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죽일 거에요

단순한 공식인데 경쟁, 분리가 인간 사회에 일어나면 체제가 이기는 거고 반反경쟁, 사랑, 공존 쪽으로 가면 체제가 붕괴돼요. 이건 그냥 공식이에요.(웃음) 서로 사랑하지 않게 하고, 서로 경쟁하게 하는 것이 체제고요. 우리가 자유로워진다고 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는 데서 나오는 거죠. 체제를 극복한다고 해서 신뢰가 찾아오지는 않아요. 이미 불신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사랑하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어요. 이것은 하나의 인문학적 공식이에요. 우리의 사랑을 막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 비판적 지식인이 돼요. 이 공식을 잊어버리고 인문학자가 분리와 의심, 불신 쪽으로 담론을 펴면 자기도 모르게 체제에 놀아나게 되는 거죠. 체제는 인간의 불신을 먹고 자랍니다. 불신 안 하면 돼요.

그런데 그게 힘들죠. 집요하게 불신하도록 만드는 건데, 신자유주의가 만든 경쟁 체제가 그런 거잖아요. 사랑 못 하게 만드는 교육 제도. 1등 한 아이도 성적이 떨어지면 자기를 미워하고, 1등 못하는 아이는 1등 한 아이를 미워하고, 누굴 때리면 나한테 관심을 가지니까 사랑받는 것 같고 파국으로 몰고 가는 거잖아요. 학생들의 자살이 굉장히 많거든요. 굉장히 심각한데, 이 아이들이 나중에 기성세대가 되면 그때의 파국은 끔찍할 거에요. 이 아이들이 부모가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냥 다 죽일 거에요.

- 강신주, 지승호 공저,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시대의창, 2013, 63-64쪽.

강신주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교실에도 바로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입시가 괴롭고 나의 찬란한 십대를 뺏어간 한국교육을 매일 원망하지만, 그 모든 것은 30년전에나 지금이나 왜 똑같은 걸까? 그건 교육을 담당하는 공무원 때문이나 학교 때문이나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나 때문이다. 이렇게 짜증나는 공간에서 나는 왜 이렇게 싫은 너를 만나게 되었는가? 왜 보기싫은 너를 오늘 또 봐야 하는가? 누가 이 고통을 강제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한데, 바로 미워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미워하는 것은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되는 것이고, 미워할만한 것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자유롭고 멋진 인격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선택’이다. 가만히 숨만 쉬어도 그것이 폭력이 되는 것임을 의식하고 오늘 이 교실에서 타인과 함께 기꺼이 공존해보려고 끝장나게 노력해보는 사람은 나중에 폭풍처럼 휘두르는 타인의 주먹질에 한 마디 말로 고양이처럼 잠자게 만들 수 있는 내공이 생길테지만, 그저 재밌는대로 미운 건 미운대로 나를 흘러가게 내버려두는 사람은 어른이 되어 웃는 아이의 얼굴에도 침을 뱉을 괴물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래서 그저 내 바람이, 자유로운 사람으로 살아달라는 것이다. 오늘 또다시 증오를 발굴하고 미움을 정당화하면서 사랑하지 못하는 아이는, 그 스스로는 꽤나 진지할 수 있겠으나 나의 시각에서는 이 모든 연극의 꼭두각시로 사는 것에 불과하다. 살갗에 실을 꿰어 춤을 추면서 말한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요.”

병신아, 너의 미움을 먹고 너의 후배는 내년에 이곳에서 더 불행해질 거다.

(2013년 6월)

아이폰으로 EBS 라디오 녹음 – TuneIn Radio Pro 사용기

아이폰 순정에서 라디오 녹음하는 방법으로 TuneIn Radio Pro 사용한 소감.
https://itunes.apple.com/en/app/tunein-radio-pro/id319295332?mt=8

1.
그냥 라디오 라이브로 듣는 목적으로는 무료버전 TuneIn Radio도 괜찮고,
각 방송사마다 전용앱을 제공하고 있으니 반드시 유료버전인 TuneIn Radio Pro를 사용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라디오 녹음하려면 TuneIn Radio Pro가 필요. 4.99달러. ㅠㅠ 비싸다..

2.
주로 EBS 어학 강좌 듣는 사람들이 이 앱을 많이 사용하는데,
라디오 스트리밍해주는 앱들은 몇 개 있지만 녹음까지 해주는 걸 찾는다면 이 녀석이 무난하기 때문.

참고로 EBS 실시간 방송은 반디?라는 앱에서 들을 수 있는데 다시듣기 서비스가 없고,
어학FM 앱이 따로 있어서 그 앱을 통해서 특정 방송프로그램의 다시듣기파일 1달분을 구매할 수 있는데 3-4달러 정도로 저렴하지는 않은 편.
게다가 플레이어가 구리고, 구간반복과 같은 기능도 없거나 허접한데다가, 무한로딩 문제 등이 해결 안 되고, 다운받은 게 사라지는 등 난리부르스치면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음.
옛날식 테이프도 주문 가능하거나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겠지만 5천원에 육박.

