 버릇 대신 필요하면 발로 더 가까이 가서 내가 보는 세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연습만큼 중요한 건 없을 겁니다. 사실 멀어질수록 비행기나 물고기의 시각에 가깝고, 가까이 갈수록 현미경이나 망원경 또는 파파라치의 시각에 가깝죠. 가장 사람다운 시선에서 사진을 담아보세요.

과장하지 않은 시선이 우리를 이야기로 초대한다

개인적으로는 표준단렌즈는 가장 해석의 여지를 풍부하게 하는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누구나 50mm 렌즈를 눈에 하나씩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나름의 이야기들을 찾아내기 편하지요. 광각은 사진가가 더욱 많은 것을 프레임 안으로 초대하여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망원은 주제가 너무 분명한 경우가 많아 상상력을 제한할 경우가 많습니다.

유네스코와 국제적십자사 사진가로 일해 온 장 모르(Jean Mohr)는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진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해보았습니다.

  • 원예사 : 엄마 노릇 하면서 인형을 자기 아이 취급하는 꼬마 소녀
  • 목사 : 아이들이 이 세상의 잔혹함을 보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가? … 인형의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은 치워야 한다.
  • 여학생 : 인형에 입힐 옷이 없어서 아이가 울고 있다.
  • 은행가 : 잘 먹고 잘 입고, 그런 애는 좀 버릇이 없다.
  • 여배우 : 자기가 울고 있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인형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 무용교사 : 아이는 없는 게 없지만 그걸 모른다.
  • 정신과 의사 : 아이는 인형을 대신해서 울고 있다. 봐서는 안 될 게 있는 것처럼.
  • 미용사 : 독일 아이인지 금발이다. 나의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 공장노동자 : 아이는 큰 소리로 울고 있다. 누군가 인형을 뺏으려 하기 때문이다.

장 모르에 의하면, 사실 이 사진은 아이가 인형을 먹는 시늉을 하면서 인형 가지고 노는 장면이었다고 했겠죠. 그는 “하나의 영상이 자족적인 경우는 드물다.”고 말하면서 “영상은 뜀틀과도 같다.”고 말합니다.

어떤가요? 낙엽 한 장을 흑백으로 찍어놓고, 제목을 ‘인생의 고독’ 따위로 지어 작품이라고 하지 말고, 50mm 눈을 깜박이며 그저 그 영상 하나에 그저 하나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해 보이는, 사진다운 사진이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찾아, 눈을 “깜박”, 셔터를 “찰칵”하는 연습을 해봅시다.

세상을 함부로 구기지도, 함부로 확대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봐주는 일의 가치가 바로 표준렌즈에 들어있습니다.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 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보이는 게 찍힐 뿐이다. 카메라는 그저 파인더 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의 의미를 경험한다는 것, 몇 초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며 그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필립 퍼키스(Philip Perkis), [사진강의노트], 안목, 2011년, 19~20쪽.

인간의 시선에서 구성되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잘 표현한 작품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프랑스 파리, 생 라자르 역 후문, 1932년

그의 사진집 제목인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브레송은 절대 연출하지 않고, 찍은 다음에 절대 사진을 잘라내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라이카 카메라의 단렌즈로 어떤 순간들을 담아냈습니다. 그는 피사체에 부탁하거나 개입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는 것이 사진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지요.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아르메니아, 1972년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Simi­ane La Rotaonde, 1969년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에는 광각과 망원의 특성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도전과제: 표준카메라로 사진 찍기 연습

도전과제: 필립 퍼키스가 시킨 대로 표준렌즈 카메라를 가슴 부분에 오게 넥스트랩을 조절한 뒤 온종일 돌아다니면서 카메라를 보지 않고 수시로 셔터를 눌러버리자. 집에 와서 결과물을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사진 고르기.

과제 실천의 예: 시애틀 출신 사진가 쿠퍼 씨. 홈페이지는 여기, 페이스북은 여기.


△ 고양이 사진작가 쿠퍼 씨.

(2012년 6월 처음 작성했고, 2014년 3월 슬로우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2014년 12월 블로그에 다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