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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관찰기-06. 수능, 소수자, 낙태, 귀여니

수능 전날 담임 선생님과 으쌰으쌰 힘내자고 종례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또 교무실로 내려오는 아이들이 있다. 발길 향하는 걸 보고 있으면 중요 과목순이 아니라 그래도 나를 위로해준 적이 있던 선생님, 내 이름은 챙겨서 불러주던 선생님한테 총총 모여들어, “쌤 기를 받으러 왔습니다.” “쌤 저 내일 잘 다녀올게요.” 별 내용도 없는 인사를 건네고는 쑥스럽게 퇴청하는 풍경이다. 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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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관찰기-05. 공포, 일처리, 수시철

공포 선배 교사 한 분이 출근 후 학교 건물 지하 주차장 본인의 차 안에서 그만 의식을 잃었다가 한참 지나 정신을 차렸다. 뒤이어 출근한 교사들은 그 앞과 뒤와 옆으로 차례차례 무거운 금속기계를 놓고 황급히 교실로 오른다.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서운하고 무서운 마음을 말할 때 공감이 되었다. 넓고 깊게 사람을 보아야 하는 교사들의 주변 시야가 시계공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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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관찰기-04. 최일구와 실패 선생

모든 것이 귀찮아진 어느 오후티켓을 산다 0시발 태양로케트 멀어지는 지구의 모습 보며 다가오는 태양의 불꽃 보며 모든 것을 생각한다 아 ~ 아 ~ 아 ~ 아 ~ 최일구 작사/작곡, “로케트를 녹여라” 중에서. 중2병 향기가 듬뿍 풍겨오는 이 노래를 다들 정신없이 박수를 치며 부릅니다. 정확히 10분 전에 “MBC 전 앵커 최일구 언론인을 소개합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라고 사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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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관찰기-03. 해바라기 소녀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정원이 참 아름답습니다. 새들도 놀러오고, 예쁜 꽃들도 많고, 잔디도 싱그럽게 깔려 있지요. 하지만 저는 이 아름다운 정원을 ‘정비’하여 다시 ‘설치’하려고 착공하기 전의 모습이 가끔 그리워요. 좀 더 흙이 드러나있었고, 가지치기가 덜 된 은행나무가 청소를 힘들게 했죠. 수풀이 이발소 못 간 머리카락처럼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자라나서 그 뒤에 앉아 속닥거리는 여자애들을 잘 감춰주었습니다. 소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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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관찰기-02. 나는 누구인가

3월 모의고사를 치른 다음 날 밤, 우리 반 칠판이 서낭당이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건 아이들의 사과문. 우리 반이 영어 꼴등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인용하며, 아이들이 칠판 가득 “선생님, 죄송해요.”라고 적습니다. – 송구하옵니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모의고사… 죄송해요. 앞으로 열심히해서 성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세요. – (우리에 대해?) 섭섭한 섭쌤. – 이런 점수로 밥을 먹다니 .. 저는 쓰레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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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관찰기-01. 아이스크림과 관계지향성

(관계지향성) 다른 학급 친구가 아이스크림을 자신의 교복에 쏟아버렸을 때 휴지로 직접 닦아줌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는 대학 입시에 직접 활용되는 중요한 서류입니다. 대학에서는 지원하는 학생의 학교생활을 상세히 볼 수 있다며 “학생부 종합 전형”을 확대하고 있는 가운데, 모 입시정보 사이트에서는 학부모들이 정신 차리고 대비하라는 차원에서 세세한 항목들과 항목별 분량, 요령까지 정리해서 올리고 있지요. 이 와중에 학생부라는 상자에 그럴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