따라서 파일소장을 애초에 포기하는 게 맘 편하거나… ‘녹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

3.
처음 실행하고 국내 방송국 목록에서 EBS 금방 찾을 수 있음. 즐겨찾기에 추가. (하트 표시)

4.
재생화면에서 가운데 상단 버튼 세 개 있는데…
이 녀석은 재생을 시작한 순간부터 자동으로 지나온 길을 녹음하면서 진행함. 즉, 라이브 방송이라도 10초전 버튼 누르면 바로 전 구간 다시 들을 수 있고 방송 끝까지 계속 이어 듣는 게 가능.
또 라이브 듣다가 일시정지하고 화장실 다녀와도 방송 끝까지 들을 수 있다.

버튼 세 개 중 오른쪽 버튼(목록모양) 누르면 메뉴가 나오는데..
시간표 보기… 는 방송국 시간표이고,

알람설정/녹음 타이머가.. 중요한 메뉴.
활성화 키고 / 녹음 ON / 기간 = 녹음할 기간(방송 시간에 가깝게) / 반복(방송녹음할 요일 선택) .. / 그리고 화면 아래에서 알람 시간을 선택해주면 된다.

그럼 기본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알람이 울리게 되고 녹음을 할 수 있게 된다.

5.
아이폰5 / iOS6 기준으로 알람이 울릴 때 상단에 막대기로 잠깐 떴다가 사라지면 까먹기 쉬우므로 팝업형태의 배너로 알람이 뜨도록 알림센터에서 수정해주면 좋다.

그럼 알람이 팝업으로 떴을 때 바로 녹음을 선택해서 이동하여 정해진 시간 동안 녹음이 가능.

6.
그런데 버그인지.. 5의 과정에서 앱이 실행되려다가 멈추거나 녹음이 시작되지 않더군요.

7.
그래서 대안으로 ..
1) 방송 시간 1분전에 맞춰 일단 알람을 설정해두고,
2) 방송 재생될 때 수동으로 녹음버튼을 눌러 녹음 시작,
3) 잠자기 타이머를 방송시간 즈음에 맞춰 설정

하는 방식으로 아쉬우나마 녹음해보니 되더군요.

8.
이 앱의 첫 화면에서 오른쪽 아래에 있는 메인 설정에서 만져주면 좋은 것들..
1) 자동재시작 플레이어는 스트리밍을 계속 이어들을 필요가 있는 게 아니면 끄는 게 좋을 듯
2) 자동 잠김기능 해제는 그냥 켜두시고..
3) 백그라운드에서 정지는 끄는 게 편하더군요. 잠깐 나가서 웹검색을 하거나 사전 보고 싶을 때 방송이 멈추거나 녹음이 중지되는 일을 방지.
4) 맨 아래 자동녹음 중지는 평소 한번에 방송 듣는 시간을 고려하여 1~2시간 정도로 적당히 줄여주는 게 좋을 듯.

9.
녹음된 파일은 날짜와 시간이 표시되어 있고, 손가락으로 스와이프하여 삭제 가능. 3분당 2MB 정도로 효율은 좋은 편.

10.
EBS 말고 MBC, CBS, PBC, TBS eFM, YTN 등도 있더군요. 기타 mms URL있으면 수동으로 방송 추가할 수 있습니다.

(2013년 6월)

친구의 비밀을 지키는 건 중요할까?

# 친구의 비밀을 지키는 건 중요할까?

최근에 든 생각이다. 여고에 있으면서 가장 지치는 문제 중 하나가 아이들이 관계를 단짝친구 중심으로, 비밀을 공유하는 군소단위로 한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소문을 유통하는 이런 구조는 그 단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안락하지만, 때로 가장 폭력적이고 사람 사귀는 데 있어서 나쁜 버릇만 키우는 듯 하여 나는 극단적으로 이것을 떠나거나 버리라고 충고하는 편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예를 들어 “비밀을 지켜주세요”라는 요청에 대해, 물론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에 앞서 이런 질문을 유통하는 우리의 교실/학교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 왕따가 되기 쉽거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근데 신뢰할 수 있어서 비밀을 말하는 것인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서 비밀을 만드는 것인지 궁금하다는 게 내 요지. 우리는 어떤 사실이 특별히 비밀이어서 조심히 꺼내는 게 아니라, 비밀로 부치고 나서야 한정된 정보를 공유하는 소규모 친구관계를 특별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측면이 있다.

나는 친구도, 애인도 그렇게 사귀고 싶지는 않다. 특별히 공유하는 바가 있어서 그 사람이 내 친구이자 애인이 되는 것이라면 이미 사람을 존재로 사귀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한 소설이나 담론의 소비자로 사귀는 것일 뿐. 이런 식으로 사람 사귀는 버릇이 든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해도 내가 나를 믿어주는 사람으로 등장시킨 조연들에게는 신뢰를 주고, 내 소설에서 나의 적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혐의를 둔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날로 방대해지고 어느 순간 사실 대조가 어그러지는 경우 맞게 되는 파경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진실됨이 나쁜 가치라는 게 아니다. 자꾸 ‘진실’을 ‘거짓’과 나누는 솔로몬을 자처하면서 살지 말라는 거지.

## 상담사의 비밀주의,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 애플의 비밀주의
모든 상담사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피상담자의 상처와 관계된다. 커밍아웃할 의사가 없는 동성애자, 가난한 상황을 혼자 감당하기도 버거운 사회적 배려 대상자 등이 해당하고 넓게 보면 피상담자가 요청한 모든 정보는 따로 부탁하지 않았어도 동의 없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올해 [PDF]왕따의 추억 사건을 통해 느낀 건, 내가 담임하는 아이들을 면담하면서 상담자가 끝까지 비밀만을 유지할 때에는 결국 이 모든 상충하는 이야기를 담아서 비밀문서에 보관하는 아카이브 역할 이상을 교사가 하지 못한 채 한 해가 가버릴 확률이 농후하다는 것. 교사는 들어주기가 중요하다는 전제 하에,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정말 듣기만 하고 아이들은 배설만 하고, 이 개별적 A-B, A-C, A-D의 상담은 수많은 집대성만을 남길 뿐 시간은 흘러간다.

물론 섣불리 개입하는 것은 더욱 좋지 않지만, 상담의 중심이 학생 너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너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교사 나는 무엇을 너를 위해서 하겠으니 너는 이렇게 노력해달라는 행위에 관한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런 약속을 만들고 지키기는 더 스트레스가 따르고 몸과 맘이 피폐해질 정도로 괴로운 과정이었고 가슴앓이하고 눈물도 많이 흘렸던 것 같다..

그런데 좀 물러서서 다시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 이 모든 것이 비밀에 대한 고착 때문에 생긴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언제 비밀을 말하는가? 비밀을 말하게 되는 경우 대부분이, 그것이 듣는 사람이 알아야 하며 듣는 사람의 생활과 관련이 있거나 듣는 사람이 당사자로 해결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서가 아닌가? 우리는 대단히 자애로운 상담가가 되어서 너의 비밀을 내가 금으로 만든 금고에 죽을 때까지 지켜줄게라고 말하며 보관하지만, 사실 경제적으로 이런 행위는 꽤나 고급인 어떤 정보를 접근할 수 없는 스위스 은행 같은 곳에 보관하고서 만족스러워 하는 습관에 가까운 게 아닐까… 그런 식으로 이제 누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와 같은 정보가 아니라 단지 누가 이런 말을 했대 저런 말을 들었대 등등의 사소한 일기장 한줄한줄이 금고에 쌓이기 시작하고 서로 다른 금고에 서로 상충하는 비밀들을 보관하면서 광장에 나와서는 서로서로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한다.

어떻게 보면 애플의 비밀주의처럼, 이렇게 보관하는 금고들은 사소한 정보가 또 때로 서로 상충하는 내용들이 쌓이고 포화되기 시작하면서 .. 마치 어느 순간에 한꺼번에 폭발하기 위해서 거기에 보관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이다. 언제나 그것을 나누고 좀 더 쿨해지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숨기게 되면서 수많은 루머는 오히려 양산되는 것. 그냥 다음 제품이 이렇게 생겼다고 하면 호불호로 분명하게 나뉘게 될 반응들이, 그것을 비밀에 부침으로써 신제품에 대한 수많은 예상 루머와 함께 호불호가 아니라 수많은 괴물같은 변형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거나 이익을 보게 된다.

## 완득이 쌤의 질문
이외수가 그랬다며? “내가 말하는 순간 이미 그것으 비밀이 아니다.”

이 말을 정말 믿는다. 정말 비밀이라면 말하지 말라. 말하는 순간 비밀이 아닌 것처럼 살 준비를 하라. 비밀을 누설한 사람을 족칠 각오보다는, 비밀이 아니어도 괜찮을 ‘나’를 준비하라는 것.

영화 <완득이>에서 사랑하는 장면 중 하나는, 담임교사가 햇반 운운하면서 사배자 아이를 그냥 대놓고 사배자로 대하는 것이다. 이미 사배자가, 동성애가, 다른 종교를 가진 것이, 피부가 다른 것이, 전라도 출신인 것이, 대놓고 아무렇지 않아서 햇반 남는 거 있으면 하나 던져보라고 말한 뒤에라야, “너 엄마 한 번 만나볼래?”라는 중요한 질문으로 건너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배자를 오픈하는 정책을 위에서 아래로 강제하는 건 폭력이겠고, 중요한 건 이 모든 부족함과 모자람과 소수자되는 일을 구별하여, 따로, 비밀리에 처리하려고 하는 에너지를 모자라도 괜찮고 소수자여도 괜찮은 학급으로, 학교로, 나라로 만드는 데 투자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는지.

“저 사실 장애가 있어요.”
“그래? 좀 불편하겠네? 근데 우리 점심 뭐 먹으러 갈까?”

말말말. 쉬쉬쉬~
나는 제발 그런 스트레스에서 해방되어 살고 싶다.

(2013년 6월)